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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혹은 청년세대. 20대를 떠올리면 덩달아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물론 이것 외에도 20대를 표현하는 말들은 많다. 하지만 연상 단어들만으로 다 설명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20대가 처한 오늘의 입장을 떠올려보는 것도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 일이다.

먼저 정치적 입장에서는 지난 선거에서 '20대 개새끼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20대의 정치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이 거론되며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인데, 시간이 흐른 뒤 20대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는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게으른 구직자'로 낙인 찍혀 있다. 실제로 기업들이 매년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여 급여가 턱없이 낮고, 일자리 수도 늘어나지 않고 있는 현실인데 말이다.

다른 세대로부터 무언가 이루어내리라 기대를 받으면서, 동시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렇듯 다양한 측면에서 20대의 세대담론을 서술한 책이 바로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사회가 보는 20대, 그들 스스로가 보는 20대

말하자면 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다 했고, 그래서 경쟁에서 승리를 거뒀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날에 희망이 없는 그런 열패자들이다. 학벌 사회의 승자이면서 잉여 인간이 된 것이다. 이들의 열패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월하게 취직했던 몇 학번 위의 선배들이나 얼마 안 되는 자리를 잡아채는 데 성공한 친구들과 자신을 끝없이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본문 149~150쪽 중에서)

기성세대가 보는 20대는 앞서 언급했듯이 '꿈도 열정도 잃은 게으른 세대'로 묘사된다.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현실에 대한 푸념만 하는 집단이고, 능력에 비해서 눈높이만 끝없이 높이려는 철부지같은 이미지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20대는 억울하다고 말한다. 이전의 그 어느 세대보다 (강요에 의해서든 스스로의 의지였든)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고스펙과 높은 학력을 지니게 되었으나, 정작 현실에서는 취업과 학업의 경쟁만으로도 힘겨운 시대가 되었는데도 꿈과 열정까지 요구받는다고 말이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적힌 글을 인용하자면, 20대는 "비효율적인 학벌 사회에서 '의자놀이'를 강요당하며" 살고 있다. 군대와 가정에서는 이미 미성년자가 아님에도 끝없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라며 애 취급을 받아야 하는 신세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라고 간섭받으니, 이것이야말로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지 않은가.

더불어 사회는 부모세대가 살던 당시의 '발전'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정체되어 있으며, 저출산 문제와 맞물린 다양한 측면으로 보면 반대로 '내려가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어르신들을 만나보면 그렇게 부유하지 않은 분들도 '얼마나 세상이 좋아졌냐'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하지만 이 세대가 세계에 대해 가지는 '느낌'은 그와는 정반대다. 그들은 청소년기와 청년기 초반에 그들이 누렸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들 부모님 세대가 그들보다 훨씬 고생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엄청난 요행이 생기지 않는 한 자신의 평생 기대소득이 부모에게 미칠 수 없음을 '안다'. (본문 133쪽 중에서)

저자 한윤형의 지적처럼, 현재 청년세대가 연애와 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가 된 배경을 사회적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대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채찍질과 동떨어진 위로를 하며 멘토를 자처하는 자세야말로 20대를 괴롭히는 행위라는 것이다.

입체적으로 살펴본 청년세대, '동네북'이 돼버린 20대

각종 언론매체는 선거에서의 패배, 혹은 높은 실업률의 이유를 말할 때 쉽고도 편하게 20대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이제 성인이 되었기에 책임을 피할 수 없고, 사회적으로 가장 권위주의의 저격에 취약한 계층이기에 '철부지'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우면 각종 문제의 이유로 거론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20대가 완전히 '동네북'이 되어버린 셈이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미덕이라면, 20대가 속한 청년 세대를 말하면서 어느 한 쪽이 듣기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선에서 끝맺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의 내용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20대의 게으름'을 이유로 삼은 비난이거나, 혹은 20대의 입장만을 대변하면서 '그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식의 구차한 변명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편적이며 획일적인 분석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을 근거로 20대의 생각과 입장을 살펴보려고 노력한 점이 보인다. 또한 'X세대'·'88만원 세대' 등 이전까지의 세대론이 갖는 적절한 지적과 빗나간 분석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어서 이러한 시각들을 대체할 새로운 관점도 제시한다는 것이 책의 매력이다.

더불어 이러한 청년세대의 문제가 단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를 가르는 진영논리로서 바라볼 일이 아니라는 논점도 흥미롭다. "청년 세대의 문제는 그들이 가장 힘든 세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한국의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表層)이기에 문제가 된다. 등록금 문제와 실업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 부모 세대의 고난이다"라는 문장이 바로 그러한 부분이다. 사실 20대가 직면한 많은 사안은 단지 그들만의 고충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인 것이다.

한국이 '청춘을 위한 나라'가 되려면

대학생의 85퍼센트가 비정규직이 되는 세상, 한국 자본주의는 더 이상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며 '고용 없는 성장'만 계속된다. 정작 20대를 소외시키는 기성세대는 획일적인 잣대로 청년세대를 규정하려 할 뿐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젊은 세대의 취향은 파편화되었으며, 만성화된 불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꿈도 목표도 잃고, 생존만을 위해 하루를 때우기에 급급한 상태가 되었다. 가정에서는 '엄친아'와의 비교에 시달리고, 사회적으로는 '고스펙'을 요구받으면서도 '눈높이'는 낮추라 요구당한다. '반값등록금'은 선거에만 쓰이는 구호로 전락했고, 정치가 현실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는 공약을 뒤집는 정부 덕분에 실망으로 변했다.

20대의 일원으로서 나는 우리 세대를 '파편화된 취향과 만성화된 불안의 세대'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불안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는지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치의 미래도 밝지 않다. (본문 194쪽 중에서)

종합해서 볼 때, 20대는 단순히 철부지가 아니다. 저자가 말하듯이 "정치에 대한 냉소 역시도 그들이 정치의 속성을 잘 알기에 그런 것"이다. 세대담론으로 끊임없이 괴롭히거나 뜬구름같은 '멘토질'로 조언하며 토닥이려고 하기보다, 청년세대를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훗날 기성세대가 될 지금의 청년들도 대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은 마찬가지다. 그것이 한국이 '청춘을 위한 나라'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 씀 | 어크로스 | 2013.4. | 1만5000원)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지음, 어크로스(2013)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한윤형#세대담론#청년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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