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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좀체로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고 아이들에게도 놀림 당하기 일쑤다. 산만하고 집중을 못하니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전전하며 해결책을 찾으려 애쓴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한테 혼나기 일쑤고 그럴 때마다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야 하는 엄마의 심정이란 말로 다 못할 고통이다. 수십 명의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학교 선생님은 그 아이만 '특별하게' 대해 줄 수 없었다.

그나마 엄마는 동네 보습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위안을 받았다. 일대일 맞춤형 학습을 표방하는 학원인지라 아이를 '특별관리'해 주는 듯했다. 수업시간 외에도 수시로 상담하고 따로 숙제도 봐주면서 아이가 뒤쳐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주는 학원 선생님들이 오히려 고마웠다. 학원에서도 "그 애,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며? 그럼 치료받아야 하는거 아닌가?"라는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교사들은 ADHD에 관해 일자무식이나 마찬가지였고, 아이의 상황을 안타까워하긴해도 '학원'이라는 시스템이 속성상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몇 년 전 잠깐 학원 교사로 일할 때 겪었던 일이다. 그 아이, 지금쯤 아마 중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무사히 중학교에 갔을까. ADHD라고 의심받았던 증상들은 좀 나아졌을까. 김경림의 <ADHD는 없다>를 읽는 내내, 그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ADHD라고 불리는 병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 아이와 엄마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미안해졌다.

"세상에, 이렇게 멀쩡한 아이가 ADHD인 줄 알았어"

 한 아이의 엄마가 들려주는 ADHD에 관한 불편한 진실 'ADHD는 없다'
한 아이의 엄마가 들려주는 ADHD에 관한 불편한 진실 'ADHD는 없다' ⓒ 이민희
<ADHD는 없다>의 저자 김경림씨는 평범한 주부다.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아이를 친척집에 맡겨 놓고 생활에 쫓기던 때, 아이가 난데없이 ADHD 진단을 받으면서 충격에 빠졌다. 여러 병원의 신경정신과를 돌며 몇 차례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보통의 엄마들 같았으면 아이가 잘못될까봐 전전긍긍하며 병원의 약물적 처방에 의존했겠지만 김경림씨는 달랐다.

우선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해 불안정한 아이의 환경을 바꿨다. 처음에는 내 아이가 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아이와 엄마가 모두 힘들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ADHD에 관해 직접 자료를 찾고 의사와 교사의 말에 맹목적으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달렸다.

그 결과 ADHD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의 '귀중하고 특별한 재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ADHD는 획일화된 사회와 학교 시스템이 일방적으로 낙인찍은 '편견'에 불과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아이는 무사히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늘 선생님에게 칭찬받는 당당한 학생이 돼 있었다.

나는 "이 세상이 다 같은 편이고 너만 다른 편이야"라고 몰아붙이는 환경 속에서 최소한 "너한테는 엄마가 있어. 엄마를 붙잡아"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 건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정말 잘한 일이었고 제대로 방향을 잡은 거였다. 주양육자인 엄마가 '자기 때문에 미안해 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되는 건 문제 해결의 첫 단추였다. (77쪽)

그래서다. 저자가 경험담을 묶어 책으로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ADHD 판정을 받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다른 시야를 열어주고 싶어서다. 약물치료 없이도 ADHD를 극복한 사례가 결코 '특이한' 경험담이 아니라, 부모가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고자 했다. 김경림씨는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담을 통해 ADHD의 충격적이고도 불편한 진실을 낱낱히 까발린다.

ADHD란 무엇인가?

이쯤에서 ADHD에 관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들을 짚어보자. 우선 ADHD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줄임말이다. 부모들은 보통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산만하고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ADHD 검사를 권유받는다. 보통 질병은 혈액 검사나 엑스레이, MRI 등의 의학적 촬영을 통해 증상을 판별한다.

그렇다면 ADHD 판정을 위한 객관적이고 의학적인 검사도구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ADHD를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검사도구는 없다. 오로지 부모와 교사의 의견을 참조한 의사의 판단만이 있을 뿐이다. 즉, ADHD 판정은 검사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닌 '관찰 소견'일 뿐이다. 실제로 미국 소아과학회(APP)가 발간한 'ADHD 진료 지침서'에는 '어떠한 검사실 검사도 ADHD 유무를 밝혀낼 수는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어째서 그렇게 쉽게 'ADHD 검사'라는 것을 신뢰하고 아이의 뇌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믿게 되는 것일까? 의사들은 미국 소아과학회(APP)에서 발간한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편람(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Disorders)'에 명시된 ADHD 진단 기준을 적용한다. 18가지 정도 되는 질문에 '전혀', '가끔', '자주', '매우 자주'로 답변하면 결과를 합산해, '부주의 우세형'과 '과잉행동, 충동성 우세형'의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가 작성하도록 되어 있는 이 질문지의 점수에 따라 ADHD 여부를 판정한다. 그런데 이 18개의 질문이라는 것이 대개 아이들의 일상행동과 관련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지시사항을 따르지 않아서 일을 그르치거나 활동을 끝마치지 못한다', '매일 해야 하는 일상적인 일들을 잊어 버린다', '조용한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한다' 등이다. 이런 질문들에 '자주' 혹은 '매우 자주'가 많이 나올수록 ADHD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런 행동은 아이들의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행동일 뿐만 아니라, 아이의 환경과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답변 내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저자는 "부모나 교사의 통제를 잘 따르지 않는 아이들이 이 검사를 받으면 대부분 ADHD 판정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논리성을 결여한 이 검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런데도 '뇌 질환'으로 여겨지는 ADHD 판정을 받게 되면 대부분은 약물치료를 받는다. 이 때 처방받는 약은 '원인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증상을 조절하는 약'이다. 게다가 이 약은 생물학적 욕구를 가라앉히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무기력, 불면증, 메스꺼움, 식욕감퇴, 두통 등과 같은 부작용을 동반한다.

