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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31일 박근혜 당신 대통령 당선인이 경기 광주 특전 교육단을 방문해 공수 훈련장에서 교육중인 부사관 훈련생들을 격려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2년 12월 31일 박근혜 당신 대통령 당선인이 경기 광주 특전 교육단을 방문해 공수 훈련장에서 교육중인 부사관 훈련생들을 격려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내 나이 스물 둘, 대학교 4학년. 그리고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대한민국 남자다. 달력이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하지 않던 행동을 점차 많이 하게 된다. 군대 이야기만 들어도 털이 곤두서는 것, 어떻게 하면 '고문관'이 되지 않을지 연구하는 것, 그리고 군대 정보만 들으면 귀가 번쩍 눈이 활짝 뜨이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이었다. '희망준비금' 소식이 뉴스에 났다. 재작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내용을 기억했다. 군 월급과 무관하게 200만 원을 지급하고, 군 월급도 임기 내에 크게 인상한다고 해 예비역 형들이 "저걸 믿어야 하냐"고 부러워했다. 그런데 1년 새 국방부 발표는 예산이 부족해 사병 월급에서 5~10만 원을 떼어서 전역 때 100~200만 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내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올해 1월 3일 국방부는 다시 "희망자에 한해서만 실시하고, 단계적으로 월급을 올려 그 인상분을 적립하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군 미필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갸우뚱할 뿐이다. 올해 사병 월급이 이등병 11만2500원~병장 14만9000원으로 인상된다 하더라도 지금의 씀씀이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10만 원을 적립한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 1만 원~4만 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군대라면 단연코 일가견이 있는 선배, 친구들을 찾았다. 평소에는 그리도 듣기 싫어했던 군대 생활 이야기이지만, 입대를 앞둔 지금에는 이런 금과옥조가 없다.

올해 1월 1일자로 전역한 박기훈(24) 육군 예비역 병장은 전역 때까지 50만 원을 모았다. 선임 누구는 100만 원을 모은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나라에서 관리해주는 방식이라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돈 관리가 안 되는 후임들도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급이 거의 그대로라면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월급 인상폭이 더 커야 하고 희망자에게만 실시하면 좋겠다"는 단서를 붙였다.

24.9%, 매달 약 15만 원 지출... 병장 월급으로도 '마이너스'

군 미필자라서 그런지 감이 도저히 오질 않았다. 궁금해서 조금 더 깊게 물어보자, 모든 예비역들이 곧 '갈' 친구를 위해 MBC <진짜사나이>를 보여주듯 설명해줬다.

"군에 가면 군매점(PX, Post Exchange)를 빼놓을 순 없지. 같은 생활반(내무반)에 생일인 사람이 있다거나, 개편이 돼서 사람이 바뀌는 일이 있거나, 또 고된 훈련을 마쳤다거나 하면 뭘 안 사먹을 수가 없지. 축구, 족구 내기를 걸어서 이겼다 쳐도 사실은 눈치껏 선임이 쏘는 거지. 그밖에도 혼자 먹고 싶다 해도 눈치가 보이니까, 보통 생활반 단위로 같이 먹게 되는 거지." - 김준헌(23) 해병대 예비역 병장

현재 부대 안에서 담배는 한 갑에 2000원 하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 한 갑에 2500원이라고 한다. 2008년까지 군납 면세담배가 보급으로 나왔으나 금연을 촉진하고자 지금은 나오지 않는다. 후방이든, 전방이든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담배가 제일 꿀 같은 낙이다. 예전에 한 애연가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내게 "군대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노가리'를 까는(잡담을 하는) 것만큼 꿀맛 같은 건 없다"며 유혹하기도 했다. 하루에 한 갑을 피운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7만5000원이 든다.

여자친구가 있거나, 군대에 있어도 '연애 작업'이 계속된다면 전화비도 든다. 섬에서 복무한 김준헌 예비역 병장은 "포상휴가가 없으면 휴가는 6개월에 한 번 있어서, 1주일에 1시간씩 전화를 하게 된다. 이 경우 3만 원 정도 든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아주 기본적인 부분들이다. 부대 내에서는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들, 예컨대 화장품, 속옷과 장갑, 양말 등 부대 문화에 따라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기본적인 지출만 가지고도 아래 표와 같이 월급 대부분을 쓰는 것으로 보였다. 2012년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사병 24.9%는 매달 약 15만 원을 썼다. 올해 인상되는 병장 월급 기준으로도 '마이너스'가 나는 셈이다. 한 달에 6만 원 미만을 쓰는 사병은 전체의 21.7%였다고 한다.

