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희망버스가 출발하는 전날 밤,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1박 2일 일정이면 내 주말을 모두 쓰는 건데…. 그냥 가지 말까….'나는 한국에서 전기를 많이 소비하고 있는 있는 수도권에 살고 있기에 밀양 송전탑 문제와 나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내 주말이 아깝다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었다. 그렇게 망설이면서도 그래도 밀양 송전탑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여러 기사를 읽던 중 지난 24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한 기사를 읽게 됐다. 그 기사는 바로 <
내 생애 가장 '얄미운' 경찰, 여기서 만나네>였다.
이 기사를 읽고 나니 망설임따위는 사라졌다. 나도 내일 당장 가자. 가서 봐야겠다. 정부와 경찰이 어떻게 이 나라에서 평생 살아오신 분들을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건지, 기사와 영상을 보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껏해야 잠시 함께 있어주는 것밖에 못 해드리겠지만, 무엇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 집을 나서기로 했다.
희망버스 막아선 송전탑 건설 찬성 주민들
지난 25일 서울 대한문에서 출발하는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시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열댓 명 정도 되는 인파가 몰려와 '악명 높은 AI가 희망버스 참가자들로 인해 밀양시에 퍼질 수 있으니 세균버스는 밀양에 오지 말라'는 반응을 보여줬다. 이번 희망버스 기획단들은 이미 이와 같은 문제를 고려해 밀양시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모든 참가자들로 하여금 검역소를 통과해 소독을 마친 상태였다. 듣자하니 이번에는 7000명이나 되는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는데 경찰들은 소독이나 하고 왔는지 모르겠다. AI는 공권력을 피해가려나?
뜨거운 반응과 함께 우리를 맞은 인파들은 경찰에 의해 한참 뒤에야 물러났고, 우리는 집결지인 밀양시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의 뜻을 가진 사람들이 밀양시청에 모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많이 없어 보였는데 이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밀양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4000여 명 정도 됐다고 한다. 1차 희망버스 때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하나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에 하나라는 점에 비하면 너무 적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아 아쉬웠다.
집회가 시작하려는 찰나, 불안하게도 먹구름이 몰려와 빗방울이 살짝 내려왔지만 곧 맑은 하늘과 함께 햇살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다독였다.
서울 집회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
"우리가 밀양이다!"밀양시청 앞에 군집하고 있던 사람들은 무대 일정이 끝나자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시작부터 바로 과격한 상황으로 이어질 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가두행진은 애초에 예정돼 있던 일정이었다. 사람들은 일정하게 줄을 맞춰 걸었고, 경찰들은 교통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취했다.
세상에나, 서울 집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경찰의 조치에 무척이나 놀랐다. 물대포가 아니라 폴리스 라인이라니. 집회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풍경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광경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집회에서도 보지 못했던 광경을 이곳 밀양에 와서 보다니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집회의 마지막 집결 장소는 밀양역. 그곳에서도 경찰들이 교통관리를 하시느라 고생이 많았다. 40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행진하도록 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터. 경찰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밀양역에서 열린 집회는 집회가 아니라 '축제'였다. 참가자들이 함께 무대 앞에서 '불금 클럽'마냥 춤추며 뛰노는 축제라고나 할까. 집회 도입부에 다큐 <밀양전>을 찍은 박기배 감독이 틀어준 짤막한 밀양 영상을 봤을 때는 밀양 어르신들이 겪은 고충들을 보면서 눈물 바다가 됐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활동가들의 토크쇼, 밀양 어르신들의 합창과 여러 공연들이 무대 위에 펼쳐지면서 집회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이렇게 즐거운 집회가 또 있을까. 찬바람 맞으며 가만히 앉아서 구호만 외치다가 끝나던 기존의 집회에 비해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밀양 어르신들이 잠시나마 이렇게 즐거워하셔서 다행이다.
모든 집회 일정을 마친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밀양시 송전탑이 있는 마을별로 흩어졌다. 내가 속한 그룹은 동화전 마을로 향했다. 가파른 산자락에 위치한 동화전 마을. 산 꼭대기에는 송전탑이 비추는 빨간 불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시골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 다행히 참가자들이 하루 묵을 수 있도록 마을 주민들께서 집을 내주셨고, 그 사이 길을 막기 위해 수백 명의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산을 올랐다. 경찰들, 정말 고생이 많다. 우리는 이제부터 먹고 마시다가 잘건데.
산 속에 도배된 경찰
다음 날인 26일 오전 5시.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밀양 송전탑 건설 저지를 위해 산에 올랐다. 가파르고 굽이굽이 휜 길을 백여 미터나 올라갔을까. 반딧불이마냥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야광색 경찰복이 등산길 길목마다 도배된 듯했다. 우리보다 먼저 올라간 경찰들은 방패를 들고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이제 거침없이 욕할 시간입니다. 힘쓰러 갑시다." 희망버스 참가자들 중에서는 경찰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도 '폭력 경찰'이 문제라 생각해 밀양에 왔지만, 모든 경찰이 그런 건 아닌데…. 희망버스 참가자와 경찰간의 적대적인 양상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산길은 하나인데 경찰들이 길을 막고 있으니 충돌이 불가피해 보였다. 경찰들과 마주볼 정도로 산을 오른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경찰들에게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했다.
