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 '은하철도 999'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별 의미 없는 숫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의 제게는 의미가 분명한 숫자입니다. 이 글이 정식기사로 채택되면 다음에 올리는 기사는 1000번째의 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올리는 기사 수가 백 단위에서 천 단위 숫자로 넘어가기 전에 밀린 숙제를 마치듯이 꼭 끝내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이 글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어떤 정승의 461년만의 나들이(2007.03.22)'라는 제목으로 올렸던 숙제에 대한 답입니다.
2007년 3월 21일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던 조선 명종 임금 때 우의정이었던 임백령의 산소를 그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선산으로 461년 만에 이장한 날입니다.
어떤 정승의 461년 만의 나들이이장을 한 임백령의 산소는 유좌묘향(酉坐卯向, 묘가 동쪽을 향하도록 씀)이라고 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패철(나침반)로 직접 가늠을 해봐도 분명 유좌묘향이었습니다. 봉분에 두르고 있는 테두리 석을 봐도 앞쪽은 토끼 문양, 뒤쪽은 닭 문양이니 유좌묘향이 틀림없습니다.
동행한 지관, <여의주를 찾아서>의 저자 김진옥씨는 큰일이라고 했습니다. 자리도 내키지 않지만 좌향이 더 문제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자손들이 화를 당하는 일이 많이 생길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봉분작업 중인 걸 되돌리게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풍수를 모르는 필자가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들을 수 있게끔 쉬운 말로 자세하게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김진옥씨는 예를 들어가며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산소를 유좌로 모시려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황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리가 되려면 어미닭이 달걀을 품듯이 아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산소를 쓰고 있는 자리는 둥지를 마치 건공에 매달아 놓은 듯 불안한 자리(좌향)라고 했습니다. 건공에 매달린 둥지에서 알을 품다보면 마음이 불안한 어미닭이 알을 굴리다 자칫 떨어트려서 깨뜨릴 수도 있고, 부하율도 떨어지는 것처럼 저렇게 불안하게 산소를 쓰면 자손들이 다치게 마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습니다. 산소를 쓰고 있는 자리는 봉긋한 동산 꼭대기쯤이어서 사방에서 덩그러니 다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아래쪽으로는 댐을 만드느라 조성된 절개지가 있어 뭐라도 떨어지면 깨질 수 있는 지형입니다. 이곳처럼 주변에 높은 산들이 있고, 사방이 다 드러나는 자리에 산소를 쓰려면 신좌(辛坐)나 미좌(未坐)로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변의 높은 산들은 원숭이가 뛰어 오를 수 있는 형상이고, 양의 뿔은 관직을 상징하는데, 뿔을 가진 양이 사방으로 제 뿔을 자랑 하기에 딱 좋은 자리니 자손들이 관직을 뽐낼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김진옥씨가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풍수는 산소를 쓰는 좌향과 24방향을 상징하고 있는 동물이 주변산세와 조화를 이루느냐 이루지 못하느냐에 따라 길흉을 따지는 형국론 풍수였습니다.
엉뚱하게 틀어진 좌향, 왜 그렇게 됐을까 선산임씨 괴마공파 파조, 명종 때 우의정을 지내신 임백령 할아버지의 산소를 이장하는 일이니 결코 가벼이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따질 것 다 따지고, 알아볼 것 꼼꼼히 알아보고 했을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며칠 후 다시 찾아가 세워진 비석을 보니 좌향이 신좌(辛坐, 산소를 동쪽에서 남쪽으로 15도 틀어진 방향으로 씀)로 되어 있습니다.