 예비역 병장 4명에게 들은 월 예상 가계부. (*)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 여자친구가 있고, 담배를 피우는 경우다. (**) 급여는 2014년 국방부 발표 기준
예비역 병장 4명에게 들은 월 예상 가계부. (*)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 여자친구가 있고, 담배를 피우는 경우다. (**) 급여는 2014년 국방부 발표 기준 ⓒ 김정현

물론 경우에 따라 상황이 나아지기도 한다.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한 김도영(23) 해병대 예비역 병장은 약 200만 원을 모아서 전역했다고 말했다. 상근예비역은 기초군사교육을 마친 후 예비역으로 바로 전역, 부대에서 머무르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하며 복무한다. "교통비가 나오고 물건 살 일이 없으니 모두 저축하면 (200만 원 저축도) 가능하지만, 그래도 빠듯했다. 동기나 후임들 먹을 것 사주러 가다보면 군매점(PX)도 옛날만큼 싸지가 않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위 표의 조건에 해당이 안 되는 경우 80%를 떼어서 입대 전 들어둔 적금에 적립하기도 한다. 박정규(23) 육군 예비역 병장은 "계급이 오르면 봉급이 인상되고, 경우에 따라 조기진급을 하는 경우가 있어. 나 때는 월급이 각각 7만, 8만, 9만, 10만 원이었는데, 80%를 자동이체해서 모으면 최소 5만 원이니 나갈 때 100만 원 모아나가는 게 불가능하지 않지. 그런데 나라에서 왜 굳이 5만 원을 강제로 모아주는지 모르겠다"고 되물었다. 현재 계급별 복무 기간은 육군의 경우 이등병 3개월, 일병 7개월, 상병 7개월, 병장 4개월이다.

"실질적 이익 없어 부모님께 손 벌려야 한다는 입장 많았다"

군대를 가기 전엔 누구나 가기 싫어하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나면 어떻게든 "요즘 군대 편해졌네" 하고 말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그런 예비역들조차도 국방부의 희망준비금을 모두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긍정적인 의견을 찾으면 "희망자에 한해 실시한다면" 정도였다. 그럼 지금 복무하는 현역 사병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복무 중 휴가를 나온 해군 중위(24)에게도 물었다.

"제도 시행 전에 사병들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지시가 있었어. 복무 중인 사병들에게 물어봤는데, 실질적인 이익이 없고 오히려 당장은 월급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서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한다는 입장이 많이 나왔지.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보고를 했다."

'희망준비금'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자 이 기사에는 차마 실을 수 없는 육두문자들이 입에 오르내렸다. "희망준비금이 아니라 희망 강탈금"이라는 친구도 있었고, "군대에서도 사회처럼 빈부격차 느껴야 하냐"며 한숨짓는 선배도 있었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군 복무기간 단축 검토 소식에 은근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곤 했는데, 그런 소재가 새롭게 나타난 셈이다.

김준헌 해병대 예비역 병장은 "겉으로 보면 좋은 의도로 보이지만 마치 국민연금을 보는 것 같다. 정작 실효성은 없는 것처럼 말이지. (높으신 분들) 자금 확보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박정규 육군 예비역 병장은 국방부가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검토안을 두고도 "월급을 주고 전역할 때 100만 원을 추가로 준다는 것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쯤되면 "군인을 호구로 본다"는 말은 친구들과 내 경험적 차이, 보수와 진보의 간극을 넘어선 '진리' 수준으로 들린다. 정치권이 이번에도 현실감각 없이 군 장병들과 현역 판정 미필 남성들, 그 가족들까지도 실망시킨 셈이다. 이런 소재가 늘어날수록 정치를 불신하는 마음 또한 한꺼풀 쌓여나갈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블로그(또바기미디어 ddobagimedia.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군대#희망준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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