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내 생일이 있었다. 서른여섯에서 서른일곱이 되는 생일. 아이 셋을 키우는 아줌마에게 생일이 뭐 그리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도 생일을 기다렸다. 생일이라고 해서 아이들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고, 가사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1년에 딱 하루 내가 주인공인 생일이 무척 기다려졌다.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렸던 서른일곱의 생일나로 살아가는 날보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날들이 99%를 차지하는 날들에 생각보다 많이 지쳐 있었나 보다. 분명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아직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첫째, 사춘기보다 더 무섭다는 1춘기를 겪고 있는 둘째, 돌도 안 된 셋째를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엄마로, 남편의 이직으로 60% 줄어든 생활비로 전보다 더 바짝 아끼고 참아가며 살아야 하는 주부로 지내야 하는 나날들이 SNS에 올리는 사진처럼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기에 탈출구처럼 생일을 더 기다렸나 보다. 비록 미역국 한 그릇 더 먹고 나면 나이가 한 살 더 먹어 마흔이 가까워지지만.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생일은 생일 전날부터 생일이 며칠 지난 오늘까지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기만 하다. 분명 생일 축하도 받았고, 반나절이었지만 휴가도 받아 아이들과 떨어져 밀린 내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언지 모를 마음에 서운함이 가시지 않는다.
레시피를 보고 또 보면서 서툴지만, 미역국을 끓이고, 돈이 아까우니 절대 사지 말라고 했지만, 꽃다발과 케이크를 사들고, 부족한 용돈을 아껴 작은 선물도 마련해 주는 남편을 상상했느냐고? 설마 결혼 6년 차에 접어드는 애 셋 딸린 아줌마가? 철없어 보이겠지만 그랬다. 이번 생일엔 그랬다. 작년까지는 별로 바라지 않았는데 세 아이의 엄마로 아등바등 살다 보니 남편이 마음으로 챙겨주는 생일을 기대했었다.
남편이 이번엔 끓여주겠지, 미역국?생일 당일은 오전부터 모임이 있었고, 저녁엔 남편이 야근이라 늦는다고 하기에 생일 전날 식구들끼리 미역국을 먹기로 했다. 남편은 지나가는 말로 "직접 미역국을 끓일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이번엔 끓여 주려고?"라고 되물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알잖아. 못하는 거. 차라리 사줄게. 나가서 먹자"였다. 빈말이라도 "이번엔 해볼까?"를 바랐는데.
결국 올해도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였다. 외식할까 고민도 했지만, 때마침 남편이 급성위염을 앓고 있어 1주일 내내 죽을 먹고 있던 남편을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식당이 없었다. 그리고 외식을 최소한으로 해야 빠듯한 생활비로 유지가 가능하기에 매해 돌아오는 생일, 대수롭지 않다 자신에 변명하며 간단하게 생일밥을 해 먹었다.
내가 나를 가장 귀히 여겨 나에게 정성을 들인 생일상을 차려 줘야 하는데, 가뜩이나 부엌일에 꾀가 나는 요즘인지라 내가 차리는 내 생일상은 최소한의 가사노동만 들이고 싶었다. 집에서 자주 베이킹을 하지만, 내 생일 케이크이니 남편에게 사오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도 먹을 케이크이기에 늘 하는 수고 하루 더 수고해서 우리밀과 건강한 식재료로 내 손으로 내 생일 케이크를 구웠다.
"당신은 내 생일에 뭐 해줬어?"'외식하자', '케이크 사가겠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라'는 남편의 제안을 다 거절해 놓고 이제 와서 서운해 하는 건 참 모순이지만 '다 됐다'고 한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야말로 빈손으로 생일을 보낸 남편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침에 자고 있는 내게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를 했다는데 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선물 없어?"라는 내 말에 "당신은 내 생일에 뭐 해줬어?"라고 되묻는 남편이었다. 주지 않았으니 받지 못한 게 당연하지만, 서운함이 가시지 않는다. 사실 선물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생일 다음 날인 토요일, 남편은 내게 생일 선물로 휴가를 하루 준다고 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저녁에 들어오라 했다. 카드까지 줄 테니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러라 했다. 그러나 급하게 부탁 받은 작업이 있었고, 영화 대신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에 가야만 했다. 5년 만에 처음 받은 나 홀로 휴가를 일하며 보내는 게 좀 억울했지만, 처음으로 아이들과 떨어져 나 혼자 몇 시간이라도 지낸다는 자유로움에 덥석 선물을 받았다.
남편은 아침밥도 하지 말고 눈 뜨자마자 나가라 했지만, 아침부터 아이들과 함께 시리얼이나 짜장 라면을 먹겠다는 남편을 그냥 두고 나갈 순 없었다. 결국 순한 국과 반찬 몇 가지를 해 아침상을 차렸다. 그렇게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곧 돌이 되는 막내 점심까지 만들어 놓고 막내에게 젖을 배불리 먹이고 나니 어느새 정오. 휴가가 반나절로 줄어들어 버렸다.