"등산 좀 합시다! 국민을 지켜야지 왜 경찰들이 송전탑을 지키고 있어요? 비켜주세요!" 경찰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참가자들은 "경찰들은 길을 막고 있을 어떠한 합법적인 권한이 없다"며 무력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상황은 빠르게 험악해졌다. 양쪽에서 비속어들이 오갔고, 경찰들은 방패로 대열을 지키려 했지만 참가자들은 경찰들을 하나하나 잡아당겨 빼냈다. 길 한 쪽이 가파른 경사면이라 격렬한 몸싸움 때문에 몇 사람들이 굴러떨어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밀치고 당기고 심한 몸싸움을 벌이는 희망버스 참가들과 경찰. 부모자식뻘 되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싸우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우리 모두 같은 나라 국민이고, 잘못은 한국전력과 정부가 하고 있는데 왜 서로 싸우고 다치는 건 경찰과 주민들인지 무척 화가 난다.
"어차피 내려가실 거잖아요. 그냥 내려가세요.""어차피 경찰 분들도 내려오실 거잖아요. 그냥 비켜주세요."
끝이 없어 보이는 싸움이었지만,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조금씩 조금씩 산을 향해 올랐다.
경찰들은 일반 시민으로 보이는 이들을 막아섰지만, 사진기자는 막지 않았다. 아니, 막기는 하지만 일반인들보다는 덜한 편이었다. 단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이유로 막지 않는다는 점이 웃기긴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경찰들의 제지를 받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홀로 앞서가다 보니 결국 경찰 네 명이 달라붙어 길을 막아섰다.
오랜 기자생활로 현장경험이 풍부한 기자분을 따라다니면 문제없이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분 뒤를 따라가자 능선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들은 능선 위에서도 방패를 들고 지키고 있었다. 대부분의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산중턱에서 가로막혔고 일부가 능선까지 올라왔지만 그 숫자는 너무 적었다. 수적으로 훨씬 우세해지자 경찰들이 여러 명씩 달라붙어 길을 막아섰다.
경찰들로도 모자라 공사 현장에는 철책까지 이중으로 쳐져 있었다. 기자들도 더는 못 들어간다며 사복경찰들이 가로막았으나 기자들은 틈을 봐 철책 가까이 다가갔다.
"여기 미끄러워서 안 됩니다. 당장 나오세요."한 나이 많은 사복경찰이 나를 끌어당겼다. 흙길 위에 서 있는 나와 기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네, 참 미끄럽네요. 이게 뭐가 위험하다고 그러세요.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게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고철덩어리를 보겠다는데 왜 이렇게들 길을 막으시는 건지 모르겠다. 사복경찰은 잡고 있던 내 팔을 놓았고 나는 경찰들이 그토록 감추려고 애썼던 97번 송전탑을 마주할 수 있었다.
"별 것도 없고만…."
어느 길로 오신 걸까. 어느 틈에 올라오신 밀양 할배들도 경찰에 둘러싸이셨다.
"내 어릴 때부터 오르던 우리 뒷산을 왜 못 오르게 하냐!"힘겹게 나무를 부둥켜 안고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들은 침묵으로 답했다. 밀양 할매들도 올라오셨다. 힘들게 올라왔건만 경찰들에 둘러싸이자 할머니는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다.
"니 경찰 소속 아이가? 카메라 치우라, 찍지마라!"나뭇가지로 내 카메라 렌즈를 쿡쿡 찌르며 소리를 지르셨다.
"아이고, 할매 저분은 기자입니다."뒤에 있던 경찰이 할머님을 말리셨다.
"송전탑만 보고 갈게요"... 경찰은 몸으로 행동했다
"저, 저기 송전탑만 보고 갈게요. 네? 아니면 같이 가요. 손잡고 같이 갔다 오면 되잖아요." 능선까지 올라온 한 여성 참가자도 여경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는 여경들에게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었지만, 여경들도 다른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뭐가 문제된다고 그래요. 손에 손 잡고 나란히 갔다 오세요. 되게 융통성 없으시다. 나는 갔다 왔는데 왜 이분은 안 된다는 거예요?"옆에서 지켜보다 못 한 나도 거들었으나 끝까지 초지일관이다. 사람들은 이제 길도 막혔고 배도 고프다.
"우리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 이 한마디로 오늘의 공사 저지 산행은 끝났다. 하산이다. 내려오는 길에 뒤늦게야 산중턱에서 경찰들과 대치 중인 곳을 통과하려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었다. 상황이 험한데 다치시진 않았는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여태까지 언론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달리 어르신이 지나가려고 하자 경찰들은 양 쪽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지나가자마자 몸싸움은 다시 이어졌다.
"저러다 다치면 안 되는데…. 어떡하나."어르신들은 사람들이 걱정돼 더는 산을 오르지 못하셨다.
더 많은 이의 관심이 필요하다
마을을 떠난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가 있는 다리 아래에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행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기자회견을 가능한 짧게 끝냈다.
몇몇 참가자들이 옷에 '경찰'(Jjap Sae)과 '한전'을 붙이고 송전탑을 의미하는 '박'을 지키고, 밀양 어르신들이 오재미를 던져 박을 터트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이것으로 밀양 어르신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랐다.
희망버스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경찰과의 격한 충돌이 있었음에도 참가자들은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왔기 때문에 경찰들이 약하게 제지한 듯했다. 되레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떠나고 난 뒤 밀양 어르신들을 향한 진압을 더 '강하게' 할까 봐 걱정이었다. <밀양전>을 찍은 박배기 다큐멘터리 감독과 밀양 어르신들은 "이렇게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좋으니 평소에도 한 사람이라도 찾아와서 함께 있어주면 정말로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것은 결코 밀양시 소수 주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전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국내 문제에 관심을 두고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탰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