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았다. 공천장을 준 정당 앞에 무조건 줄을 섰다. 자기를 뽑아준 주민은 뒷전이었다.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 정당공천제가 시행된 후 나타난 폐단이다. 이런 일이 앞으로 되풀이 되게 됐다. 새누리당이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오는 22일쯤 의원총회를 열고 기초선거 정당공천 유지를 당론으로 확정할 방침이다.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는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가 모두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이다. 그런데 왜?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까지 파기하면서까지 공천제를 유지하려 할까?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위헌소지가 있고, 후보를 검증하기가 어려워 돈 선거 재연 등 부작용이 있다는 것인데. 진짜 그럴까? 천만에. 아니다. 그 반대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정당 의견에 따라야 했다"
"내 의사와 관계없이 정당 의견에 따라야 했다. 소신있게 할 수 없었다. 무척 불편했다.""(정당으로 나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 대 당으로 모든 일이 처리됐다. 그 과정에서 번번이 서로 요구조건을 거래하는 일이 이루어졌다. 이런 걸 밀실 정치라고 하나?"경기도의 한 지자체 현역의원 고백이다. 지난 15일 오후 두 의원을 만났다. 자신들이 드러나는 게 불안했는지 두 의원 모두 실명과 정당을 거론하지 말아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정당 공천제가 가져온 폐단은 언론 보도만 봐도 알 수 있다. 경기도 성남시 의회는 지난 2012년 말, 시정 현안 처리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등원 거부로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생계비 지급 중단 위기에 놓였다. 당시 성남시가 추진한 시정 현안은 기초생활보장수급비와는 전혀 관계없는 '도시개발공사 설립 안', '정자동 시유지 매각' 사업이었다.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며 추태를 부린 지자체도 있다. 경기 구리시 의회다.
지난 2012년 9월, 새누리당 의원들은 책상 등을 이용해 민주통합당 의원들 본회의장 진입을 저지했다. 도시공사 설립과 관련한 예산안 등 추경안 의결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이튿날 새벽 4시쯤에는 새누리당 지지자들로 보이는 7~8명의 청년들이 난입, 미리 들어가 있던 민주당 측 박석윤 의장의 팔·다리를 붙잡아 복도에 내동댕이쳤다. 이 같은 소동은 이날 오후 1시, 경찰이 강제해산할 때까지 계속됐다. 의정부 시의회는 여야 간 의장 자리다툼으로 장기간 공전하다가 급기야 고소·고발 전을 벌였다. 이를 보다 못한 YMCA 등 1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시민 500여 명이 시의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 <서울신문> 2012년 9월 18일자끊이지 않는 정당 공천 잡음과 비리
이뿐인가? 정당 공천제 폐단은 공천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동안 정당공천으로 인한 잡음과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공정하게 한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톡 까놓고 권력을 쥔 사람, 지구당 위원장에게 줄서야 공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기초의원들은) 하수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소신껏 일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경기도 모 지자체 의원 고백이다. 공천 잡음과 비리 문제 역시,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2010년 4월 16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 여주 군수가 경찰에 붙들려 왔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군수 앞에는 돈다발이 수북했다. 고속도로에서 '공천 뇌물 질주'를 벌인 직후의 모습이다. 지방 선거를 한 달 보름 여 앞둔 시기였다. 돈다발은 군수가 자신의 재공천을 부탁하며 지역 국회의원에게 전달하려던 2억 원이었다. 돈을 주고 자리를 뜬 군수와 이를 돌려주려는 보좌관 사이에 고속도로 추격전이 벌어졌다. 결국 보좌관이 경찰에 신고했고 군수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 <경기일보> 2014년 1월 8일자 사설이 밖에도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로 인한 폐단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다면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어째서 이렇게 정당 공천에 목을 매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공천과 동시에 샴페인 뚜껑이 절반쯤 열린 거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지방선거는 대부분 중앙의 정치 바람에 따라 결정됐다. 새누리당 쪽으로 바람이 불면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고, 민주당 쪽으로 불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심지어 지난 2006년 부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실종된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졌는데도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후보자는 나중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 후보가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 주민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당선되고 나면 주민은 뒷전이다. 자기를 의원으로 만들어 준 게 주민들이 아니라 정당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천장을 준 정당 앞에 줄을 서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 후보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대통령 공약은 국민들 뜻이기도 하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찬성하는 국민이 반대하는 국민보다 훨씬 많다. 국민들도 정당공천에 따른 폐단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공천 폐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 요구를 무시하고 새누리당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줄 세우기'를 계속 하려한다. 이것은 독선이다, 오만이다, 일방통행이다. 그리고 '불통선언'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위해 이제 대통령과 국민이 나서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