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사람들은 적설량 30㎝ 정도의 눈은 '눈' 취급도 안 한다. 이 정도 눈에는 자동차 바퀴에 체인도 감지 않고 운전하는 건 보통이다. 이 정도 눈이 올 때면 "올라면 제대로 오든가, 오다 말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눈이 50cm 쌓였다는 언론 보도에 외지 사람들이 "눈이 많이 왔다면서요" 하고 안부를 물으면 "반나절도 안 돼서 제설차들이 놀램쩔에 몽지리 치워싸(눈깜짝 할 사이에 모두 치워)"라고 대답한다.
5㎝ 이하로 오면 "대굴령에서 눈이 날리는가보다" 하고, 10㎝ 정도는 "눈이 내리다 말았싸" 할 정도로 눈에 익숙하다.
그런 강릉 사람들이 지난 6일부터 내린 눈이 며칠만에 70㎝를 넘어서자 "눈이 꽤 온다야, 비닐하우스 무너지면 우터하나(어떻게 하지), 큰일이다야" 하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1m가 넘어서니 말이 줄어들고 걱정하는 눈빛이다. 일흔을 넘긴 어르신들도 이런 눈은 처음이라며 "뭐이 이다타나(뭐가 이렇다냐). 몸써리 난다야" 하신다.
요 며칠 사이 정말 눈이 많이 왔다. 기사를 쓰고 있는 10일 오후 현재도 많이 오고 있고, 앞으로도 많이 올 거란다. 오늘 출근할 생각으로 어제(9일) 마당에서 큰길까지 50㎝가 넘는 눈을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모두 치웠는데, 어제 오후와 지난 밤에 더 많은 눈이 내렸다.
마당에 삽을 세워보니 손잡이만 남는다. 남아 있는 눈이 90㎝다. 그동안 치우지 않은 곳은 허리까지 잠긴다. 도로 사정은 어떨까. 큰길까지는 나가봐야 하는데 마당을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강릉 시내에서 주문진을 잇는 7번 국도도 한산하다. 다니는 차도 확 줄고 지붕에 눈을 이고 느린 속도로 달리는 차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버스정류장 앞에도 눈이 수북하고, 오래된 이발소 앞에는 눈이 추녀 끝에 닿을 만큼 수북이 쌓였다.
모든 게 마비됐다. 시내 중심도로만 겨우 뚫렸다. 시내버스 노선 중 절반 가까이가 불통이고, 택시도 중심도로만 오간다. 학교도 주민자치센터도 쉰다.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니 변두리 식당도 손님을 받지 못한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오죽헌도 계속해서 내리는 눈에 '관람불가'다. 설경을 찍으러 온 사진작가들만 이리저리 오간다.
눈 피해가 얼마나 될지 아직은 모른다. 지금부터가 고비다. 여기저기서 비닐하우스 눈을 치우고 있다.
산짐승들도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있다. 고라니나 멧돼지도 이런 눈은 헤집고 다니지를 못한다. 또 먹이도 눈에 덮여 힘겨운 날들을 보낼 것이다. 그나마 날짐승들은 강아지 밥부스러기라도 나눠 먹는다.
10일 오후 3시 현재 강릉의 적설량이 107㎝란다. 해안가나 산간 지방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번 눈은 내일(11일) 낮부터는 점차 그치겠지만 수요일(12일) 오후에 또 한 차례 온다고 한다. 목요일(13일) 하루 쉬고 금요일(14일)과 토요일(15일) 또 다시 많은 눈이 내린단다.
이쯤 되면 강릉 사람들의 한마디 "눈이 개락이다"라는 말이 나올법하다. 눈이 엄청 많다는 강릉 토박이말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