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의 파업과 국민들의 민영화 반대로 철도발전소위가 구성되면서 수서발 KTX 노선 분할 논쟁은 제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발급한 수서발 KTX 자회사의 면허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므로 철도발전소위에서 쟁점이 될 내용은 민영화 방지 방안 관련 논의일 것이다.
애초 국토교통부(아래 국토부)가 수서발 KTX 노선 분할을 주장한 표면적인 이유는 '한국철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쟁과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유효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한국철도를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다.
그러므로 모처럼 노사정이 모인 철도발전소위에서는 국토부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고 한국철도의 바람직하고 올바른 발전 방향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한국철도의 발전 방향이 경쟁과 민영화가 아닌 공공성의 확대에 있음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한국철도의 공공적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려 한다. 부디 본 글이 한국철도의 미래지향적인 논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빈다.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로 경영 개선 및 요금 인하 가능
정부는 그동안 코레일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코레일의 경영 악화는 코레일의 책임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예로 드는 유럽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우리 정부의 공적 지원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다.
유럽과 한국의 여객철도운영기관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을 철도 영업 길이를 감안해서 비교해 보면, 국토부가 한국철도의 발전 모델로 선정한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5배 이상 많은 공공자금을 철도에 지원해 주고 있었다. 유럽의 철도강국인 프랑스 또한 우리나라보다 3배가 넘는 공공자금을 투자하고 있었다. 덴마크와 오스트리아 또한 3배 정도 많았으며 민영화된 영국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규모를 지원하고 있었다.
유럽국가들은 자국의 여객철도운영기관에게 ▲교통서비스 ▲기반시설 운영 ▲차량과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 ▲직원연금 부담 ▲채무변제 ▲구조조정 지원 등의 다양한 명목으로 공공자금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유럽의 여객철도 운영기관들은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독일 철도의 2011년 매출 및 수익구조를 보면 국내 부문 여객자회사인 DB Bahn Regio의 경우, 8억 유로의 영업이익 가운데 90%는 국철에 대한 지방 또는 정부의 지원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보건대, 코레일의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로부터 충분한 공적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코레일이 철도시설공단에 지급하는 선로사용료도 줄이면 부채해소는 물론 요금인하도 가능하다. 코레일이 8년 동안(05년∼12년) 철도시설공단에게 지불한 사용료는 4조 9706억 원인데, 높은 선로사용료는 코레일의 영업손실을 늘리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따라서 선로사용료를 인하하면 고속철도 요금도 인하할 수 있다. 코레일이 현재 납부하는 고속철도의 선로사용료는 매출액의 31%로, 서울-부산 간 5만3300원의 요금 속엔 통행료가 1만6523원이나 포함돼 있다.
하지만 철도시설공단도 현재 부채가 17조9천억 원이고 정부의 재정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정부는 고속철도 건설에 40%만 지원) 거의 유일한 수입원인 선로사용료를 마냥 줄일 수는 없다. 선로사용료 문제는 철도시설공단의 건설투자와 연결이 되어 있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철도 SOC 투자를 우선 늘려야 한다.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코레일이 출범한 이후 8년간(2006년∼2013년) 중앙정부의 전체 교통 SOC 투자는 139조9천억 원이었다. 이 중 철도투자는 35조8천억 원으로 전체 대비 25.6%(도시철도까지 합치면 31.4%이지만 도시철도는 기능이 다르므로 제외함)에 불과했으나 도로투자는 64조8천억 원으로 전체 투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46.3%이었다. 철도와 비교하면 도로에 약 2배 정도 더 투자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으로 철도를 지목했지만 철도 건설투자는 여전히 도로에 비해서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도로는 이미 과잉 투자된 상태여서 투자규모를 대폭 줄이고 철도건설로 전환해야 함에도 여전히 정부는 도로에 집착하고 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1998~2005년까지 철도와 도로에 각각 69%, 31%를 투자하는 등 철도투자가 도로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부)가 수탁하여 진행한 연구에서도 철도의 사회경제적 가치가 경영성과보다 21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지구온난화에 대비하고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철도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국토부의 주장처럼 수서발 KTX 노선을 분리하지 않아도 철도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을 확대하면 코레일의 부채는 물론 고속철도의 요금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가 유럽처럼 도로 중심이 아닌 철도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제는 상하통합(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통합)이 대세
국토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은 현재 한국이 취하고 있는 철도 상하분리(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으로 기관 분리)가 표준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국제철도연맹에 의하면 회원국 중 유럽의 상하분리 국가는 16개 정도이며 나머지 22개의 국가들은 상하통합을 유지하고 있다. 상하분리가 집중된 유럽에서조차 실제로는 상하통합이 더 많은 것이다.
오히려 2012년에 유럽의 철도강국인 프랑스가 상하분리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상하통합을 결정하면서 유럽에서도 상하통합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80개의 회원국 중에서 상하분리 국가는 20개이고 상하통합 국가는 60개여서 전체 대비 76%가 철도 상하통합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상하통합이 대세인 것이다.
최근에는 각종 연구 보고서에서도 유럽의 상하분리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상하통합의 효과는 크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철도도 상하분리 이후에 철도 안전의 약화, 조직 운영상의 비효율, 철도의 성장잠재력 약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다시 프랑스 철도처럼 상하통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토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은 상하분리를 여전히 교조주의 마냥 따르고 있다. 한국철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더 이상 상하통합은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국토부 관료들의 독점적인 정책결정구조를 혁파해야 현재 소수의 국토부 관료들이 철도산업의 장기비전과 중장기 정책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면서 한국철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의 사장과 이사진 또한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 인사로 구성되면서 국토부의 거수기에 불과한 실정이다.
물론 국토부는 2013년 4월에 철도산업 발전을 위한 민간위원회를 구성하여 한 달 동안 사회적 의견을 수렴한다고 했으나 이 또한 요식행위에 그치고 말았다. 지금과 같은 국토부 관료들의 독점적인 정책결정 구조에서는 한국철도의 발전은 요원하다.
이에 비해서 철도 선진국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참여형 이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토부가 지향한다는 독일철도는 전략적 방향과 재정적 관리를 감독할 수 있는 감독이사회에 노조 대표와 사측 대표가 각각 10명씩 선출되어 동등하게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파리광역도시권의 대중교통을 책임지고 있는 파리대중교통공사의 이사회도 사측 대표, 노조 대표(노조에서 추천), 유자격(외부) 인사(qualified people)(자치단체 선출직 공무원, 이용자조직 대표 등) 등이 각각 1/3씩 선출되어 운영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관료독점이 아닌 이해관계자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보장하면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면서 공공성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전망을 같이 논의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국철도도 소수 관료들이 전횡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모여서 논의를 할 때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철도 경쟁력, 공공적 발전이 대안이다 이미 많은 기사와 글들에서 17조6천억 원에 이르는 코레일의 부채는 방만경영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영업활동, 회계기준 변경으로 계열사 부채계상, 정부정책이행,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취소, 계획된 적자(일명 착한 적자) 등의 원인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왜곡하고 철도를 민영화하고 경쟁을 시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급기야는 철도 노동자들을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하면서 귀족노동자 딱지를 붙이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변해야 할 것은 박근혜 정부와 국토부 관료들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이들부터 한국철도의 공공적 발전을 위한 인식의 대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국토부와 정부 여당은 한국철도의 문제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철도 발전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철도발전소위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영수 기자는 공공운수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자 경제학 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