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원도 양양군 어느 산골마을. 1m가 넘는 폭설이 쌓여 진입로가 막혔다.
강원도 양양군 어느 산골마을. 1m가 넘는 폭설이 쌓여 진입로가 막혔다. ⓒ 신광태

50 평생 살면서 이렇게 많은 눈을 보긴 처음이다. 지난 10일, 5일째 계속된 동해안 폭설. 주차장에서 미처 빼내지 못한 차들은 그것이 차인지 눈덩이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제설작업에 엄두를 내지 못해, 겨우 비집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눈 통로를 만들었다.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엄청난 폭설에 시민들은 차도변에 사람만 겨우 다닐 정도의 인도를 만들었다.
엄청난 폭설에 시민들은 차도변에 사람만 겨우 다닐 정도의 인도를 만들었다. ⓒ 신광태

 매일 퍼붓는 폭설에 어느 기업체는 제설작업을 포기했다.
매일 퍼붓는 폭설에 어느 기업체는 제설작업을 포기했다. ⓒ 신광태

뉴스에서는 1m 이상이 내렸다고 했다. 전날 말끔했던 숙소 입구는 다음날엔 정강이 높이까지 눈이 쌓였다. "고객들을 위해 눈도 치우지 않고 뭐하느냐"고 항의도 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출근하자마자 차량 출입이 빈번한 주요 도로 등을 중심으로 제설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니 숙소 앞 진입로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전날 밤새 퍼부은 눈이 30cm를 넘는다.

예약금이 아까워 휴가를 강행했다

"3월이면 작은 애가 대학진학 때문에 서울로 가고, 딸도 원주로 가야 되는데 동해안 가족여행이나 가자."

한 달 전 아내는 아이들을 위한 가족 여행을 제안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한 약속 일정, 내 사무실 행사 일정 등을 판단해 2월 10일부터 11일까지 휴가 기간으로 정하고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어느 펜션에 예약도 마쳤다.

"여보, 동해안 쪽으로 눈이 무척 많이 내린다고 하네."
"동해안은 원래 이때쯤이면 눈이 좀 내려. 그리고 금방 녹기 때문에 큰 문제없어. 또 눈 덮인 바닷가 운치 있잖아."

 내 나이 오십 평생 이런 폭설은 처음이다.
내 나이 오십 평생 이런 폭설은 처음이다. ⓒ 신광태

휴가를 떠나기 일 주일 전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깟 봄눈, 녹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큰 영향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동해안 휴가 취소하자.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우리나라 제설작업 하나는 끝내주잖아. 별문제 없어 걱정마."

휴가를 떠나기 전날, 아내는 아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동해안 여행 취소를 제안했다. 아이들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눈치였다. 그런데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

'취소하면 예약금 일부를 돌려 받지 못할 텐데···'

난 휴가 강행을 주장했다.

휴게소 진입로가 끊겼다, 난생 처음 고속도로에서...

 휴게소 진입도로마저 끊겼다.
휴게소 진입도로마저 끊겼다. ⓒ 신광태

아이들과 횟집에서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나 나누어야겠다. 술 취한 척 하면 운전이야 아내가 할 테고···'

바쁘다는 핑계로 모처럼 떠나는 가족휴가. 설렘에 전날 잠을 설쳤는데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이것 챙겼냐? 저것 넣었냐?"하면서 나 혼자 신났다. 이곳 화천의 날씨가 이렇게 화창한데 동해안에 눈이 내려 봐야 얼마나 왔겠나.

"어디다가 전화한 거야?"
"인제군청."
"인제군청은 왜?"

화천에서 양양으로 갈 수 있는 빠른 길은 양구를 경유해 광치령을 넘어 인제군 원통을 지나 한계령을 넘는 코스다. 한계령은 높기 때문에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미끄러울지 모른다는 판단을 했기에 미시령 터널을 지나 속초에서 양양으로 내려갈 참이었다.

