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도 제주에는 지금도 여전히 바람과 돌이 많습니다. 땅을 조그만 파 내려가면 돌투성이라 그 돌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무엇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돌을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바람을 막아주는 재료로 사용되었고, 경계를 짓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돌담을 자세히 보면 돌과 돌 사이 틈새를 메우지 않았습니다. 틈새로 바람이 술술 무시로 드나듭니다. 돌담을 다 쌓고 나면 잘 쌓아졌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돌담을 흔들어 보면 조금씩 흔들거리는데, 그게 잘 쌓인 담이라고 합니다.
그런 돌담은 여간한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틈새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담이 무너지질 정도의 태풍이라면 초대형급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일, 이 틈새가 없어 바람길이 막혔더라면 바람결이 마침내 그 담을 헐어버렸겠지요. 틈새의 미학입니다.
사람 중에는 빈틈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완벽해지고 싶은데 완벽할 수 없을뿐더러, 너무 빈틈이 많아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내가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살았습니다. 내가 완벽했더라면, 그냥 내 힘으로만 살았을 터인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도움을 받았고, 그 도움은 내가 나를 도운 것보다 더 유용했던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 혹은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도 그렇습니다.
너무 완벽해서 더는 도움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사람,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완벽한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듭니다. 돕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데 어딘가 엉성하고, 심지어는 나보다도 못나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빈틈이 많아 보이면 내 마음도 열립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빈틈을 알고 있기에 나의 빈틈에 대해서도 타박하지 않고 "사람이니까, 누구나 빈틈이 있는 법이지"하며 토닥거립니다. 이게 사람사는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해가 시작될 때, 그간의 삶들을 돌아보면서 빈틈과 허물 많은 내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살아보자는 헛된 욕심도 품었지만, 사흘도 이 마음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작심삼일도 유지하지 못한 까닭은 내가 불가능한 계획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습니다.
'새해에는 내 마음에 빈틈을 내자. 인정하자. 남의 빈틈도 받아들이자. 그게 바람결이 드나드는 길이고, 서로 살리는 길이다. 숨통을 여는 길은 빈틈, 틈새가 있는 삶이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돌아보니 대체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이들의 면면을 보니 빈틈이 아니라 허물어졌음에도 스스로 완벽하다고 착각하고 사는 모습이 보입니다. 일일이 열거하면 숨통이 막혀 질식할 것 같습니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니 말을 쉽게 합니다.
그냥 빈틈 사이로 바람결처럼 바람길을 따라 지나갈 것들도 빈틈없이 바람길을 막아놓고는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니 바람결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지요. 어제도 '어리석은 사람이 책임 운운한다'고 배수진을 치다가 거센 바람결에 부닥치자 이내 고개를 숙인 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빈틈의 미학'을 잃어버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화자찬하던 정권도 있었지만, 이렇게 자신들은 할 일을 완벽하게 다했다고, 무결점이라고 우겨대는 경우는 또 무엇일까 싶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해서 자신들이 벼랑 끝으로 몰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우습지만, 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을 탓하다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요.
빈틈이 있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경쟁 세상입니다. 상대방의 빈틈을 공격해서 경쟁자를 물리치라고 가르치는 것이 처세술입니다. 그러니 빈틈을 보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빈틈은 있는 데 없는 척하고 살아가려니 피곤합니다. 그냥 사람은 누구나 빈틈이 있으며, 그것은 허물이 아니라고 가르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제주의 돌담이 가진 미학은 빈틈에만 있지 않습니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기도 하고, 높지 않고 나지막합니다. 바깥과 철저하게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호흡하고 있습니다. 현대식 건물은 반듯하고, 높습니다.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없습니다. 성냥갑 같은 사각의 도형에 갇혀 살다 보니 둥글둥글 원만하게 살아가는 법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빈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그 빈틈 때문에 아프다며, 그 빈틈 허한 곳을 어루만져 달라고 하는 사람, 빈틈을 채워줄 수는 없지만, 잠시라도 빈틈으로 삶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조절해 줄 수 있는 사람, 혹은 나의 빈틈을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빈틈이 있다며 용기를 주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나면 숨통이 터집니다. 살맛이 납니다.
그러나 꽉 막힌 사람을 만나면, 나의 빈틈은 허물이라고 콕콕 찌르는 사람을 만나면 숨통이 막힙니다. 살맛이 달아납니다. 그래서 나는, 제주의 돌담처럼 빈틈이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