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770㎞를 연결해 해파랑길을 만들었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걷는 길이다. 지난 15일 청주4050토요산악회원들과 해파랑길 트레킹을 다녀왔다.
아침 7시경 관광버스 3대가 청주체육관 앞을 출발해 포항으로 향한다. 처음 참여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날이라 아이들이 많고 분위기도 좋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익산포항고속도로 영천휴게소에도 들렸다. 포항이 가까워지자 눈이 쌓인 산하가 나타난다. 첫 목적지는 구룡포의 근대문화역사거리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바다가 구룡포다. 구룡포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기에 최적지였다. 구룡포항 앞에 100여 년 전의 모습을 실감 나게 복원한 근대문화역사거리가 있다. 28동의 건물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일본인거리에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1990년대 초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재현한 곳에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
일본인 가옥거리의 중앙에 구룡포공원이 있다. 계단을 올라 공원에 서면 일제강점기 침탈의 흔적을 간직한 구룡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원래 일본인이 세운 신사와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가 있던 곳인데 신사를 부수고 송덕비에는 시멘트를 부었다. 이곳에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근대문화역사거리의 끝에 구룡포의 삶과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구룡포 근대역사관이 있다. 역사관은 1920년대 구룡포의 큰손이었던 하시모토 진기치가 지은 일본식 목조가옥으로 1층과 2층으로 나눠진 각각의 전시실에 구룡포의 전설, 일본인들의 구룡포 정착과 생활모습, 구룡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등을 전시하고 있다. 2층에 있는 세 개의 방은 방문의 구조를 특이하게 해 평소 각각 독립된 공간으로 사용하다 손님들이 왔을 때는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할 때 호랑이 꼬리의 위쪽 끝 부분이 호미곶이고 호랑이 꼬리가 동해와 만나는 동쪽 끝은 구룡포의 석병리다. 구룡포항에서 925번 지방도를 달려 건너편에 포스코 가족수련원이 있는 석병1리 주차장으로 간다. 빨간 등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구룡포항에서 호미곶 등대에 이르는 총 15.1km 거리의 해파랑길 14코스 중 석병1리에서 호미곶 등대까지 9km의 트레킹을 시작한다. 어촌의 풍경이 다 그러하듯 물위로 올라온 고깃배와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어부들이 인상적이다.
동해는 맑은 날 바닷물이 비취색일 때 제 맛이 나는데 흐린 날씨에 간간이 빗방울까지 떨어진다. 그래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멋진 물보라를 만든다. 바닷가에 멋진 풍경만 있는 게 아니다. 괴상한 돌 아래에 소원을 빈 흔적도 있다. 어촌 사람들의 삶이 내륙도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볼거리다. 기웃기웃 구경도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힘차게 걷는다.
포항시 호미곶면 강사리 다무포를 지난다. 다무포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계곡 어귀에 마을이 형성되어 다목포, 다목계로 불리던 고래가 보이는 마을이다. 한때는 없는 것이 많아 다무포라고 했다는데 고래체험학교 앞바다의 파도소리가 유난히 맑다. 고래잡이가 성했을 때는 무거워 더 이상 잡을 수 없을 만큼 고래가 많았단다. 그 많던 고래들이 다 떠났지만 지금도 종종 고래들이 목격되는 청정지역이다.
호미곶이 가까워지자 등대, 새천년기념관, 풍력발전기가 눈앞에 나타난다. 거센 파도를 이겨내며 물고기와 씨름하고 있는 강태공들도 많다. 떼를 지어 놀고 있는 갈매기들이 하얀 파도만큼이나 자주 눈에 띈다. 하늘도 맑아지고 수천마리의 갈매기들이 일제히 비상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멋진 풍경이 천상병의 시 '갈매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호미곶(虎尾串)은 경북 포항시 남구의 영일만과 동해 사이에 바다 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반도 지형이다. 이 지역을 호랑이의 꼬리로 보는 인식이 강해 조선 명종 때의 풍수지리학자 격암 남사고는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천하제일의 명당이라 칭송하였고, 육당 최남선은 일출제일의 조선10경으로 꼽았다. 면의 이름도 대보면에서 호미곶면으로 바꾸었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위치한 새천년기념관은 1층 '빛의 도시 포항속으로' 전시실, 2층 포항바다화석박물관, 3층 영상세미나실, 옥탑에 전망대 등을 갖추고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포항이 걸어온 역사와 수만 년 전 바다에 살았던 생물체의 흔적을 엿보게 한다. 옥탑 전망대는 탁 트인 동해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
육지와 바다에 하나씩 있는 상생의 손은 국가행사인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로 새천년을 축하하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비전이 담겨있다. 두 손은 상생. 성화대의 화반은 해, 두 개의 원형 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연오랑 세오녀상도 이곳에 있다.
국립등대박물관은 우리나라 등대의 발달사와 각종 해운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1층에는 등대의 유래와 역사․각종 항로 표지, 2층에는 항만청의 각종 자료, 벽에는 외국의 유명한 등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대보등대, 장기갑등대로도 불리는 호미곶등대(높이 26.4m)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불을 밝힌 등대로 지방 기념물 제 39호로 지정되었다.
호미곶을 떠나 죽도시장으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해를 맞이하는 바다 영일만(迎日灣)이 펼쳐지고 포항을 대표하는 포스코의 높은 굴뚝들이 흰 연기를 내뿜고 있다. 포항 최대 규모의 죽도시장에 들어서니 구룡포의 특산물로 겨울철 별미인 과메기가 지천이다. 죽도회타운에 있는 연다라횟집에서 맛있는 회를 안주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관광버스 3대가 왔던 길을 되짚어 영천휴게소와 선산휴게소에 들리며 청주에 도착했다.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 청주4050토요산악회원들의 배려가 함께 했던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 '추억과 낭만 찾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