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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설 연휴가 시작된 어제(1월 30일), 헤이리의 아침은 짙은 안개에 잠겼습니다. 살짝 젖은 정원 땅으로 내려섰더니 가는 비가 손등에 닿았습니다.

눈으로도, 귀로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수줍게 내리는 가는 비, '색시비'였습니다. 

그 아무 소리 없이 내리는 그 색시비도 잣나무 잎 끝에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잣나무 잎은 색시비를 모아서 영롱한 '희망'를 빚었습니다.
잣나무 잎은 색시비를 모아서 영롱한 '희망'를 빚었습니다. ⓒ 이안수

짙은 안개는 익숙한 마을 풍경을 딴 세상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정원의 자작나무의 부릅뜬 눈으로도 짙은 안개 너머의 모습을 볼 수 없으리라.

 김성래 작가의 자작나무 드로잉
김성래 작가의 자작나무 드로잉 ⓒ 이안수

아침 안개는 하루 앞으로 다가 온 갑오년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어제(1월 30일),  안개 짙은 헤이리의 아침
어제(1월 30일), 안개 짙은 헤이리의 아침 ⓒ 이안수

#2 

춘추전국시대에는 越(월)나라의 도읍지였던 사오싱(紹興). 상하이의 남쪽, 항주(杭州)와 영파(寧波)사이에 있는 이 작은 도시는 중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낙후한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잠시라도 들려서 유작취(油炸臭)라는 발효두부를 안주삼아 중국의 황주(黃酒)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 도시의 명주, 사오싱주(紹興酒)를 한 잔씩 비우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인구 10여 만의 작은 도시지만 작은 다리가 많아 '스이시앙치아오더우(水鄕橋都, 수향교도)'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만큼 수로가 발달한 물의 도시로 저장성(浙江省)의 베니스라 할 만합니다.

또한 이곳은 오나라 부차(夫差)의 '와신(월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한 합려가 아들 부차에게 원수를 갚을 것을 유언했고, 부차는 가시장작위에서 잠을 자면서 아버지의 원한을 되새겨 마침내 원수를 갚았다)'과 월나라 구천의 '상담(부차에게 패한 구천은 그 모욕을 되갚기 위해 잠자리 옆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그것을 핥으면 치욕을 상기해서 20년 뒤 마침내 부차를 생포하여 자살케 했다)'이 합해진 臥薪嘗膽(와신상담)이라는 고사의 현장입니다. 

이 도시로 여행자의 발길을 잡아끄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루쉰(魯迅)의 고향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곳의 몰락한 관료의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센다이 의대로 유학했으나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보다 나라의 병을 고치는 것이 더 중하다고 여겨 귀국후 문학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유학을 중단하고 민중을 깨우기 위해 귀국하는 마음이 이랬을까?

"혹한을 무릅쓰고 2천여리를 거쳐 20여 년 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한 고향으로 나는 돌아왔다. 계절은 한겨울, 고향에 가까워 옴에 따라 날씨도 흐리고 차디찬 바람이 선창에 불어와 우우하고 소리를 냈다. 배 사이로 바라보면 회황색의 하늘 아래 여기저기에 외로운 듯이 마을들이 누워있고 아무런 활기도 없다. 끊임없이 내 마음에 비애가 일어난다."(루쉰의 <고향>)

그렇지만 그의 자전적 소설 '고향'에서는 '희망'을 말합니다.

"희망이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의 <고향>)  

#3 

저의 이웃인, 백농스튜디오 한태상 작가께서는 올 설에도 숫접은 선물을 보내오셨습니다.

말랑말랑한 현미 가래떡과 책 한권 그리고 한작가님께서 직접 쓰신 새해인사를 그 책갈피에 담았습니다. 

서예가인 한작가께서는 전통서법에 갇히지 않고 회화의 조형으로서의 서예에 천착하고 계십니다. 

'事事如意(사사여의)'

 한태상 작가님의 새해인사(新年好). '事事如意'  



                    다시 2014년 갑오년 새해를 희망으로 맞습니다.
한태상 작가님의 새해인사(新年好). '事事如意' 다시 2014년 갑오년 새해를 희망으로 맞습니다. ⓒ 이안수

한 작가께서 마음을 모아쓴 그 글귀를 서가에 걸면서, 루신의 귀국길에 품었을 그 '희망'을 염원해봅니다.

헤이리. 본래 이 땅은 임진강 물이 드나드는 뻘이었으며 양지바른 얕은 산자락아래, 소택지 주변에 논이 있었습니다.

십수 년 전에 그 땅위에 '문화예술'이라는 뜻을 파종했고 그 땅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서 지금 길이 되고 마을이 되었습니다.

 논이었던 노을동산 아래의 산자락이 '예술마을 헤이리'가 되었습니다.
논이었던 노을동산 아래의 산자락이 '예술마을 헤이리'가 되었습니다. ⓒ 이안수

뻘이 길이 되었듯, 오늘 2014년 원단(元旦)의 우리 희망이 '일마다 뜻대로 되어(事事如意)' 구체적 현실이 될 것을 염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motif.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새해#헤이리#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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