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새벽 5시. 자이살메르 거리엔 밤새 쌓인 어둠이 아직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서울에서 500원을 주고 산 싸구려 손전등으로는 내 발등 하나 제대로 비출 수 없다. 낮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개들. 밤의 선선함이 기운을 돋우는지, 여기저기서 사납게 짖어댄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탓에, 개 짖는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오는 건지 알 수 없다. 바라나시에서 소에게 엉덩이를 치이고, 암베르 성에서 원숭이에게 공격을 당한 나이니 야밤에 개한테 물리지 말란 법도 없다. 나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더스틴의 팔을 붙잡고 어둑한 길을 걸어 내렸다.
해가 차오르지 않은 사막의 도시에는 냉기가 겉돌았다. 여행사 사무실 앞에는 약속한 대로 지프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여자 두 명이 지프에 올랐다. 오늘 우리와 함께 낙타 사파리를 같이 할, 네덜란드에서 온 이사와 에비다.
나와 더스틴, 이사와 에비를 태운 지프는 우둘투둘한 길을 따라 도시를 내차고 사막으로 향했다. 지프가 사막에 가까워질수록, 붉은 해도 열심히 우리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번져오는 환한 해가 어둠을 지워버렸을 무렵, 차가 멈췄다.
"여기에서 마을 구경을 해도 좋고, 더 가서 양 떼 몰이 구경을 해도 좋아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행사에서 대단한 것인 양 떠들어대던 투어 옵션이 고작 이런 거였나. 우리는 이왕 왔으니 마을을 돌아보겠다고 했다. 흙으로 쌓아올린 장난감 같은 네모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짜이를 끓여 아침을 준비하는 부부가 우리를 맞았다. 주황색 터번을 쓴 흰 수염 아저씨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예쁜 아주머니.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오늘과 내일도, 매일 아침 짜이를 끓이며 작은 사막 마을의 아침을 지켜왔을 터다.
마을에서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사이, 낙타 몰이꾼 세 명이 우아한 표정의 낙타 다섯 마리를 데리고 마을로 들어섰다.
"저는 이만 갑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길." 지프 운전사는 차를 끌고 도시로 돌아가 버렸다. 이제 이 사막을 건널 방법은 두 가지다. 내 두 다리로 걷거나, 저 키 큰 낙타 위에 오르거나.
어설픈 낙타 사파리 무리의 사막 행진낙타 위에 올라 사막을 건너는 것. 어둠이 내리깐 사막 한가운데 누워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잠이 드는 것. 인도를 여행한 여행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 중 하나로 꼽는 것이다. 헌데. 오늘과 내일 내 몸을 맡길 거대한 낙타를 눈앞에 세워놓고 보니, 멋진 경험이고 뭐고 앞이 막막하기만 하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더스틴과 나의 테마는 '저렴함'이었다. 숙소든 식당이든 이동 수단이든, 가난한 주머니를 가진 우리에게 무언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가격 수준이었다. 하지만 낙타 사파리는 달랐다. 사고가 날 위험이 있었다. 가격보다는, 낙타 사파리를 진행하는 여행사의 평판이 중요했다. 우리는 여행 사이트의 리뷰를 샅샅이 찾아본 후, 평판이 가장 좋지만 가격은 가장 비싼 여행사를 선택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행사 사장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난 학교라고는 문턱도 밟아보지 않은 사람이지만, 혼자 힘으로 이렇게 여행사도 차리고 영어도 이만큼 배웠지. 사고? 이 사무실을 운영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아무리 작은 사고라도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자이살메르에 싸구려 여행사들이 많지만 우리는 달라.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을 사막이랍시고 데려가서 낙타 몇 바퀴 태워주는 그런 투어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우리는 아주 먼 곳으로 가지. 'Off the beaten track(다른 여행자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 그게 우리 여행사의 자랑이야. 사막 한가운데 같이 떠난 일행과 낙타, 낙타 몰이꾼 말고는 아무도 없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거라고. 사막의 고요한 정취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어."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도시에서 차로 두어 시간은 떨어진 곳이었다. 불모지의 풍경 한쪽에는 양 떼들이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다 마른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세 명의 낙타 몰이꾼들은 우리 네 명을 한 번씩 살펴보았다.
