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우리 고모 오셨어요.""오, 그래""우리 고모가 선물도 사 주셨어요."콩이에게 기쁜 일이 생겼다. 큰 고모가 내려오셨다. 콩이는 아빠 쪽 친척은 몇 분 안계시고 만날 기회도 별로 없다. 콩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만 홀로 사신다. 큰 고모는 일산에 사시고, 작은 고모는 선교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신다. '할머니가 계시면 콩이를 무척 사랑 하실 텐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늘 갖고 있다.
그런데 모처럼 고모가 오셨다. 너무나 정이 그리웠나 보다. 선물도 세 개나 사 주고 같이온 오빠가 놀아주었다고 입을 쑥 내밀며 자랑한다. 사실, 현대사회는 너무 개인주의화 되어 친척간의 왕래도 뜸하고 자신밖에 모른다. 인간미가 없고 너무 삭막하다. 스스로 자초한 것이 아닌가 싶다. 손주 본다고 하면 동정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라고 충고 한다.
생후 9개월. 콩콩이가 앉기 시작했다. 머리가 무거워 들지 못하더니 어렵사리 목을 가눈다. 조금씩 기기를 하다가 앉아서 발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이동하기도 한다. 어설프지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도리도리'를 한다. 기분이 최고다. 그런데 무서운 언니가 나타났다.
유치원에 다녀온 콩이가 겨우 중심을 잡고 앉아 있는 콩콩이 얼굴을 손으로 꼬집더니 밀어버린다. 뒤로 벌렁 자빠져 버린 콩콩이. 이럴 경우 난감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콩이의 감정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이유는 할아버지가 콩콩이만 사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동생 콩콩이와 놀아주기도 한다. 장난감 놀이다. 레일을 깔고 한 칸, 두 칸 연결한 기차가 칙칙폭폭 달리기 시작한다. 콩콩이의 시선도 기차를 따라 움직이고. 유치원에 갈 때도 콩콩이에 대한 인사는 잊지 않는다. 동생 사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다가도 누군가 콩콩이를 '까꿍' 하고 어르거나 할 경우 안색이 변한다. 질투다. 제 엄마는 콩이를 질투의 여왕으로 부른다. 살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그 질투는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선의의 경쟁으로 이어지면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잘못되면 편 가르기가 되거나 친구를 따돌리기도 한다.
콩이가 유치원 가방에서 무엇인가 보여준다. 친구들의 편지다. 서툰 글씨로 쓴 '친구야 사랑해… 친하게 지내자' 라는 등 여러 가지 편지다. 색종이로 고이 접어 준 우정의 편지다. 한글로 편지를 쓰고 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대 명절 설날이 다가온다. 어렸을 때의 설빔은, 첫 번째가 새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명절 때는 새 옷을 사 주곤 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성인이 되어 명절은 무엇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