화천 경계를 지나 양구로 향하는 이정표를 지날 즈음, 아내는 갑자기 방향을 영동고속도로로 바꾸잖다. 이유는 미시령 터널 출입은 체인 등 월동 장구를 갖춘 차량에 한해 허용하기 때문이란다.

"무슨 소리야. 여기서 춘천을 돌아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영동고속도로를 갈아타서 강릉에서 양양을 간다고 생각해봐. 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름 값이 얼마나 들겠냐? 좀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여보, 당신이 좀 생각 좀 하고 살지. 우리 체인 없잖아. 인터넷으로 확인했더니 5만 원이던데 현장에서 그것만 받겠어? 아마 배 이상은 받을 걸."

집사람의 논리 정연한 설명에 방향을 영동고속도로로 바꾸었다. 춘천을 지나 횡성, 평창을 지날 때도 동해안에 폭설이 내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고속도로 주변엔 눈덩이 하나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달리던 우리 일행은 대관령 터널을 빠져나오자 모두는 비명을 질렀다. 눈이 내린다는 풍경이 무색할 정도로 퍼붓는 상황. 터널 하나 지났을 뿐인데 완전히 딴 세상으로 변한 거다. 차량급제동을 걸자 옆으로 심하게 밀린다. 주위를 둘러봐도 체인을 파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일순간 돈 아낀다고 3년째 쓰던 스노 타이어를 바꾸지 않았다는 후회가 스쳤다.

 대관령 터널을 빠져 나오자마자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대관령 터널을 빠져 나오자마자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 신광태

"이러다 우리 속도위반으로 걸리는 것 아닐까?"

대관령 터널에서 강릉 입구까지 차량 속도 40km 이하로 내려오는 내게 아내는 과속이 아닌 저속 때문에 위반에 걸릴지 모른다고 농담을 건넨다. 브레이크도 밟지 못하고 겨우 내려오는 것엔 아랑곳 하지 않고 온 세상이 흰색만 보이는 것이 마냥 신난 모양이다.

"휴게소 푯말 보이면 말해줘. 좀 쉬었다 가자."
"어, 저기 보인다. 2km만 가면 된다."

강릉에서 양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언제 완공을 했는지 말씀하게 단장이 되었다. 완공이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폭설 때문일까. 가끔 제설차량만 보일 뿐 우리 차밖에 없다. 제설차량이 지나간 도로는 채 5분도 되지 않아 제설 흔적이 사라질 정도로 눈이 쌓인다. 

너무 긴장을 하며 운전을 한 탓일까.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밀려오는 참기 어려운 생리현상. 이곳은 고속도로다. 4차선 도로는 온데간데 없고 겨우 차량 한 대가 지나갈 정도 넓이로 눈길을 뚫어놨다. 차량이 없다고 해도 이곳은 고속도로다. 차를 아무렇게나 세우고 볼일을 본다는 건 위험할 수 있다는 거다. 휴게소를 물었더니 아내는 2km 전방에 있단다.

그런데 아뿔싸~ 휴게소로 들어서는 입구는 눈으로 덮여 길이 끊겼다. 폭설 때문에 상가들 모두 영업을 포기했나 보다. 방법이 없다. 경범죄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다. 차를 세우고 시원하게 해결했다. 그래도 지나가는 차량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폭설에 내비게이션도 정신을 잃었다

 동해사로 가는 이정표는 있는데, 길이 없어졌다.
동해사로 가는 이정표는 있는데, 길이 없어졌다. ⓒ 신광태

"이 폭설에 어떻게 오셨어요. 전화를 해 취소를 말씀하셨으면 전액 환불해 드리려고 했는데..."

양양 해변가에 위치한 펜션 담당 직원은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맞았다. 차마 환불액이 깎일까 봐 왔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일정 소화는 예정대로 한다."
"와~ 그러면 회도 먹고, 닭강정도 사고? 신난다."

어떻게 찾아 왔는지 모르는 눈길... 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 앞에서 객기라도 부려 용감한 척하고 싶었다. 그러면 아이들이 '눈길 위험한데 숙소에서 그냥 쉬자'라고 할 줄 알았다. 괜한 말을 해 또 살벌한 눈길로 나가야 한다. 어쩌겠나, 아이들을 위한 여행인 걸.