평범한 체격의 더스틴. 큰 가슴을 탱크탑으로 여지없이 드러낸 이사와 에비. 그리고 그들 체격의 반밖에 안 되는 작은 나. 무슨 이유에선지, 낙타몰이꾼들은 나에게 가장 거대하고 키가 큰 낙타를 점지해 주었다. 낙타의 이름 하여 조니워커.
조니워커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웃기지도 않는 나를 태우기 위해 바닥에 주저앉아야 했다. 조니워커의 등 위에는 우리 여행자 넷을 먹이고 재우는 데 필요한 온갖 짐들이 얹혀져 있었다. 그 짐들과 자신의 혹을 받히고 있는 조니워커의 네 다리는 얇고도 얇았다. 조니워커는 부러질 듯 말 듯한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겨우 주저앉았다.
올라서도 될까. 조금 미안하다만, 낙타에 오르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니 탈 수밖에. 나는 몰이꾼의 도움을 받아 조니워커의 등에 기어올랐다. 낙타 몰이꾼이 기이한 소리를 냈다. 조니워커는 다시, 가느다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45kg을 더한 등 위의 무게를 받히고 일어섰다. 순간, 나의 시야가 한 키만큼 높아졌다. 아찔했다. 붙잡을 수 있는 건 안장에 달린 작은 손잡이뿐이다. 손에 땀이 났다. 손잡이를 잡고 있는 게 조금 힘들었다.
더스틴과 나머지 일행도 낙타에 올랐다. 햇빛을 가릴 모자를 쓴 더스틴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아무래도 모자 하나에 50루피(한화 약 1000원)는 너무 쌌나. 내 모습도 예쁠 건 없겠지만, 이글대며 정수리를 쪼아대는 태양을 막기 위해 싸구려 차양 모자와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낙타 몰이꾼 한 명이 조니워커의 입에 이어진 끈을 잡고 내 앞으로 걸었다. 이렇게 어설픈 사막의 무법자 무리가 행진을 시작했다. 내 두 발이 아닌, 낙타의 네 발걸음으로 걷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졌다. 높은 시야도 적응되었다. 넓게 벌려 앉은 허벅지가 조금 아플 뿐이다. 이제 좀 신이 난다. 이거구나. 낙타 위에 올라 사막을 거니는 그 낭만. 나는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아 이런 호강을 누리나.
한참을 걷던 낙타가 멈춰 섰다. 점심시간이다. 한쪽에 불을 지핀 낙타 몰이꾼들이 뚝딱뚝딱 맛있는 탈리(인도식 백반)를 만들어 냈다. 컵과 그릇에 모래를 붓더니, 거친 모래를 손으로 문질러 그릇을 비볐다. 그게 설거지였는지, 모래가 채 떨어지지 않은 컵에 짜이를 담아 대접했다. 입안에 모래가 조금 돌긴 하지만, 밥맛은 기막히게 맛있다.
그렇게 사막을 거닐고 쉬기를 반복하며, 세 시간 정도를 이동했다. 사실 사막이라기보단 마른 잡초와 돌무더기가 흩뿌려진 불모지에 가까웠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낙타에 올랐다. 조니워커의 뒤에는 이사가 탄 낙타와 아무도 오르지 않은 낙타가 밧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조니워커에 연결된 끈을 잡고 내 앞을 걷던 낙타 몰이꾼 엠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엠은 조니워커를 끌고 가던 밧줄을 나에게 건넸다.
"레프트, 레프트. 라잇, 라잇 (왼쪽, 왼쪽. 오른쪽, 오른쪽)" …. 응? 이해하지 못해 얼굴을 잔뜩 찌푸린 나에게, 엠은 줄을 왼쪽 오른쪽으로 당기는 시늉을 반복해 보여주었다. 이 줄을 잡고 조니워커를 운전하라고? 조니워커를 왼쪽으로 보내고 싶으면 줄을 오른쪽으로 당기고, 오른쪽으로 보내고 싶으면 왼쪽으로 당기라고? 왜? 내가 왜 운전해야 하지? 난 당신이 끄는 밧줄에 안전하게 이끌려 가고 싶을 뿐인데?
