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를 이용해 평소 읽지 못했던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먼저 <외교 원리와 실제>를 읽었고, 만화 <유성룡 징비록>을 봤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문화유산의 소중함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느끼게 하는 유네스코가 펴낸 <세계유산, 인류를 위한 혜택>이다. 이 책은 인간의 다양성, 생물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의 융합과 공존을 느끼게 하는 보기 드문 책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문화와 자연의 융합과 공존이라고나 할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160개국 중 모범적 26개국의 문화유산을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가 영문으로 소개한 책이 한글로 번역돼 나왔다. 특히 책에 소개한 26개국 문화유산 중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평가 받고 있는 '안동 하회와 양동 마을'이 포함됐다.
지난 1972년 세계유산협약 채택 40주년을 맞아 세계유산지역의 대표적 사례를 지난 2012년 말 유네스코가 주제별로 모아 <World Heritage : Benefits Beyond Borders-세계유산, 인류를 위한 혜택>(유네스코, 2012년 12월)이란 제목으로 발간했다. 지난해 2013년 10월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안동시의 지원을 받아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 <세계유산, 인류를 위한 혜택>(유네스코한국위원회, 2013년 10월)을 펴냈다.
안동 하회마을이 소개된 탓인지 안동시가 재정 지원을 해 펴냈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이 책 축사에서 권영세 안동시장은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를 대표해 살아 있는 유산으로 평가 받고 있는 안동 하회마을이 지닌 세계 유산적 가치와 보존관리방안에 대한 사례를 잘 소개하고 있다"며 "그 가치를 국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번역해 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세계유산, 인류를 위한 혜택>은 세계유산지역의 사례연구를 주제별로 모아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지역의 지식체계와 현장에서 유산보전을 실천하는 지역사회는 종종 체계적인 접근방식을 사용하면서 역사적으로 자연과 문화를 동시에 다루어 왔다. 즉, 문화유산은 자연과 문화 사이의 가교역할을 한다.
접경 생물권 보호지역인 세네갈의 주지 국립 조류보호구역, 세계 최대 산호초 보호지역인 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대보초), 살아있는 세계유산 슬로비아의 슈코치안 동굴, 섬 생태계 보호의 핵심인 예멘의 스코트라 군도, 문화경관이 아름답게 보전된 노르웨이의 '배가연-배가제도 등은 자연과 문화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문화유산들이다. 이중 세네갈의 주지 국립 조류보호구역은 정부가 지역사회와 이들의 자연과 문화에 관한 통합적 지식을 유산보전의 우선순위와 관심사로 두는 새로운 체계의 이행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주의와 유산의 지속가능한 문화유산도 있다. 군소도서 개발도상국인 바베이도스의 브리지타운과 요새, 붉은 도시 모로코의 마라케시의 메디나,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보여준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루앙프라방, 세계유산과 빈곤 악화의 중심인 베트남의 호이안 고대도시, 역사적 도심지역으로 책임 있는 지역사회를 구현하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탈린 역사지구, 과거 스페인 식민지로 도시의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산타 크루스 데 몸폭스 역사지구 등은 도시와 역사 문화유산이 병존해 지속가능하게 발전하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에스토니아의 '탈린 역사 지구'는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독특하고 진정한 역사 도시의 가치를 존중받고 있다.
통합적 계획과 원주민참여로 이뤄지고 있는 문화유산도 있다. 케냐의 미지켄다 부족의 신성한 카야 숲, 캐나다의 제스퍼 국립공원, 추장의 유산으로 알려진 바누아투의 로이 머타 추장 영지, 살아 있는 문화경관으로 불린 필리핀의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 문화적 체계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말리의 반디아가라 절벽 등은 원주민 참여 문화유산이다.
여기에서 바누아투의 로이 머타 추장의 영지는 유적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원주민이 상속받은 유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지역사회의 발전 방향을 찾아내고 있다.
살아있는 유산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문화유산 보호 지역도 있다. 국가 우선순위와 세계유산 보전과 일치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시망갈리소 습지 공원, 원주민들이 사업을 기반으로 학습한 멕시코의 시안 카안, 굽이 흐르는 강가의 역사 마을인 대한민국의 하회와 양동, 중국인의 디아스포라 카이핑 댜오러우 건축물과 마을, 어업과 생태계 기반인 일본의 시레토코 등이다.
특히 한국의 전통마을 '하회와 양동' 편에서는 살아 있는 마을의 세계 유산적 가치를 지역 및 중앙정부와 주민의 협력 하에 그 무형적 가치까지도 통합적으로 전승하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로 표현하고 있다.
기념물을 넘어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발전을 영위하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이집트의 '멤피스와 네크로폴리스-기자에서 따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역', 독일과 네덜란드의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손꼽히는 바덴 해, 유산 중심의 지속가능한 재생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는 영국의 블래나번 산업경관, 빈곤을 완화하는 세계유산 브라질의 세레 다 카피바라 국립공원, 고고학의 공원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트 등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영국의 블래나번 산업경관 지역인데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도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의 말미에 세계유산협약 산하 세계유산위원회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는 세계유산센터 기쇼 라오 소장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르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은 눈여겨 볼 만하다. 지난 2000년에 채택된 유엔 새천년개발목표의 달성과정에서 이루어진 진척상황을 검토해 2015년 이후 개발의제의 우선순위에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통합해 연결하는 목표가 중요한 의제로 선택돼야 함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기쇼 라오 소장은 "기본적 차원에서 생물의 다양성과 문화의 다양성은 서로 밀접하게 의존한다는 인식이 점차 증대하고 있다"며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려는 모든 지역정책은 관련 지역사회의 문화를 고려하고 그에 입각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세계 각국의 문화나 환경 그리고 고고학자, 연구자, 관계자 등 39명의 전문가들이 집필자로 참여했다. 이중 국내 집필자가 한 사람도 없어 아쉽게 느껴졌다.
책을 발간한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지난 40년 동안 세계유산협약은 현대세대와 미래세대가 유산의 가치를 깨닫고 동시에 향유할 수 있도록 전 세계에 탁월한 장소를 보호하는 데 이바지해 왔다"며 "그러한 결과로 세계유산협약은 지구에 새로운 세계지도를 그리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어 책을 발간한 유네스코 민동석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이 책은 세계유산협약 4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협약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발간한 책자"라며 "26개 대표적 사례는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가지 욕구가 인간과 유산의 조화 속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1972년 제정된 세계유산협약은 신뢰성(Credibility), 보존(Conservation), 역량강화(Capacity), 소통(Communication), 지역사회(Community) 등 5C를 중점 목표로 전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 미래 세대에게 그 의미와 가치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책은 협약 당사국 190개 국가 중 모범을 보인 26개 국가의 대표적 문화유산 보존 사례를 선택해 기록했다, 특히 160개국에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981점의 세계유산 중 한국은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해 창덕궁, 종묘 등 10점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덧붙이는 글 | 책 구입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http://www.unesco.or.kr)로 문의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