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만남과 기다림이다. 만남과 기다림은 '설렘'을 품은 말이다. 설렘은 '두근거림'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기다리는 일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그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다. 설렘은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불쏘시개다. 배움은 설렘과 열정이 합해진 에너지의 산물이다."여태전 태봉고등학교 교장이 책 <공립 대안 태봉고 이야기>(여름언덕 간. 2014년 2월) 서문에서 한 말이다. 태봉고는 2010년 개교한 전국 첫 '공립 기숙형 대안고교'다. 여 교장은 오는 2월 말까지 교장 임기 4년을 마감하면서, '공교육을 살리는 희망 징검돌'을 정리한 책을 펴냈다.
그는 태봉고 교육의 '3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만들어가는 '희망의 합창곡'을 책에 담아 놓았다. 양산 효암고, 진주 삼현여고 교사와 산청 간디학교 교감을 거친 그는 "교직 첫걸음부터 '소통과 공존의 교육'을 화두로 삼았다"고 소개했다.
'3% 대안학교 설립운동' 의미
"세상을 통찰하고 해석하는 거대담론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일상의 삶에서 흔들리는 아이들을 돌보고 바로 세우는 문제다. 조금 느리거나 뒤처진 아이들, 이중삼중으로 소외받고 차별 당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자나 깨나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육을 고민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대안학교에 대해, 그는 "기존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든 '문제아 수용소'가 아니다"며 "그 답답한 울타리를 스스로 뛰쳐나온 아이들과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학교다"라고 밝혔다. '문제아' '부적응아' '중도 탈락자'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을 문제아니 학교부적응아니 규정하고 판단하면서 대안교육과 대안학교를 말할 수 있느냐"며 "대안학교를 하는 사람들 모두 일반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대안학교를 만들려고 하는 거냐"고 따졌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학교와 교육 시스템에서 아이들이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태봉고 학부모들은 '우애'가 있다. 그는 "'친한 것이 진리의 근거'라는 말도 있다"며 "서로 친해져야 소통이 시작되고, 학부모들이 친하게 지내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것이다. 태봉고의 학부모들 중에는 실제로 가족처럼 지내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3% 대안학교 설립운동'을 강조하고 있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3% 소금' 때문이라는 이치와 같다는 말이다. 그는 "바다의 소금처럼, 3%의 대안학교가 공교육을 살릴 수 있고, 어떤 조직이든 그 정도의 사람들이 있으면 건강하게 유지되고 굴러간다"며 "경남에 초중고교 900개가 넘는데 3%인 30개 정도 대안학교를 만들어야 하고,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활용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여 교장은 독서와 토론을 강조한다. 그는 "학교문화를 바꾸려면 개별 단위의 학교에서 교사독서회가 많이 생겨나야 하고, 선생님들이 먼저 책 읽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다면 학생들의 독서생활화 교육은 헛된 구호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토론의 진정한 재미는 듣는 일에 있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자신의 생각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는 학부모들도 '먼동'이라는 독서모임을 한 달에 한번씩 갖는다. 이 학교 이순일 교사의 독서모임 방식은 독특한데, 책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리내어 읽기 방식이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천천히 소리 내어 읽는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겠느냐.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겠느냐. 그러니 책을 쓰고 번역한 사람들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천천히 읽어나가자는 것이다.""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교육"태봉고 교사들도 일사분란하고 획일적이지 않는 모양이다. 여 교장은 "갈등이 없는 게 교육이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교육이다"며 "때로는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기도 하지만, 그런 다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화해하는 과정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모두가 진보여야 할 필요도 없고 그게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체벌 절대 금지를 강조해 놓았다. 여 교장은 한 교사가 몽둥이를 들고 학생을 데리고 교장실에 왔을 때 "일단 차부터 한 잔 하자"고 한 뒤에 세 사람이 앉아 이야기를 나눈 뒤, 그 학생이 스스로 운동장을 65바퀴 돌았던 사연을 소개해 놓았다. 그 몽둥이는 지금도 교장실에 세워져 있다고.
그는 효암고 채현국 이사장이 말한 "학교는 좋은 학생 못지않게 좋은 교사를 길러내는 곳"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고정관념이다"라는 이야기를 책에 소개해 놓았다.
태봉고는 독특한 교육문화, 환경을 갖고 있다. 교장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사랑방' 역할을 하기 위해 2개의 출입문 중 1개는 교장이 퇴근해도 열려 있다. 또 교장은 손님이 왔다고 해서 행정실 직원이 차 심부름을 시키는 게 아니라 교장이 손수 차를 끓여 내어 놓는다.
"흔히 교장, 교감은 관리자라고 말한다. 이 말부터가 문제다. 개인적으로 저는 관리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교사들을 독립된 인간이자 동료로 보지 않고 관리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학교는 좋은 학생만 길러내면 되는 곳이 아니다. 좋은 교사도 길러내야 한다. 교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동료교사들이 좋은 교사가 되도록 밀어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다."
