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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평화상단협동조합>의 한라봉  자극적이지 않은 단맛이다. 아내 모르게 주문했는데 2세트 더 시켜서 설에 가져가자고 한다.
<강정평화상단협동조합>의 한라봉 자극적이지 않은 단맛이다. 아내 모르게 주문했는데 2세트 더 시켜서 설에 가져가자고 한다. ⓒ 강현호

지현에게.

결혼식에는 참석 못 하고 선물로 대신하게 되었지만 이제라도 축하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팍팍하다 해도 결혼식 답방은 도리일 터인데 감기로 앓아 눕는 통에 그러질 못 해서 내내 미안했다. 내 축하가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무례가 너에게 상심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긴 고민 끝에 '강정 평화상단 협동조합'에서 판매하는 한라봉을 선물하는 것으로 축하를 대신하기로 했어.

백화점에 즐비한 신혼생활용품들을 놔두고 난데없이 한라봉이라서 조금 당황했으려나? 제주도 강정마을 알지?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많이 잊혔지만 한때는 꽤나 큰 이슈였지. 조용한 마을을 해군기지로 바꾸려는 정부와 군사기지보다는 자연과 생계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다툼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곳이야. 그 다툼의 한 가운데에서 생겨난 협동조합에서 수산물과 귤 등을 팔아왔는데, 2014년 설 선물로 한라봉을 내놨더라고.

강정마을 한라봉으로 인해 네 생각이 났던 건, 강정마을의 다툼이 아내와 나의 싸움을 떠올리게 해서야. 결혼 선배로서 결혼의 씁쓸한 미래를 살짝 알려주는 것도 의미있겠다 싶어서 말이야. 설탕의 단맛이 강해진다고 해서 자꾸 열을 가하면 써질 수가 있거든. 신혼의 달콤함에 균형을 잡아주고 싶은 선배의 작은 배려(?)랄까?

결혼하고 수십 년을 함께하면 달관을 하게 돼서 사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게 되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제 결혼 4년 차에 9개월짜리 아이가 있는 우리집에서는 아직 먼 미래다. 오히려 잠결에 꺼낸 말 한마디, 변기 사용 방식, 밥 먹으면서 TV 보는 문제 등등 다툼의 불씨는 너무도 많다. 처음에는 이 불씨들을 없애보려고 애를 썼어. 그런데 안 되더라고. 아내나 나나 각자 30년 넘게 살면서 얻은 습관들이라 "앞으로 고칠 게"라고 말은 자주 하지만 결코 고치거나 버리지 못했어.

나쁜 습관은 매 시간 반복되는 것도 있고 주 단위, 월 단위로 튀어 나오기도 하고, 어떤 건 연 단위로 튀어나와. 예를 들면 명절 선물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정관념 같은 거 말이야. 그러니 다툼이 끊이질 않아. 싸우고 사과하고 (진정성이 있는 사과인지 아닌지) 판정 받고 (진성성이 받아들여지면) 화해하고 개선을 맹세하는 일이 반복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싸움이 줄어드는 건, 어쩌면 상대방의 나쁜 습관 중 빈도가 잦은 순서대로 적응해서인지도 모르겠어. 계속 복닥거리며 살아야 하는데 자꾸 들추고 지적하면 서로 힘드니까 어느 한쪽이 아량을 베푸는 거지. '내 허물은 없겠어?'하는 심정으로 상대방의 나쁜 습관을 용인해 주는 거랄까?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몇 년 사이에는 적응이 안 되는 습관들이 있더라. 내 경우 아내의 한숨 소리가 싫었어. 사람이 살다보면 한숨 쉬기도 하고 그러는 건데 유독 아내의 한숨은 나의 온 신경을 벅벅 긁는다. 반면 아내는 내 '사과의 화법'을 싫어하지.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고 잘잘못의 비율을 따져가며 지적하는 사과에는 영혼이 없다나. 그래서 그 진정성을 인정하질 않아. 나로서는 그렇게 사과하는 게 엄연히 발생한 '팩트'를 명확하게 밝히는 솔직함의 표현인데도 말이지.

<강정 평화상단 협동조합>의 2014년 선물세트  자세한 정보는 http://cafe.daum.net/peacekj/MvDT/82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정 평화상단 협동조합>의 2014년 선물세트 자세한 정보는 http://cafe.daum.net/peacekj/MvDT/82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강정평화상단협동조합

이런 경우 우리는 협상을 한다. 패널티를 거는 게 보통이지. "다시 한숨을 쉰다면 나는 당신이 듣기 싫어하는 '아이고, 내팔자야.' 소리를 10번 할 수 있게 해줘." 하는 식이야. 애들 소꿉장난 같지만 의외로 효과는 좋아.

분명한 건 이런 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힘들고 지치고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거야. 감정의 앙금도 남고. 그러니 다툼은 일어나지 않는 게 좋아. 하지만 꼭 일어난다. 따로 산 세월만큼 같이 더 살아보면 모를까 다툼은 늘 좇아와 내 앞에서 검은 입을 벌려.

이때 정말 필요한 건 사실 둘만의 규칙이 아니야. 배려야. 그것도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배려. 감정상태가 강건하고 체력이 남아 있고 덜 피곤한 사람이 옳건 그르건 참아주고 받아주는 거야. 규칙을 자꾸 세우고 그걸 지켜내면 다툴 일은 없겠지. 그런데 그게 잘 안 돼. 회사에서 꼬장꼬장한 상사한테 종일 시달린 것도 모자라 만원 버스에서 무례한의 트림까지 쏘이고 온 날 저녁에는 둘만의 규칙이고 뭐고 다 잊게 돼. 그냥 이번은 좀 날 이해해주고 받아줬으면 싶은 마음뿐이지.

그런데 그 힘든 타이밍은 왜 그리 겹치는 걸까. 서로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가 많아서, 나에게 상대방을 배려해 줄 만큼의 여유가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아. 그러다 싸우게 되는 거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고, 내가 배려할 수 있었음을 후회하게 될 때 먼저 사과하는 게 보통이야. 이게 안 되면 집안에서는 오랫동안 으르렁거림과 침묵이 번갈아가며 춤을 추지.

싸우지 않고 살 수 없다면 배려할 수 있는 체력이나 재력 그 어떤 거라도 비축하고 쌓아두면 다툼의 횟수는 줄고 냉전기간은 짧아질 거야. 그리고 어쩔 땐 억지로라도 배려를 끌어올려야 할 때도 있어. 이런 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게 또 백년 쯤은 같이 살겠다고 한 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은 아닐까 싶다.

나도 같은 한라봉을 주문했는데 지난 토요일에 도착해서 하나 까 먹어봤지. 달콤함이 강하지는 않지만 온화한 단맛이 나는데다 상쾌한 향까지 퍼지는 게 조용한 겨울밤에 한 조각 한 조작 베어 무는 재미가 남다르다. 부디 그 한라봉의 부드러운 단맛과 은은한 향처럼 극단은 피하고 늘 첫마음을 거름 삼아 조금씩 세월 따라 닮아가는 너희 부부의 모습을 멀리서 기원해본다. 더불어 강정마을에서도 정부 긴 안목과 배려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강정마을#강정평화상단협동조합#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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