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생소한 것을 접하면 낯섦이 있다. 그런데 계속 낯섦을 접하면 낯선 것이 오히려 익숙해진다. 제가 아는 상식에서 사진을 잘 찍는 분들은 단(短) 렌즈를 가지고 다닌다. 한 발짝 더 다가가 앵글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낯섦을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내 아이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철학이다."인천대학교 행정학과에서 전자정부와 정보통신정책, 정부혁신 등을 가르치는 서진완(51) 교수는 독특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08년 7월 2일부터 큰아이와 단둘이서 배낭 하나 달랑 매고 35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3년 후 아이와 함께한 여행을 책 '아빠와 아들의 성장여행, 길 위의 공부(웅진 리빙하우스)'로 들려주기도 했다.
자녀와 여행, 자녀와 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책 서문에서 그는 "얼굴과 성격까지 닮은 자식을 바라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하다. 특히 집을 떠나 먼 이국땅에서 유독 나와 피부색이 같은 아들을 지켜보는 일은 아들과 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라고 했다.
그 뒤 서 교수는 지난해 1월부터 꼬박 1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세계여행길에 나섰다. 2013년 1월 3일 인천공항을 출발, 방글라데시에서 시작해 서쪽 방향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2014년 1월 2일 귀국했다. 큰아들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됐고, 딸은 중학생이었다.
그는 이런 선택을 왜 했을까. 그는 낯섦이란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한민국 부모들은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까지 새로운 경험을 시킨다고 다양한 곳을 데리고 가서 체험교육 등을 시키지만, 아이가 공교육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는 낯선 경험을 시키지 않는다. 모든 것을 공교육에 떠맡긴다. 그리고 아이를 학원과 학교로만 돌린다"
낯섦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요르단 항공기를 타면 요르단 입장에서 제작한 세계지도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자꾸 볼수록 익숙해진다. 문화라는 것이 그렇다. 젊은 대학생들은 그런 낯선 문화가 익숙하지만, 나이든 분들은 익숙하지 않다. 대학교수들이 자유주의자가 많은 것은 교수가 새로운 것을 배워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학교수들이 시국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발표한다는 것은 그 만큼 사회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온가족이 이런 여행을 떠나기까지 힘든 결정의 시간이 있었을 것 같다'는 물음에, 그는 낯섦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가끔 만나는 공무원들에게 어느 정부가 제일 힘들었던 시기냐고 물으면, 종종 노무현 정부 때라고 한다. 공무원은 위에서 무엇을 시키면 하는 수동적인 삶이 몸에 배다 보니 위에서 알아서 일을 하라고 했던 참여정부가 힘들었다고 느낀 것이다. 행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공무원을 선호해 입학한 학생들이 꽤있다. 부모들이 직업적으로 안정된 공무원을 선호해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 문제는 부모의 욕구를 아이들에게 투사한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공무원이 하고 싶었는지 스스로 투사해본 적도 없이 말이다."낯섦은 자신을 스스로 투사하고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서 교수는 취업난과 스펙 쌓기도 한 원인이지만,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지내다가 대학 3~4학년쯤에 이런 고민에 빠져 휴학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인터뷰하러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4학년 때 휴학하고 몇 개월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학생과 진로 상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런 마음을 알았을까? 큰아들이 세계여행 11개월 만에 좀 진지한 질문을 그에게 했다고 한다.
"여행 11개월 동안 진지한 질문을 하지 않던 익준(=큰아들)이가 '아빠는 내가 무엇을 했으면 좋은지 왜 물어보지 않냐'고 물었고, 솔직한 심정을 아이에게 털어놓았다. '아빠는 네가 한국에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서 교수의 두 아이는 3월 재입학을 준비 중이다. 서 교수는 재입학이 안 되면 검정고시를 봐도 좋다며 대학은 옵션에 불과하다는 뜻을 아이들에게 전했다.
가족 전체가 세계여행을 한다는 것은 부모 직장이나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일반인들은 선택하기 힘든 결정인 것 같다는 물음에, 서 교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학교수의 특혜는 있다. 안식년에 이런 여행을 갔다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돈이 없다는 것은 조금은 핑계일 수 있다. 그리고 꼭 세계여행이 아니어도 좋다고 본다. 친구들이 자녀교육 때문에 서울 강남이나 목동에 사는데, 나는 집값이 조금 더 싼 영등포로 이사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필요하면 경차를 이용한다. 1년에 백화점 한 번 가지 않고, 아내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여유 돈을 모아 세계여행이라는 경험을 선택한 것이다."서 교수는 학교에서도 제자들에게 여행과 연애를 권한다고 했다. 낯섦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아이가 전교 일등을 한 뒤 '이제 만족해'라는 유서를 부모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이나 부모에게 모두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강의 목표는 '흔들어 놓기'다. 가끔 어른들은 '갈매기의 꿈(리처드 바크)'을 인용하면서 아이들에게 더 높게 날 것을 종용하지만, 아이는 날아본 경험이 없다. 아이가 높이 나는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중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