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2014년도 서울시교육청 예산수정안에 동의할 수 없다며 21일 재의를 요구했다.
올해 서울시교육청 총예산은 7조 4391억 원이며, 이중 99.4%는 문용린 교육감이 편성한대로 통과됐고, 나머지 0.6%인 469억 원을 서울시의원들이 심사하는 과정에서 증액해 편성한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의 의견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서 배려하고 협상하고 상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의 재의 요구 이유에 진정성이 없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앞서 교육청과 의회실무단간의 협상을 위한 물밑접촉이 진행됐었다. 그때부터 서울시교육청이 '혁신학교 예산을 단 1원이라도 증액하면 증액예산 전체를 부동의하겠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런데 예산수정안이 통과된 날부터 언론에선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문 교육감이 지역학교 시설환경개선비 301억 때문에 거부한다는 거였다. 그것이 불필요한 쪽지예산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당초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67개 혁신학교 운영비로 40억 2천만 원을 편성했다. 한 학교당 6000만 원씩 지원한다는 건데, 이는 전년도 1억 4000만 원에 비해 60%나 삭감한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예산삭감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입는다
급격한 예산삭감의 피해는 학생들이 고스란히 입는다. 그래서 서울시의회는 각 학교 당 1억 원 수준으로 협상을 시도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8000만 원까지 하향 조정해서 협상했으나, 역시 거부당했다. 당시 다른 실무자들은 '혁신학교 운영비에산 6000만 원에서 단 1원이라도 증액하면 모든 서울시의회 증액예산을 거부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실 시울시의회 본회의 통과 직전, 문 교육감이 동의해서 통과된 예결위 수정안에도 지역학교 시설환경개선비 287억 원이 편성되어 있었다. 이는 교육청 쪽에서 '쪽지예산'이라며 폄하한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교육청은 비슷한 예산을 놓고 예결위에서 새누리당이 제안할 때는 동의를, 본회의장에서 민주당이 제안할 때는 '쪽지예산'이라고 폄하하는 이중성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교육청의 속내는 그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이 예결위에서 내놓은 수정안에는 혁신학교 예산이 단 1원도 증액되지 않았었다. 이후 본회의에서 교육청측에서 민주당 수정안에 있는 혁신학교운영비 증액분 13억여 원(각 2000만 원)은 이름을 바꿔오면 넣어주겠다는 제안을 해 양보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명목으로 편성했고, 별 무리 없이 처리됐다. 하지만 혁신지구예산 12억 원과 비정규직 처우개선비 21억 원은 우리도 양보할 수 없었기에 증액 편성해 최종 통과시켰다.
문 교육감이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역학교 시설환경개선비 301억 원은 방수 및 창호교체, 오래된 컴퓨터 교체비 등 매우 필요한 것들이고 지역학교의 교장선생님과 학생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상대방 정책이라고 말살하려는 건, 정치적그런데 왜 문용린 교육감은 혁신학교와 비정규직처우개선비를 단 1원도 증액하지 않겠다는 걸까?
혁신학교는 상당히 인기가 많다. 경기도는 280여개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했다. 심지어 학교주변 아파트값이 오르고 위장전입자가 생길 정도라고 한다. 혁신학교를 경기도 전 지역에 퍼트린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그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혁신학교가 곽노현 전 교육감의 치적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불편했던 것일까. 그런데 월급 130여만 원씩 받는 비정규직들에게 1년에 10만 원이라도 더 주자는 건 왜 반대하는 것일까. 문 교육감의 의중이 뭔지 궁금할 따름이다.
특히 예결위에선 동의하고, 본회의 통과 후에 재의 사유로 삼은 '지역학교 시설환경 개선비 증액' 부분은 좀 이해가 안 간다. 사실, 2012년도 시설환경개선비는 1810억 원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교육청 편성안은 813억 원에 불과했다. 서울시의회가 증액한 310억 원을 더하더라도 1114억 원에 불과해 지역학교의 시설개선 요구를 다 충족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다.
상대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학생들과 어려운 비정규직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받아주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또한 거짓이 없고 정직해야 한다. 실제의 이유와 표면적 이유를 정직하게 말해야 되는 것이다.
나는 사실 문용린 교육감이 내세우는 정책 중에서 직업체험 및 진로지도에 대해서 매우 찬성하는 편이다. 이미 유럽 선진국들은 고등학교 졸업자 중 70%가 취업을 하기 때문이고, 우리나라 직업 중 70%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사회에서 과다한 교육낭비가 대한민국의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정책이라도 단지 상대측에서 내놓았기 때문에 무조건 말살하려는 것은 매우 정치적이며 이기적이다.
문용린 교육감이 의회 민주주의를 존중해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만약 그렇지 않고 보수의 표를 얻기 위해 민주주의와 정직을 포기한다면 제2의 오세훈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2014년 예산수정안을 받아들여 재의요구를 철회하고, 꼭 필요한 증액예산을 곧바로 집행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김문수 기자는 서울시의회 민주당 대변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