때는 늦었다. 엠은 저만치 가버렸다. 뒤에는 여전히 이사가 탄 낙타가 연결되어 있었다. 나와 이사의 운명이 내 손에 달려 있었다. 왜 이런 운명이 나에게. 왜 이런 벌을 나에게. 난 그렇게, 긴장에 차가워진 손으로 밧줄을 붙잡고, 착한 조니워커가 얌전히 걸어주기만을 바라며 허허벌판 위를 걸었다.
다행히도, 조니워커는 나와 달리 별 동요가 없었다. 의젓한 놈이군. 낙타 대장임이 틀림없어. 시작부터 낙타 두 마리를 뒤에 달고 걸어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엠도 조니를 믿고 맡길 수 있으니까 조종 끈을 나한테 준 걸 거야. 조니워커의 규칙적인 네 발걸음에, 나도 조금씩 안정이 되었다.
다시 쉬는 시간. 무사히 땅으로 내려왔다. 기쁘다. 다리를 풀고, 익숙한 조니워커의 등 위로 올랐다. 엠이 조종 끈을 다시 나에게 건넸다. 이번엔 뒤로 연결되어 있던 이사의 낙타 줄도 떼어냈다. 앞서 가고 있던 낙타도 저만치 가고 없다. 나 혼자다. 아니, 내 아래 있는 조니워커와 나 단둘뿐이다. 조니워커가 아무리 믿음직하다지만, 이건 정말 불안하다. 나는 이건 아닌 거 같다는 표정으로 엠을 바라봤다. 엠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지금까지 잘 왔잖아. 별일 있겠어.
사막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낙타와의 사투저 멀리 보이던 모래언덕에 가까워졌다. 조니워커는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조니워커는 자꾸만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에 무성히 자라난 수풀을 뜯어 먹었다. 수풀을 뜯을 때마다 긴 목을 땅 쪽으로 숙이는 바람에 내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안 그래도 불안했던 나는 조니워커가 몸을 숙일 때마다 가느다란 비명을 내질렀다. 뒤에서 따라오던 엠은 조니워커가 그렇게 몸을 숙일 때마다 낙타 몰이 소리를 내며 채찍을 휘둘렀다.
금방 닿을 것 같았던 모래 언덕은 아직 저만치에 있었다. 조니는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닿지 않는 모래 언덕 때문에 초조한 모양이었다. 엠이 뒤에서 계속 재촉했지만, 조니는 더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풀을 뜯어 먹었다. 잔뜩 겁이 난 나는, 조니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몸이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조니와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내 표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뒤로 돌려 멈춰 달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뒤에서는 계속 조니를 재촉했다.
인간인 나도 배가 고프면 성질이 포악해지는데, 짐승인 조니워커는 오죽하랴. 게다가 먹겠다는데 뒤에서 자꾸 방해를 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걷다, 수풀을 뜯다, 뒤에서 재촉을 받아 다시 걷기를 반복하던 조니는, 자신이 이렇게 허기진 배 하나 채우지 못하고 계속 재촉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은 듯했다. 그 이유는 나. 자기 등에 껌딱지 같이 붙어 있는 나. 수풀을 뜯을 때마다 신음소리를 내서 신경을 건드리는 바로 나. 순간, 조니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포효를 그으며 전속력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으악!!!"이것은 실제상황인가. 포효하는 조니 위에서, 아니 화가 나 날뛰는 야생 짐승 등 위에 매달려, 나는 낙타와 목청 시합이라도 벌이는 양 비명을 내질렀다. 이럴 순 없다. 이것이 실제 상황일 순 없다. 4년간 1건 있었다던 낙마 사고가 나에게 일어날 리 없다. 소에게 받혀도 좋고 원숭이에게 다리를 잡혀도 좋지만 이건 아니다. 절대 떨어지면 안 된다. 떨어지면 죽는다. 조니는 내 키의 두 배다. 체감 시속 70km다. 떨어지면 끝장이다.