특히 태봉고는 입학식 때 교사들이 신입생들의, 졸업식 때는 졸업생이 교사들의 발을 각각 씻겨주는 '세족식'을 갖는다.
이 학교의 개교기념일은 '6월 10일'이다. 6월 민주항쟁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처음으로 '성공적인 공립 대안학교 설립을 위한 공청회'가 열린 2008년 6월 10일을 기념하고 있다. 학생들은 텃밭 가꾸기, 음식 만들기, 옷 만들기, 제주도 걷기, 지리산 종주, 네팔이동학습 등도 한다.
또 학생들은 매주 화, 목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나면 학교 밖에 있는 멘토를 찾아간다. 미용사가 되고 싶은 학생은 미용실로 가고 요리사가 되고 싶으면 호텔이나 큰 식당 요리사를 찾아가는 것. 이를 '인턴십을 통한 학습(LTI 프로젝트 수업)'이라 부르고, 학기를 마칠 때 각자 발표를 하는데, 그야말로 '감동'이라고 한다.
공동체회의는 '학생중심의 학교 만들기'
학생들은 선생님을 '엄마,아빠'라 부르는데, 여 교장은 "입학식 때부터 교사들이 학생들을 한명씩 안아주는 프리허그가 학교문화로 자리 잡았다"며 "교사가 학생들을 자기 자식이라도 되는 듯 안아주니까 아이들도 선생님의 품에 편안하게 안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한 방에서 네 명이 생활하는데, 여 교장은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습관과 생활 태도를 기숙사 생활을 통해 체득하는 것"이라며 "여러 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아이의 미운 구석까지도 용납하고 감싸 안는 넉넉함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공동체회의'라는 게 있다. 학생생활지도와 관련해 이 학교에서 가장 권위있는 의사결정기구다. 간디학교의 '식구총회'와 같은 원리인데, 학생회장이 의장을 맡아 진행하고, 교장·교감·교사들도 학생과 마찬가지로 1인1표를 행사한다.
"학생들이 말도 안되는 논쟁을 벌이며 시간을 낭비한다 싶어도 인내심을 갖고 들어준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귀 기울여 듣기' 연습을 하는 교사연수 시간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 공동체회의는 '교사 중심의 학교문화'를 '학생 중심의 학교 문화'로 바꾸어가기 위한 중요한 교육과정이다."폭력문제가 발생했을 때 3일 동안 긴급 마라톤 공동체회의가 열렸는데, 그 결과에 따라 폭력에 가담했던 남녀 학생 10명과 교장이 함께 인근에 있는 야영수련원을 빌려 닷새동안 합숙하며 '생명평화살림단식'을 결행했던 '역사'도 책에 소개해 놓았다.
태봉고는 초청강연을 자주 연다. 웬만한 문화아카데미보다 낫다는 평가도 있다. 지금까지 다녀간 강연자는 4년 동안 60명이 넘는다. 강사로 나선 도법 스님(실상사)은 "아이들에게 가끔씩 이렇게 외식도 시켜줘야지요. 똑같은 이야기라도 안에 있는 선생님들이 이야기하면 건성으로 듣잖아요"라고 말해 교장도 공감했다고 한다.
한번은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를 초청했는데, 여 교장은 교사들과 궁리 끝에 학생들이 강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보고 가정통신문을 보내 김 교수의 책 <간디의 물레>를 구입해 읽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여 교장은 "아이들에게 들려주신 냉철하고 차가운 녹색 지성과 따뜻한 지혜의 말씀이 태봉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회상했다.
이밖에 여 교장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인류학적 선배요 스승이다", "끔찍한 입시경쟁과 학벌사회가 낳은 인권침해", "됐어 됐어 그런 가르침은 됐어" "학교가 학생들의 미래를 훔친다고?", "문제 가정,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 문제아는 없다", "교육에서 평가의 대상은 학생이 아니라 교사 자신이다", "교장·교감의 목소리가 낮아져야 학교가 산다", "말꾼보다 일꾼이 되자", "교사를 춤추게 하라" 등 제목의 글에 다양한 교육철학을 이야기 해놓았다.
"탁월한 교육프로그램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포기하지 않고 품어주는 교사의 따뜻한 마음이 더 절실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교사가 좋은 교사다. 그 아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며 성장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요 행복한 교사다. 오늘 하루도 그런 교사로 살고 싶다."여태전 교장은 시집 <꿈이 하나 있습니다>, 대안교육연구서 <간디학교의 행복 찾기>를 펴냈고, 오는 3월부터는 남해에 있는 한 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교육마을' 만들기에 나선다. 오는 21일 저녁 태봉고에서는 '교직원 송별식과 <공립 대안 태봉고 이야기>로 수다 떨기 자리'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