ADHD 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이런 약을 보통 수년동안 매일 복용해야 한다. 이쯤 되면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약이 치료제가 아니라면 부작용을 무릅쓰고하도 굳이 복용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걸까. 의사들은 '학교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없이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권한다. 한마디로 학교에서 고분고분하게 행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약을 통해 아이의 욕구를 통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충격적인 것은 ADHD에 처방되는 약들이 중독성이 높은 '마약류'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미국 마약수사국(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은 ADHD 치료제 성분인 '암페타민'을 '스케줄 II 약물(남용 가능성이 높으나 의학적으로 사용이 허가된 약물)'로 분류한다. 여기에는 코카인, 합성 마약류, 응급의학에서 사용하는 모르핀과 메페리딘 등이 포함된다.

문제는 중독성 강한 약물에 노출된 아이가 겪게 되는 변화다. 김경림씨는 환자에다 문제아로 낙인찍인 아이들이 겪는 패배감과 피해의식은 좀비처럼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시도들을 잡아먹는다고 말한다. 그는 "처음부터 아예 시도 자체를 못하게 하고 무력화 시키고 이런 좌절들을 먹이 삼아 피해의식은 점점 더 덩어리를 키워간다. 이걸 퇴치하는게 가장 힘들고 오래 걸렸다"(65쪽)고 고백한다.

ADHD, 과연 문제로만 봐야 할까?

저자는 독학으로 ADHD를 제대로 알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섭렵했다. 책에는 새겨볼 만한 ADHD 전문 학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구성동으로 이야기한다. ADHD는 문제가 아니라 '재능'일 뿐이라고.

<ADHD 아동의 재능(The Gift of ADHD)>을 쓴 아동학자 라라 호노스웹(Lara Honos-Webb)은 ADHD라는 진단을 받게 되는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특별한 재능을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창의성, 사람에 대한 직관력, 정서적 민감성,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교감, 높은 에너지 수준이다. 남들보다 뛰어난 이 다섯가지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서 이 아이들이 특별해 보이는 것이고 바로 그 특별함 때문에 이 사회에서 오해받고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자 톰 하트만(Thom Hartmann)은 '인류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ADHD를 파악한다. 그는 ADHD로 진단되는 아이들을 장애가 아니라 기질적 특성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트만은 이 아이들을 '사냥꾼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 또는 '에디슨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이라고 표현했다. '사냥꾼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은 열정적이고 창의성이 풍부하며, 혁신적으로 새로운 자극에 쉽게 끌리고, 방관자처럼 굴거나 상식을 초월하고, 쉽게 따분함을 느끼거나 충동적이며 모험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런 특질들로 인해 이 아이들은 탐험가, 발명가, 발견자, 지도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재능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ADHD는 질병이 아니다. 규칙과 통제에 익숙한 학교 시스템의 편의성과 효율성, 권위와 경직성은 아이들의 재능을 올바로 분별하는 대신 아이들을 획일적으로 재단하는데 급급하다. 학교와 사회의 편견, '문제아'라는 낙인이 아이의 자아존중감, 자기효능감을 거세하고 스스로를 부정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아이를 고통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ADHD로부터 내 아이를 지켜라

만약에 내 아이가 ADHD 판정을 받는다면? 부모는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공포에 사로 잡힐 것이다. 의료사고로 법적 분쟁에 들어갈 경우 환자측이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은 심각한 정보의 불균형 때문이다. 의학이라는 분야가 워낙 전문적이다 보니, 정보의 열세에 놓인 환자측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ADHD도 마찬가지다. ADHD 판정 앞에서 부모가 당황하고 절망하는 것은 어쩌면 이 병의 실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진가는 여기서 발휘된다. ADHD를 극복한 평범한 엄마의 수기는 ADHD에 덧씌워진 오해와 허구의 장막을 걷어냄으로써 부모가 안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상쇄 시킨다.

그 다음은 부모의 몫이다. 이 책은 ADHD 진단을 받은 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서 큰 도움을 주지만, ADHD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부모의 일상적인 양육태도에 대해서도 충고를 한다.

'부모가 어떻게 애를 키웠기에 애가 이 모양이냐'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교사에게 동조하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나는 괜찮은 부모인데 아이가 원래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된다... 부모는 자신이 아무리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도 교사와 연합해 아이를 고립시켜서는 안된다. 아이 편에 서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 줘야 한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부모님은 훌륭하신데 아이가 엉망이네요"라는 교사의 시선이 부모인 나에게 위안이 될리 없지 않은가. (132쪽)

나는 내 아이를 내 삶의 정당함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부당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고 방향을 돌이켰다. 선생님들이 하는 말, 친척들이 보는 시선으로 인해 내가 갖게 되는 불편함과 불안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임을 인정하게 됐다. 아이를 시스템에 끼워 맞추려는 노력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고, 적어도 내가 절못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아이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아니다. '이 모든게 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무의식 속에는 '아이를 통해 자기를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걸 포기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143쪽)

아이가 부모의 품을 떠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부모는 교사의 의견에 상당 부분 의존하게 된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아이가 받는 평가에 전전긍긍하게 되고, 교사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휘둘리기 일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주양육자가 부모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의 교육 철학은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아이의 자아 존중감과 자기 효능감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놓치지 않는다면 ADHD의 위험으로부터 충분히 아이를 지켜낼 수 있다. 이 책의 결론은 간단하다. 단언컨대 ADHD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서평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ADHD는 없다 - 한 아이의 엄마가 들려주는 ADHD에 관한 불편한 진실

김경림 지음, 민들레(2013)


#ADHD#과잉행동#주의력 결핍#교육#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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