산소를 쓰고 나서 비문을 새긴 게 아닙니다. 비석을 맞춰 놓고 이장을 하였으니 이장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까지는 신좌로 모시는 걸로 돼 있었던 건데 어떤 연유로 유좌(동쪽 방향)로 15도를 틀어서 모시게 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장을 총괄하셨던 분은 필자의 재종형님입니다. 한학을 오래 공부하셔 조예가 아주 깊고 신중하신 분입니다. 성균관 전학(典學)이기도 하시지만 고향 주변에서는 이 시대 마지막 선비이자 유학자라고 할 만큼 올곧게 사셨던 분입니다. 실수를 할 리가 없는 분이 총괄하고 있는 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거나 귀신이 부리는 조화가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을사사화 때 추관이셨다는 할아버지의 업이 후손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산소를 쓰고 있는 자리에서 댐 상류로 약 1.5Km 정도를 올라가면 노수신적소가 있습니다. 노수신은 을사사화 때 파직을 당했다 선조 때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그런 노수신이 귀양살이를 하던 적소가 가까이 있다는 걸 떠올릴 때는 노수신의 원혼이 하 세월이 지났음에도 구원을 이기지 못해 몽니를 부리거나 훼방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여쭸습니다. 임백령 할아버지는 470여 년 전에 돌아가신 분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자손들이 엄청날 겁니다. 그 많은 자손들 중에서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생길 거라고 하는 건 너무 막연합니다. 행여 화를 당하는 후손이 생기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사고 확률에 빗대어 볼 때 그보다 적다면 혹세무민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수백 년 전 조상이라도 이렇듯 산소를 이장하게 되면 이장에 관여한 자손들이 손자가 돼 영향을 받게 되는 거라고 했습니다. 김진옥씨는 지켜보자고 했고, 필자는 살펴봐야할 숙제라고 했습니다.
반복되는 불행, 우연일까 아니면 정말 풍수 때문일까?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어진 우연한 사고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숙제처럼 지켜보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만 생각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산소를 이장하고 채 1년이 되지 않아 고개 너머 선산임씨 집성촌인 걸만리에 사는 자손 중 한 명이 졸지에 급사했다고 했습니다.
그 후 1년쯤이 지난 봄, 고향마을에 살던 소종 장손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는 어버이날 행사 자리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급사(急死) 했습니다. 고향에서는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부녀회에서 잔치 음식을 준비해 마을회관에서 경로잔치를 벌입니다. 한창 바쁜 때지만 그날만큼은 동네 어르신들 거반이 다들 모입니다.
그날도 그랬답니다. 잔치가 벌어지고 종손어르신 또한 맛난 음식을 배부르게 드시며 기분 좋게 반주도 몇 잔 드셨답니다. 시골 마을회관은 대개 두세 개 정도의 널따란 방으로 돼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방에서 종손께서는 잠시 쉬려는 듯 구석으로 가 슬그머니 돌아누우셨답니다. 그러고 잠시 후, 종손의 부인되는 이가 종손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기를 쓰려고 깨우다 보니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답니다.
그리고 6년 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 11월 3일, 임백령할아버지의 시향(時享)을 지낸 날 저녁, 산소 이장을 총괄하셨던 재종형님이 황망하게도 경운기 사고로 고종명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비명횡사하셨습니다.
젊어서는 장사 소리를 들었고, 나이를 잡수셔서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건강하셨던 분입니다. 경운기 또한 수족을 부리듯 사용하던 농기계니 서투를 리 없는 분이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회복할 수 없는 윤화(輪禍)로 명운을 달리하셨다는 부고를 접하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정도전과 무학 대사도 다툰 좌향(坐向)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다 죽습니다.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언처럼 들었던 일들이 여봐란 듯이 벌어지고 있으니 도대체 풍수가 무엇인지, 묏자리가 정말 영향을 미치는 건지 아닌지가 점점 궁금해지기만 합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한양천도를 결정했습니다. 그때, 한양에 지을 대궐 좌향을 놓고 정도전과 무학 대사가 서로 해좌사향(동쪽으로 30도 틀어진 남향)과 자좌오향(정남향)을 주장하는 일이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풍수에서 좌향은 중요하다고 합니다.
임백령 할아버지의 산소가 신좌에서 유좌로 뒤틀린 연유는 무엇이며, 묏자리에서 좌향에 따른 영향이 정말 이다지도 분명한지 더더욱 궁금해질 뿐입니다. 999를 끝으로 백 단위는 끝이 납니다.
우연히 반복되는 불행인지, 아니면 정말 풍수 때문인지는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999라는 숫자를 넘지 못해 지금껏 머물던 모든 불행 또한 이쯤에서 끝이길 기대해 봅니다. 999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는 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풍수와 관련한 영향을 이제는 끝내고자 하는 바람을 나름대로 설정한 수비학에 싣기 때문입니다.
졸지에 명운을 달리하신 일가친척의 혼백들 또한 더 이상 구천에 머물지 말고 천상계로 편히 드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