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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받는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 이명박 정부 시절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다 해직된 MBC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가운데)이 1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MBC본부 노조원 43명에 대한 해고·징계 무효 확인 소송 선고공판에서 승소한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방송 매체는 일반 기업과 달리, 표현의 자유와 올바른 알권리 보장을 위해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 보장이 필요하다"면서 "방송의 공정성을 위한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축하받는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이명박 정부 시절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다 해직된 MBC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가운데)이 1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MBC본부 노조원 43명에 대한 해고·징계 무효 확인 소송 선고공판에서 승소한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방송 매체는 일반 기업과 달리, 표현의 자유와 올바른 알권리 보장을 위해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 보장이 필요하다"면서 "방송의 공정성을 위한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 유성호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상식이 상식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라고 우기는 억지가 비일비재한 상황이어서 법원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런데 상식은 아직 살아있었다.

나를 비롯한 언론노조 MBC본부 노조원 4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징계 무효 소송에서 지난 17일 승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70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을 구해 첫 페이지부터 한 자 한 자 빠짐없이 모두 읽어보았다. 판결문 가운데 상당한 분량이 김재철 전 사장 취임 직후부터 발생한 MBC의 역사였다. 파업 백서의 축소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만큼 판결을 내리기 전에 판사들이 수백 페이지에 달했을 자료들을 꼼꼼히 읽고, MBC의 실상에 대해 정확히 파악을 한 것이다.

판결문을 다 읽고 든 첫 번째 소감은 번거롭고 귀찮았을지도 모를 이 작업을 일일이 해준 데 대해 대단히 감사하다는 것이다. 2012년 MBC 노조의 파업을 이해하려면 사실 이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번 판결문은 파업 백서의 축소판

지난 2010년 이후 MBC의 역사는 한마디로 사유화이다. 김재철 전 사장을 비롯한 소수의 경영진이 공공재인 MBC를 마치 자기 개인의 허접한 물건인 양 멋대로 다루었다. 인사권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기자와 PD 등 제작진을 능력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인사발령을 냈다. 물론 그 기준은 오로지 정권에 대한 충성도이다.

경영권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기자와 PD 등 제작진의 의사는 무시하고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의 아이템을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장난을 쳤다. 그 기준 역시 오로지 정권에 대한 충성도이다. 이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하면 역시 경영권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자의적으로 징계를 남발했다.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 제작진의 목소리는 프로그램에서 사라져버렸다. 소수 경영진의 목소리가 마치 전체 MBC의 의사인 양, 전체 대한민국의 의지인 양, TV 화면을 채웠다. 제작진은 이제 거대한 기계의 한 부품으로 전락했다. 방송의 공정성이 무너진 순간 MBC 기자와 PD 등 제작진은 더 이상 자유의지를 지닌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었다. 그보다 수십 만 년을 거슬러 호모 에렉투스로 퇴화하기를 강요받았다.

그렇다. 그만큼 공정방송은 제작진들에게 노동의 질 나아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근로조건인 것이다. 임금이나 노동시간도 중요한 근로조건이다. 하지만 적어도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그 방송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지, 어떤 출연진을 내세울 것인지, 어디서 촬영을 할 것인지를 제작진들 간의 자율적인 논의를 통해 결정하는 과정은 노동의 결과물을 좌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이다. 이 근로조건을 빼앗아버리면 언론 노동자들은 그저 "영혼 없는" 기계에 불과하다.

이번 판결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바로 공정방송이 언론사 노동자들의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임을 인정한 점이다. 그리고 그동안 MBC 경영진이 인사권과 경영권을 위법하게 남용해 노동조건에 심대한 변형을 가져온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 경우 루소가 말한 저항권으로서 노동자들의 저항권, 즉 파업권을 보장한 점 또한 역사에 남을 판결이다.

우리는 당당하고 당신들은 조바심을 낼 것이다

오늘 참 기분 좋은 날이다. 속된 말로 머리에 털 난 이후 가장 좋은 날이다. 6명의 해고자들이 복직할 수 있는 길이 열려서 좋고, MBC의 2000여 조합원들이 이번 판결을 보며 천년 묵은 한을 푸는 심정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되니 또 좋다. 우리를 응원해준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동일한 감정을 느낄 것이라 생각되니 이 또한 좋다.

물론 경영진은 절대 해고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항소와 상고를 하며 시간 끌기에 나설 것이고, MBC 내부의 상황이나 해고자들의 현실 역시 하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승소 소식이 알려진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좋다. 이제 우리가 정당하고 당신들이 무법자였음이 법원의 판결을 통해 확인되었다. 우리는 당당하고 당신들은 조바심을 낼 것이다.

법원의 양심이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니, 과거로 미친 듯이 질주하는 최근의 사회 분위기도 그저 자고 일어나면 끝날 한 여름 밤의 꿈에 그칠 것이란 현실적인 기대를 품게 된다. 참 기분 좋은 오늘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용마 기자는 전 MBC노조 홍보국장입니다.



#MBC#MBC노조#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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