원흉의 근원인 나를 떼어내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내달리는 조니의 등 위에서 바라본 사막은, 아라비안나이트의 뭣도, 여행의 낭만도 아니었다. 공포 그 자체였다. 지금 여기서 떨어진다면 하잘 것 없는 작은 내 몸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나는 조니와 씨름을 하며, 땀으로 범벅된 손으로 안장을 부여잡았다. 내가 쉽게 떨어지지 않자 조니는 몸을 더욱 비틀어댔다. 미끄러운 손이 안장을 더는 붙잡지 못했다. 떨어진다. 붕. 조니의 화난 등과 얼굴이 내 시야 아래로 들어왔다. 조니보다 한 키는 더 높이 날았다. 이제 어쩌나 생각하는 사이. 털썩. 나는 사막의 모래 위에, 보기 좋게 내동댕이쳐졌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정신을 잃은 것 같지도 않다. 눈을 꼭 감고 느끼는 바로 판단해 보건대, 무릎을 굽혀 엎드린 착지 자세로 내려앉은 것 같다. 운동신경 없는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몸을 털고 일어나기가 두려웠다. 일어난다면, 어디를, 어떻게, 얼마큼 다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알고 싶지 않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거니는 호사를 누린다고 좋아했는데. 이렇게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다니. 무슨 호사를 누려보겠다고 이런 개고생인지. 서럽다.
"수지!!! 수지!!!"더스틴이다. 그래 더스틴이 있었지. 내 뒤를 쫓아 오고 있었으니, 이 모든 끔찍한 광경을 다 목격했을 텐데. 얼굴에 걱정을 가득 담은 엠도 놀라 달려왔다. 엠은 소금에 절인 배추짝처럼 내동댕이쳐진 내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상태를 확인했다. 더스틴이 내 옷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사막 풀을 털어냈다.
주위는 모래언덕이었다. 종일 자갈 섞인 길을 걷다 모래 언덕에 막 도착했을 때 사고가 난 게 천만다행이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입술이 조금 까이고,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에 흠집가 난 것 말고는 큰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 헛갈린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낙타 위에서 떨어졌지만 조금도 다치지 않은 나는, 운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더스틴은 울상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더스틴을 타일렀지만, 아무래도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 듯했다. 더스틴도 더스틴이지만, 더스틴 옆에 서 있던 엠은 더 울상이었다.
"마담? 오케이? 마담, 아 엠 쏘리." 엠은 우는 얼굴로 나에게 계속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조니워커에게 다가갔다. 엠은 들고 있던 채찍으로 조니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노! 노! 그만해요! 조니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엠은 나를 떨어낸 조니를 혼내면 내 화가 조금 누그러들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조니가 무슨 잘못인가. 하루 종일 짐을 이고 사막을 가로지른 낙타의 밥때도 지켜주지 못하고, 무리해서 걷게 한 낙타 몰이꾼들의 잘못이라면 잘못이지.
더스틴과 나는 남은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조니워커가 전속력으로 달리며 나를 떨어낼 때, 동요된 더스틴의 낙타 역시 포효하며 몸을 마구 뒤틀었다고 한다. 10년 무사고 좋아하네. 더스틴과 나는 모래밭을 터덜터덜 걸으며, 망쳐버린 낙타 사파리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에 대해 논의했다. 무사고 어쩌고 자랑을 늘어놓던 사장을 쫓아가서, 100프로 환불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사파리꾼 교육에 대해서도 단단히 주지시킬 테다.
더스틴과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우울한 얼굴로 이사와 에비 곁에 앉아 그들의 여행까지 망쳐버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모래 언덕으로 갔다. 더스틴은 다시 한 번 내 몸을 점검했다.
"크게 다쳤으면 어쩌나 얼마나 걱정했다고…." 더스틴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어쭈. 내 걱정에 울상을 짓는 남편을 보니 뭔가 의젓한 용기가 생긴다. 걱정 마라. 네 아내는 달리는 낙타에서 떨어져도 멀쩡한 씩씩한 여인네다.
엠이 우리 쪽으로 건너왔다. 엠 역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마담, 괜찮아요?"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이제 괜찮아요. 크게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아요." "저기…. 마담. 낙타에서 떨어진 거…. 사무실 사장님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말하면 낙타 몰이꾼 일도 끝이에요."순간, 나는 더스틴의 머리에서 연기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낙타 몰이꾼 일이 끝이라고요? 제 아내가 끝장날 수도 있었다고요!"엠은 당황했다. 나는 더스틴을 진정시켰다. 엠은 한숨을 돌리더니 다시 설명했다.
"미안해요. 운전 끈을 마담에게 줬던 건, 스스로 낙타를 몰아보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그래요. 우리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이 사무실에 '컴플레인(불평)'을 해요. 그래서 가끔 조종 끈을 줘요.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미안해요 마담…."