 동해안 횟집 촌. 폐허 같은 곳인 줄 모르고 회를 먹으어 왔다.
동해안 횟집 촌. 폐허 같은 곳인 줄 모르고 회를 먹으어 왔다. ⓒ 신광태

 말로만 듣던 동해안 폭설.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 주차장에 세웠던 차량은 차인지 눈덩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말로만 듣던 동해안 폭설.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 주차장에 세웠던 차량은 차인지 눈덩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 신광태

"어머, 횟집이 다 문 닫았어."

지난 여름 북적였던 대포항을 떠올리며 찾아온 게 잘못이다. 그 많던 횟집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청소를 하고 있는 어느 횟집 주인에게 "오늘 영업 안 하세요?"라고 묻자 "눈이 이렇게 오면 배가 뜨지 않기 때문에 문을 열수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유턴 하세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눈길. 의지할 거라곤 내비게이션 밖에 없다. 그런데 양양에서 속초로 향하는 국도에서 내비게이션은 갑자기 유턴을 지시한다. "내비를 닭강정집으로 찍은 거 맞지?"라고 묻자 아내는 (자신을 못믿는게 불쾌하다는 듯)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보여준다. (내비게이션) 이 녀석도 엄청나게 퍼붓는 폭설에 정신을 잃었나 보다. 

 폭설을 이고 서있는 소나무가 위태롭다.
폭설을 이고 서있는 소나무가 위태롭다. ⓒ 신광태

"양양 어느 펜션에서 맞이한 휴가 첫날 아침... 밤새 눈이 미친년 널뛰듯 퍼부었다. 1m가 왔는지 그 이상이 왔는지는 관심 없다. 문제는 오늘 집에 갈 수 있느냐는 거다. 한 달 전에 예약한 거 취소하면 예약한 돈 일부 못 받을까 봐 기어온 게 잘못이다. 눈이 너무 와서 이젠 도로 제설 작업도 포기했나 보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나 어~~~~~~떻게~"

"어~~~떻게해~~ 취소 수수료 아끼려다 숙박요금 더 나가게 해 드려요~? ㅋㅋ눈 더 온대요. 언능 넘어 오세요."

산천어축제 추진 특별휴가를 3일을 얻었다. 바쁜 일 때문에 2일간 쓰기로 한 휴가. 출근 걱정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짤리기야 하겠냐. 하루 더 쉬어라" 등 50여 건의 댓글이 올라왔다. 그 중 한 페친의 글이 나를 한참 웃게 했다.

"당신 출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남아서 제설작업이라도 해 주고 가야 하는 것 아냐?"

 밤새 내린 눈은 숙소 입구를 막았다. 하루 밤새 20cm가 넘게 내렸다.
밤새 내린 눈은 숙소 입구를 막았다. 하루 밤새 20cm가 넘게 내렸다. ⓒ 신광태

 산속의 멧새 한마리가 먹을 것을 찾아 민가의 볏짚을 찾았다. 경계심이 강한 녀석은 가까이 가도 날지 않는다. 목숨보다 먹이가 급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속의 멧새 한마리가 먹을 것을 찾아 민가의 볏짚을 찾았다. 경계심이 강한 녀석은 가까이 가도 날지 않는다. 목숨보다 먹이가 급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신광태

관공서, 기업, 군부대, 사회단체 등지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제설작업 지원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조속한 시간 내 제설이 이루어져 시름에 젖은 시민들의 얼굴에 활기가 넘쳤으면 좋겠다.

 눈으로 덮인 미끄러운 눈길. 출근을 위해 이 길로 또 들어서야 한다. 차라리 휴가를 하루 더 연장하고 제설작업을 돕자.
눈으로 덮인 미끄러운 눈길. 출근을 위해 이 길로 또 들어서야 한다. 차라리 휴가를 하루 더 연장하고 제설작업을 돕자. ⓒ 신광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동해안 폭설#양양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