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주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날이어서 가슴이 무척 설레는 날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서고 보니까 심경이 착잡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에 있는 선이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입니다.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 왔고, 발전이 지체되어 왔습니다.다행히 여러 사람이 수고해서 이 선을 넘어가고 넘어왔습니다.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금단의 선을 넘어갔습니다. 제가 다녀오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점차 금단의 선이 무너질 것입니다."
2007년 10월 2일 오전 9시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고인은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 뒤로 누구도 합법적으로는 그 선은 넘지 못 했다. 그로부터 6년 뒤 금단의 선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
당시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걸음이 마지막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설령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집권하더라도 10년 동안 다져진 남북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되돌릴 순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MB정부는 집권 단 6개월만에 금강산을 닫아 버렸고 집권 3년 차에 5·24조치로 남북관계를 사실상 6·15이전으로 돌려놓았다. 그 사이 북한은 두 번의 핵실험을 단행했고 두 기의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천안함, 연평도사태로 이어진 2차례의 물리적 충돌 이후 한반도에는 전쟁위기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월 위기설이 또다시 유령처럼 한반도를 떠돌고 있다.
북한인권법은 북한붕괴법이처럼 남북관계가 폭발 직전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북한인권법을 국회에서 기어이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왜 새누리당은 북한인권법에 목을 메는 걸까? 정말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민생이 걱정돼서? 지나가는 소가 웃다가 옆구리 터진다. 언제부터 새누리당이 인권을 중시했나? 그렇게 인권을 중시하는 정부가 수색영장도 없이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했나?
예산이 없어서 대통령의 핵심공약 중 하나인 기초노령연금도 사실상 백지화된 마당에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과 민생을 챙긴다는 것은 웃기는 소리다. 지금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필요한 건 북한인권법이 아니라 노인인권법이다.
물론 우리 형편이 어려워도 북한이 지원을 간절히 원한다면 고려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동족대결을 격화시키는 악랄한 책동'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북한인권법을 추진하는 이유는 목적이 다른데 있기 때문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새누리당이 북한인권법을 추진하는 이유는 북한 정권의 붕괴, 즉 '대박'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인권법은 애초 북한 주민의 인권, 민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진심으로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다면 금강산 관광부터 재개하고 5·24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순리다. 남북교류협력기금도 쓸데가 없어서 '잠자고' 있는 판에 왜 북한인권법으로 예산을 낭비하려 하는가?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의 인권을 명분으로 북한의 내정에 개입하기 위한 북한붕괴법일 뿐이다.
북한인권법은 결과적으로 '북한인권단체지원법'. '대북전단살포지원법'이 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설령 개선되더라도)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국회에 제출한 5개의 관련 법안 중 4개가 '북한 인권 재단' 설립 안을 포함하고 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북한인권단체, 탈북자단체는 새누리당의 강력한 외곽행동부대 중에 하나다. 결국 북한인권법은 정권보위세력에 대한 '보은입법'인 셈이다.
실효성과 상관없이 북한인권법은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북한인권법의 통과는 한국 정부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추구한다는 의혹을 실증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도 똑같은 방식으로 '남조선인권법'을 만들어 국내 정치에 개입하면 어떻게 할건가? 우리는 인권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아까 그 소가 지나가다 또 웃는다.
'햇볕정책2.0'이 아니라 '비핵개방2.0'지난 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대북정책이 더 이상 국론분열의 빌미"되선 안 된다며 "국민통합적 대북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인권 문제 등에 대해서도 직시"하고 "북한의 인권과 민생을 개선하기 위한 '북한인권민생법'을 당 차원에서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지난 16일 김성곤 의원을 위원장으로 심재권, 정청래, 홍익표, 윤후덕, 인재근 의원 등이 참여하는 '북한인권민생법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김한길 대표는 최근 YTN에 출연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국민 모두가 같을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우리 정부와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을 법제화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언제부터 북한의 인권상황에 '분노' 했는지 모르지만, '북한인권민생법'은 한마디로 자살골이다. 김 대표가 뜬금 없이 새로운 대북정책을 발표한 것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의 종북공세를 차단하면서 중도보수층을 끌어 앉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결국 '국민통합적 대북정책'이란 새누리당의 종북공세를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인 셈이다.
민족의 장래가 걸린 대북정책을 선거용으로 급조하는 정략적 발상부터 천박하지만 새누리당의 대박전략(북한붕괴전략)에 편승해 중도보수표를 얻어 보겠다는 얄팍한 수는 정략적으로도 유치하다. 과연 "나는 종북이 아니다!"라고 목놓아 외치면 중도보수표가 김 대표의 품에 안길 것 같나? 안타깝지만 김 대표가 그토록 애타게 원하는 중도보수층에는 이미 안철수 의원이 '신당'이라는 큰 알을 박아 놨다.
민주당 지도부의 우향우전략은 집토끼도, 산토끼도 모두 잃은, 한마디로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욕심쟁이 개의 어리석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새누리당의 북한붕괴전략에 편승하는 들러리정치로 민주당 지도부가 얻을 것은 지지층의 분노뿐이다.
지난 17일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연평도 평화공원을 방문해 "평화를 파괴하고 일체의 무력 도발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햇볕정책의 원칙"이라며 "민주정부 10년에도 NLL을 잘 사수했고 앞으로도 계속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햇볕정책의 원칙은 '무력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다)는 것이 아니라 남북의 화해, 협력으로 무력 충돌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NLL사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만들려고 했다.
김한길 지도부가 이른바 '새로운 대북정책'을 '햇볕정책2.0'이라고 우기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0·4선언에서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NLL수역에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김한길 대표의 북한인권민생법과 NLL사수 발언은 이 같은 10·4선언의 합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김한길 대북정책은 '햇볕정책2.0'이 아니라 '비핵개방2.0'일 뿐이다. 민주당 지도부에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적어도 '햇볕정책2.0'이라는 단어는 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6·15와 10·4선언의 폐기를 선언하라. 그러면 당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중도보수표를 조금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 에 중복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