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 마!"
팟캐스트<나는 꼼수다> 진행자 김어준이 밥 먹듯이 던졌던 말이다. '쫄지 않기 위한 필요조건'은 어떤 행동에 대한 과정과 결과의 정당성 아닐까?
'부당한 개입' 자충수2일과 3일,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사학재단과 고등학교가 시쳇말로 "바짝 쫄았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이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다시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를 선택하기로 하루 사이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2일까지 14개 고교(공립 3개, 사립 11개)가 교학사를 선택했는데, 3일 오후 현재 사실상 12개교가 이런 모습을 보였거나 보이고 있다. 이제 이름이 공개된 고교 가운데 교학사를 고집하고 있는 학교는 사실상 2개교만 남았다. 자율형사립고인 전북 전주의 상산고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명예이사장으로 있는 울산의 사립고인 현대고가 그것이다.
교육전문가들은 이들이 교학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핵심 요인은 바로 학생과 학부모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부당한 개입 행위도 이들에겐 자충수였다.
실제로 경기도에 있는 같은 사학재단 소속인 동우여고와 동원고는 학생들이 직접 나섰다. 교학사 채택을 비판하는 '안녕 대자보'를 만들어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손을 든 경기 운정고의 경우엔 학부모들의 항의가 거셌다. 이들이 지난 2일 오전 학교에 모여 긴급회의를 열자 이 학교 교장은 곧바로 손을 들었다. 이어 이날 오후 2시엔 교과서선정위를 열고 오후 4시엔 학교운영위를 서둘러 연 뒤, 교학사를 포기했다. 8시간 만에 일사천리로 포기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은 "동우여고 사례에서 보듯 여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면서 역사교사 또한 양심선언에 나서게 됐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들 또한 거세게 항의하자 운정고를 시작으로 동우여고가 발을 빼게 됐고, 나머지 학교들도 차례로 무너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학생과 학부모는 진보 보수를 떠나 상식에 걸맞은 교과서를 원했던 것"이라면서 "수준 이하의 교과서 때문에 수능 등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여학생의 '안녕 대자보'가 상황을 바꿨다"
이렇게 쉽게 무너진 배경에는 부당한 교과서 선정 절차도 커다란 몫을 했다. 운정고와 동우여고는 역사교과협의회 선정 절차를 무력화시킨 교장의 '특별지시'가 드러나기도 했다. 다른 학교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게 역사교사들의 분석이다. 경남 지리산고의 경우는 학교운영위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점도 포착됐다.
이성호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부당한 개입이 위법인데도 재단과 교장들은 역사교사들의 자율 결정권을 침해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교학사를 선택했다면 버틸 힘이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다보니 쉽게 무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학 자체의 약점 또한 작용했다. 김종선 전교조 사립위원장은 "교학사를 선택한 학교의 사학재단이 과거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자 포기한 학교들도 줄을 이었다"면서 "게다가 지역사회의 반발 또한 워낙 거세다보니 토호세력인 사학재단 이사장들이 발을 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