하늘과 바다가 땅을 잉태해냈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던 것은 아우터뱅크스(Outer Banks)를 여행할 때였다. 아우터 뱅크스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해안에 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제방이라고 해야 할까. 아우터 뱅크스를 구태여 지리적으로 얘기하면, 확실히 섬이긴 한데, 섬 치고는 너무도 특이하게 생겼다.
아우터 뱅크스는 길이가 남북방향으로 대략 320km에 폭이 좁은 곳은 200m 안팎이니 하늘에서 보면 아주 길다란 실오라기가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 섬에서는 길 양쪽으로 고개 돌리면, 푸른 바다와 하늘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길다란 섬은 중간에 잠깐 끊어져 배로 건너야 하는 구간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평균 해발고도가 5m도 안돼 보였다. 그러니 멀리서 배를 타고 보면 섬 전체가 물에 잠길 듯 위태롭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바다라는 자궁에서 땅덩어리라는 태아가 고개를 내밀며 떠오르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아우터 뱅크스의 땅 기운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는 뭔가 새롭게 출발하는 기분이었다. 새 생명이 무릇 그렇듯, 아우터 뱅크스에서는 온통 신선하고 설레고 자유로운 마음이었다. 사람들이 섬을 찾는 것은, 어쩌면 하늘과 바다라는 존재를 만끽하며 온갖 묵은 때와 먼지를 털어내고 새롭게 태어나고픈 생각에서인지도 모르겠다.
달빛이 아우터 뱅크스의 밤바다를 어루만지듯 비추고 있다.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섬의 불빛들이 저 멀리로 아스라하다(위). 섬을 떠나 어디론가로 향하는 여객선, 바다 항해는 세상에 고개를 내밀기 전 어머니 뱃속의 태아가 느낄 것 같은 묘한 설렘이 있다.
집 바닥이 땅에서 좀 떨어져 있는 이른바 고상가옥(왼쪽). 아우터 뱅크스는 지면이 해수면보다 약간 높기 때문에 바닷물이 차오를 것에 대비해 집을 이런 식으로 짓는 경우가 흔하다. 고개를 돌리면 사방이 바다와 하늘뿐인데도 불구하고, 집 값은 아주 비싼 편이다.
아우터 뱅크스 바닷가는 사시사철 바람이 많아, 비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좋은 놀이터이기도 하다.
라이트 형제의 최초 비행 장면을 묘사한 조형물. 아우터 뱅크스 북단의 '킬 데빌 힐스'는 라이트 형제에 의해 인류 최초로 글라이더 비행이 이뤄진 곳이다.
글라이더 비행의 탄생지를 기리는 기념탑(왼쪽). 자연 활주로로 이용됐던 바닷가의 풀밭.(오른쪽). 라이트 형제는 저 멀리 보이는 기념탑 부근에서 떠올라, 풀밭 지역에 내려 앉곤 했다.
1903년 이뤄진 인류 최초의 글라이더 비행을 기념한 표지석. 첫 번째 비행의 착륙지점에 세워진 표지석의 기록을 보면, 12초 동안 120피트 즉 36미터 남짓을 비행했다(왼쪽 위). 라이트 형제는 같은 날 네 차례의 비행에서 기록을 59초 동안 852피트(약 260미터) 이동으로 끌어 올렸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라이트 형제는 오하이오 주 출신인데, 첫 번째 비행을 성공시킨 장소가 노스 캐롤라이나 주여서 두 주는 서로 비행과 최초의 인연을 강조한다. 첫 비행(First in Flight)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는 노스 캐롤라이나 차량 번호판(위)과 항공의 발상지(Birthplace of Aviation)라는 글귀가 새겨진 오하이오 주 자동차 번호판.
덧붙이는 글 | sejongsee.net(세종시 닷넷)에도 실렸습니다. 세종시 닷넷의 다른 연재 기사 '조여사 촌철살인'도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