선물이라기엔 좀 그런 반나절의 휴가그래도 나가야지, 휴가인데. 콩쥐 새엄마가 원님 잔치에 가며 이르는 것처럼 남편에게 빨래도 개 놓고 청소도 해 놓으라 하며 집을 나섰다. 도서관에 앉아 숨돌릴 틈도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보니, 과연 이게 휴가인가, 무슨 선물인가 싶었다. 나는 매일 집에서 애들 보면서 살림하는데, 5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 혼자서 애 셋을 보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었다. 물론 내가 육아와 살림을 하는 동안 남편은 밖에서 일한다. 그런데 선물이라고 휴가를 받은 날 나도 밖에서 일했다. 뭔가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아, 외식도 하긴 했다. 하루 늦었지만, 생일을 맞아 남편 이직 후 처음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내가 저녁을 짓지 않고 밖에서 먹어 밥 한 끼의 수고로움은 덜었지만, 아직 어린 애 셋을 데리고 사람 많은 식당에서 하는 외식은 더 수고가 드는 일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의 나들이라 기분 전환은 되었지만, 이 역시 내가 식당을 고르고 먼저 가자고 서둘러서 나올 수 있었던 걸음이었다. 누구네 집 남편처럼 '아내 생일을 맞아 식당 예약 좀 해주면 안되느냐' 하면 또 그러겠지. 당신 주위엔 다 이상한 남편들뿐이라고...
뭐가 그렇게 서운했던 걸까?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시집까지 보내주시고 손주들 A/S까지 해주시는 친정엄마께 생일축하와 용돈도 받았고, 까꿍이와 산들이에게는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선물도 받았다. 결혼 후 차 한 잔도 함께 못하고 있는 무심한 나이지만, 나를 기억해주는 친구들에게서 축하 인사도 받았다. 내가 만든 미역국에 생일밥도 먹고 촛불도 껐다. 좀 이상하지만 그래도 선물이라며 휴가도 받았고, 외식도 했다. 이만하면 충분한 생일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서운하다. 왜일까? 생일이라고 직접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 줬다는, 당신을 만난 건 더 없는 축복이라는 생일편지를 받았다는, 이름이 새겨진 맞춤 선물을 받았다는 친구들의 자랑이 부러워서? 솔직히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하지만 부럽다. 친구들의 남편이 해준 여러 가지가 아닌 그렇게 아내의 생일을 맞아 쓴 마음 씀씀이가 부럽다.
언젠가 한번은 나도 남편에게 선물도 편지도 받아 봤었는데, 애들이 셋이 되고 같이 산 시간이 더 길어지니 같이 사는 걸로 됐다며 생략하고 있다. 나 역시 남편에게 생일상 외에는 변변한 선물도 편지도 못 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서로의 생일이라고 뭔가를 챙겨주기엔 우리 부부가 너무 고단하고 지쳐 있는 걸까? 세 아이들 생일뿐만 아니라 양가 식구들 생일까지 다 챙겨야 하니 부부 서로의 생일만은 그냥 특별할 것 없이 넘어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받고 싶었던 생일 선물, 따뜻한 말 한마디하소연하듯 남편에게 서운하다고 일기를 쓰고 있지만, 내게 애 셋 다 볼 테니 휴가를 즐기라며 나를 집 밖으로 내보내 준 내 남편도 친구들은 부러워한다. 그러나 난 그런 휴가보다 못하는 요리이지만 부인의 생일이니 어려워도 미역국을 끓여보려는 마음을 원했었다. 늘 표현 하지 않아 그렇지 마음으론 하고 있다 하지만, 생일만큼은 남편이 직접 말로, 혹은 글로 "아이들 키운다고 수고한다, 생일 축하단다, 잘하고 있다, 고맙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난 듣고 싶었다.
이런 내 투정에 남편은 "같이 사는데 굳이 그런 걸 다 말로 해야 아냐"며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아주 가끔 말로 해주기도 하지만, 혼자 고군분투하듯 아이 셋을 키우며 살림하는 난 매일 매일이 어렵고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받고 싶고, 그 누구보다 애쓰고 있음을 인정받고 싶다, 남편에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높다고 하던데 결혼 후 사회생활 없이 거의 집에서만 아이들하고만 지내다 보니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려갔나 보다.
남편과 함께 쓰는 이 육아일기를 남편이 본다면 할 말이 참 많겠다. 인정받지 못해 마음이 힘들다는 내 투정에 남편은 "당신은 내 일을 인정해 준 적 있느냐?" 하겠지. 남편의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에 힘들겠다는 위로보다는 짜증을 더 많이 냈고, 남편은 내게 인정받지 못한다며 서운해 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고 '뿌린 대로 거둔다'. 결국 남편에게 바라는 마음을 접고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자며 밤늦도록 일기를 쓰며 속내를 풀어놓고 나니 서운한 마음이 그나마 좀 가신다.
생각해보니 남편도 많이 서운하겠다동시에 공개적으로 흉을 본 남편에게 미안함이 몰려온다. 표현이 서툴러 그렇지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나에게 무척 애를 쓰고 있는데 말이다. 집에 있는 한 묵묵히 집안일을 도와주려 애쓰고, 늘 애들 다 두고 밖에 나가 쉬라고 얘기해온 남편이다. 남편 말대로 내가 늘 만족하지 못했고, 내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애들을 놓지 못해 지쳤다.
살다 보면 남편 말대로 같이 사는 것만으로 다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수고로움을 알고 인정해주고 고마워하는 게 다 느껴지는 그런 날이. 그런 게 진짜 부부일 것이다. 내가 마음이 상해 가시 돋친 말을 내뱉으면 상대방 마음에 생채기가 나고 그 가시는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는 것도 6년 차에 접어드니 알겠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게 마음으로 잘되지 않는다.
내가 제일 축하해주지 못한 내 생일에 지쳐서 괜히 남편 원망만 했다. 그래도 아직 1년이나 남은 내년 내 생일이 벌써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엄마가, 주부가 되고 보니 그렇게라도 핑계를 댈 수 있는 날이 1년에 생일 하루뿐인 걸. 그토록 듣고 싶었던 따뜻한 말 한마디 내가 먼저 건네 본다.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 그동안 다섯 식구의 가장으로 수고 많았어. 고마워, 여전히 철없고 바라는 것만 많은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