엠이 다시 사람들 무리로 돌아갔다. 더스틴과 나는 모래 언덕에 주저앉아 토의를 시작했다.
"사무실에 말하면, 엠 정말 잘릴지도 몰라."엠의 겁먹은 눈빛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저 표정은 나의 안위를 걱정한다고 해서 나올 수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궁지에 몰린 저 표정은, 내 걱정이 아니라 자신의 밥줄이 끊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데에서 나오는 표정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화가 나는 일이야. 이건 환불의 문제가 아니라 고소까지 갈 수 있는 문제라고. 사람이 거의 죽을 뻔했단 말이야. 근데…. 여기가 인도라는 게 문제지." 공식적으로 사과도 받고 환불도 받아야 하는 문제다. 사무실에 알려야, 나중에 여행사를 이용할 관광객들의 사고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가 난 건 엠의 잘못이 아니다. 관광객이 컴플레인을 했다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강행하도록 지시한 사무실의 잘못이다. 그런 규정 때문에 사고가 났다면, 책임질 사람은 엠이 아니라 사장이다.
하지만 여기는 인도다. 사장이 책임을 물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떨어냈다고 채찍질을 당한 조니처럼, 엠이 모든 잘못을 뒤집어쓸 것이다. 오늘과 내일 힘들게 일한 돈은 받지 못할 것이다. 엠의 말처럼 일자리도 잃을 것이다. 불 보듯 훤한 일이다.
마음을 가라앉힌 우리는 다시 무리로 돌아갔다.
"엠, 사장한테는 얘기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관광객에게 조종 끈을 주지는 마요. 너무 위험해요." "네 약속해요. 앞으로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예요. 마담, 괜찮은 거죠?"사무실의 잘못된 지시 때문에 엄한 낙타 몰이꾼이 일자리를 잃고, 낙타가 매를 맞는 일이 없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는, 스스로 낙타를 운전하고 싶다는 칭얼대는 여행자만 없으면 된다.
사막의 밤조니워커도 화가 풀렸는지, 언덕 저편에서 다른 낙타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풀을 뜯고 있었다. 새벽부터 우리를 따라잡던 붉은 해가, 반대편 세상의 누군가를 향해 저 멀리 모래 언덕 너머로 달아나며 푸른 빛을 뿜어냈다. 낙타 몰이꾼들이 챙겨온 나뭇가지들을 모아 모닥불을 지폈다. 저녁을 짓고 밥을 먹었다. 낙타 몰이꾼들이 사막의 노래를 불렀다. 저 멀리서도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자이살메르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이지만, 너무 멀리 온 탓에 다른 도시에 가까이 온 모양이다. 사막의 정취 위에, 도시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불빛이 더해졌다. 어디선가 차가운 맥주를 지고 온 장사꾼이 나타났다. 오프 더 비튼 트랙(Off the beaten track)이라더니 다 사기야. 아무렴 어떠냐. 나는 다치지 않았고, 엠은 걱정을 덜었고, 조니워커도 배불리 먹고 몸을 쉬었으니 됐지. 우리는 쏟아지는 별 아래 누워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았다. 쌀쌀했던 어둠이 해로 금세 데워졌다. 지프를 타고 도시로 돌아가려면, 다시 낙타에 올라 반나절을 걸어야 한다. 조금 망설여졌지만, 조니워커의 순하고 우아한 눈을 보니 괜찮을 것 같았다. 엠도 내 앞을 떠나지 않고 걸을 거라고 약속했다. 더스틴도 낙타에 올랐다. 더스틴의 낙타가 동요했다. 낙타에서 내린 더스틴은, 다시는 낙타 위에 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더스틴은 반나절 동안 두 다리로 사막을 걸었다.
엠과 낙타몰이꾼들은 사막을 걷는 내내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매일 함께 사막을 걸을 텐데.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을까. 엠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원래는 하얬을, 때 지고 낡은 양복. 이틀간 사막을 걷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구두. 엠은 사막을 걷고, 낙타를 돌보고, 가족과도 같은 낙타 몰이꾼들과 같이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낙타 몰이 일이 좋다고 했다. 5년을 함께한 조니워커도 좋다고 했다.
엠은 행복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