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詩)가 불통(不通)이란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국민과 소통(疏通)하지 않으니 시인도 독자와 소통하지 않는 것인가. 한 평론가가 불통의 시를 넘자고 설파하고 나섰다.

<오마이뉴스>에 '디카시(詩)로 여는 세상'을 쓰고 있는 이상옥 창신대 교수(문학평론가)가 <불통의 시를 넘어>(황금알 간)를 펴냈다. 이 교수는 2004년부터 '디카시'를 주창하며 디카시 창작과 이론정립 등 관련 운동을 주재하고 있다.

평론집은 2000년대 이후 '미래파'로 대표되는 시의 불통 현상,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오늘 시단의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내용들로 꽉 차있다. 오늘 현대시의 가장 큰 문제점이 '시의 불통'이라고 전제하고, 이에 대한 진단과 모색의 담론을 풀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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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왜 난해할까. 시인이 시를 어렵게 써서 그런지, 아니면 독자들이 몰라서 난해한 것인가. 이 교수는 "시의 새로운 상상력이라는 것이, 유행적 담론이 되어버린 '환상' '전복' '엽기' 난해성' 등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신진 시인들이 보이는 자폐적 담론을 새로운 상상력의 실험시라고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언제부턴가 독자들이 시를 읽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시가 독자에게 매혹적인 예술 작품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 때 어설픈 난해시가 횡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실험시(?)라는 소통 불능의 코드로 자폐증을 앓는 시적 담론보다는 소박하고 익숙한 코드라 할지라도 시인의 정서적 울림이 독자의 심금에 전달되는 익숙한 서정시가 차라리 나은 듯하다."

그는 "20세기의 시는 언어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언어 실험'을 할만큼 거의 다 해버렸다"며 "환상, 전복, 엽기, 난해성 등을 주요 모티브로 실험시라고 내세우는 2000년대 신진 시인들의 시적 담론은 20세기 담론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 평가했다.

급격한 매체 변화 흐름 속에 시는 어떠해야 할까. 이 교수는 "기존에도 문자예술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여전히 시는 문자 중심의 예술이었다"고 하면서도, "멀티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시 쓰기 전략 일면으로 운동성을 강하게 띠는 대표적 두 양상으로는 '멀티포엠'과 '디카시'가 있다"고 했다.

'인터넷 시배달 서비스'도 일종의 멀티포엠이다. 가령 시를 다양한 형태로 받아볼 수 있는 메일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화나눔사업추진위원회' 같은 활동을 말한다. 그림이나 사진, 플래시 애니매이션과 함께 시를 독자들에게 골라 보내는 방식으로, 도종환·안도현·나희덕·문태준 시인 등이 엄선한 작품을 배달해온 것이다.

또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디카' 내지 '폰카')를 활용한 영상 글쓰기다. 문자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달아 메일을 보내거나 블로그, 카페, 트위터 등에 올리는 디카 글쓰기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멀티포엠과 디카시가 신진 이론가들의 참여로 보다 정교한 시론적 작업을 거쳐 여러 문제점들을 불식시켜서 명실상부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독자 입장에서 불만요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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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단의 심각한 문제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매너리즘에 빠진 시와 폭발성 아방가르드 시로 양극화 되어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인들의 시 경우 지나치게 전위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소통불능의 상태에 빠진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며 "독자의 입장에서도 불만요인이 아닐 수 없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다시금, 시성(詩性)에 눈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라며 "시성에 초점을 다시 맞추고자 하는 것은 매너리즘 시와 폭발성 아방가르드 시를 지양하여, 현대시에 대한 불만 사례를 잠재워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렇다고 '전통회귀'는 아니라고도 했다.

정일근 시인의 시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작)을 소개한 이상옥 교수는 "정일근의 시는 서정적 울림과 그로 인한 감흥, 리듬감을 확보하면서 시의 본질을 견지하고 있다"며 "오늘의 한국 현대시는 서정의 원형에 해당하는 소월에서부터 기원하고 있는 시성의 뿌리를 더욱 견고히 해서 그것을 토대로 현대성의 줄기와 가지를 뻗쳐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문학의 위기'라는 담론에 대해, 그는 "근자에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문학이 구전문학에서 문자문학으로 바뀔 때처럼 또 한번의 파동을 겼으면서, 문학의 위기라는 담론을 생성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80년대 <홀로 서기> <접시꽃 당신>은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90년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세기말 블루스> 같은 시집은 수십만부 팔렸지만, 21세기 들어서는 명망있는 시인들의 시집도 천 부가 채 팔리지 않는다.

이 교수는 "책이 읽히지 않는다는 풍문이 난무하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이제는 매우 우려할만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에는 수다한 말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대부분 실속 있는 말은 드문 편"이라며 "뉴미디어 시대에 다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문학으로, 인간에게 제공하는 보다 근원적이고 심
오한 삶의 통찰을 제공하는 문학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혼란스러우면 다시 본질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한 그는 "다시 서정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이고, 시인은 세계를 순간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획득하는 것"이라며 "현대시가 난삽해져 가는 것은 서정시의 본질을 멀리하고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상옥 교수는 시가 불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독자의 몫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를 시로 대우하여 읽는 기본자세부터 갖출 때 거기서부터 시의 소통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얻게 될 것이다. 실상, 시의 매혹은 소통의 불편함, 그 불통성을 관통하는데 있다 할 것이다. … 무릇 사람도 그렇지만, 시도 시답게 읽어주는 좋은 독자를 만나야 불통을 관통할 수 있을 터."

이 교수는 김기림·오장환·이상을 중심으로 쓴 "1930년대 모더니즘 시와 문학담당층", "멀티포엠과 디카시이 전략", "현대시의 문제점", "문학은 왜 필요한가" 등에 대해 정리해 놓았고, 마지막에 김남조·문덕수·조오현·정일근·나희덕·홍성란의 시(시조)집을 중심으로 쓴 평론을 담아 놓았다.

이상옥 교수는 1989년 <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그동안 시집 <유리그릇> <환승역에서> <그리운 외뿔>과 디카시집 <고성 가도>, 평론집 <변방의 시학> <역류하는 시학> <아른다운 상처의 시학> <디카시를 말한다>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