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별종이 아니라 새소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남에게 전하고 싶은 모든 시민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시민기자' 또는 '뉴스게릴라'라고 부릅니다. 지난 1월 초부터 7주간 <오마이뉴스>기자들과 함께 땀 흘렸던 19기 인턴기자들이 다시 '뉴스게릴라'가 되어 각자 묵직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인턴기자가 뛰어든 세상' 시리즈를 통해 조심스레 세상을 향해 노크해봅니다. [편집자말] |
'서른 둘, 고물상 총각 그리고 아기 아빠' 정윤성(32)씨는 서울 용산역 인근 철교 옆에서 5년째 가족들과 함께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다. 그 사이 그는 결혼을 했고, 아기 아빠가 됐다. 폐지, 플라스틱, 철물 등 도시 사람들이 쓰다버린 고물을 모은다. '고물쟁이 청년', 그는 새벽 4시에 출근해 해질 무렵까지 평균 14시간을 일한다. '왜 그리 하루를 빨리 시작하냐'는 질문에 "새벽 4시에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고물상 앞에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지난 18일부터 2박 3일, 정윤성씨와 함께 고물상에서 '관리인'으로 땀 흘렸다. 폐지를 종류별로 분류했다. 고물이 많을 땐 트럭을 몰고 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폐지를 직접 수거했다. 고물 가격도 매겼다. 관리인에게도 그렇지만, 할아버지·할머니에게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폐지는 1kg에 80원, 신문은 100원이다. 일 시작 전엔 고물상 관리인이 폐지계의 '갑'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목장갑을 낀 지 5분 만에 '갑'이 따로 있음을 깨달았다.
허리가 쑤셔왔다. 첫날 일을 마치고 허리에 파스 두 장을 붙였다. 이튿날엔 허리 찜질을 했다. 마지막 날엔 결국 조퇴를 했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허리가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함께 일했던 정씨가 존경스러웠다.
현재 전국에는 7만여 명의 '고물쟁이' 소상인들이 있다. 이들에게 고물을 팔아 생활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만 180만 명이다. 시민들이 쓰다 버린 폐지와 빈 병 등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그들에겐 고물이 곧 삶이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도시 사람들은 고물상이 미관을 해친다고, 시끄럽다고, 먼지 날린다고 고물쟁이들에게 떠날 것을 요구했다. 정부도 2013년 폐기물관리법을 개정해 상가나 주거지역엔 고물상을 차릴 수 없게 했다. 한평생 도시의 고물들과 함께 살아온 고물쟁이에게 '더럽다'는 말은 수치였다. 덩달아 고물로 생계를 이어 온 할아버지 할머니의 걱정도 커졌다. '고물상이 사라지면 누가 우리의 고물을 처리해 주냐'며 한숨을 쉰다. 정씨는 그들에게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고물상 총각, 아빠가 되기까지... "폐지 1kg에 20원 남기며 일했다"
정윤성씨는 지방대 토목과를 나왔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부모님이 일하는 고물상에 나와 손을 보탰다. 해병대 제대 후에도 주말이면 부모님 일을 도왔다. 한 사람이라도 도와야만 인건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영등포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씨가 서울 용산 지리를 꿰는 이유다.
그는 어떤 할머니가 국방부 뒤에 살고, 어떤 할아버지가 용산 남일당 근처에 사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어르신들도 총각이었던 정씨가 언제 결혼했고 언제 아들을 낳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정윤성씨를 '고물상 총각'으로 부른다. 처음부터 그렇게 불렀다.
'국방부 할머니' 김복순(72)씨도 그들 중 하나다. 국방부 근처에 산다는 이유로 '국방부 할머니'로 불린다. 김 할머니는 1974년부터 용산 삼각지 일대에 살고 있다. 지금은 손자와 둘이서만 지내고 있다. 레미콘 기사인 아들과 중국인 며느리는 돈을 번다고 지방을 전전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1주일에 한 번 '고물상 총각' 정씨를 부른다. 김 할머니의 집 마당엔 매번 400kg정도 고물이 쌓여 있다. 할머니는 아들 같은 청년이 왔다고 아껴뒀던 과일이며 음료수를 내놓는다. "폐지 줍는 거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손자를 학원이라도 보내려면 더 열심히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도움 주는 이웃이 많아 괜찮다"고 웃어 보였다. 할머니가 건넨 홍삼 드링크가 달았다.
정윤성씨는 트럭을 운전하면서 입버릇처럼 "폐지 값이 올라야 할 텐데…"라고 중얼거렸다. 어르신들은 정씨에게 폐지 1kg을 가져다 주고 80원을 받는다. 정씨는 그것을 모아 100원에 되판다. 폐지 1kg에 20원이 남는 장사, 정씨는 하루에 약 3000kg의 폐지를 팔아 6만 원 정도를 번다.
"고물상 없어지는 거야? 참말이야?"
손운자(74) 할머니의 집 마당엔 폐지, 책, 유리, 깡통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그는 "박스 값이 내려 죽겠다"며 "폐지 줍는 노인들도 많아져 경쟁이 심하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고물을 수거하러 온 정씨에게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바뀐 법 땜시, 좀 있으면 동네 고물상 다 없어진다고 하던디… 참말이여?" 정씨는 고물을 차에 실으며 "아직은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할머니 폐지는 우리 고물상이 이사 가더라도 받으러 오겠다"고 웃어보였다. 손 할머니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폐지 가격 하락과 고물상 폐업, 두 가지 모두 현재 진행 중이다.
손 할머니는 3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돈을 더 받았다. 당시에는 폐지 1kg을 가져다 주면 170원을 받았다. 그 때는 폐지를 덜 주워도 나름 지낼 만했다. 폐지 가격은 갑자기 급락했다. 고물상이 중간에서 가격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정씨는 "가격을 최종결정하는 제지업체에서 가격담합 의혹이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봉주헌 재활용연대 대표는 "파지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는데도 제지 회사는 사상 최대 이익을 남겼다"면서 "정작 제지를 공급하는 고물상업주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계속 손해를 보고 있다. 과연 제조사의 이익은 어디서 난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봉 대표는 "가격 결정을 기업에만 맡겨선 안 된다"며 "일본처럼 (양자가) 협의를 통해 폐지가격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윤성씨의 어머니는 오전 9시경 고물상에 나온다. 어머니는 오자마자 폐지를 분류한다. 박스, 신문, 하얀 종이. 고물상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다 같은 종이지만 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을 찾아오면 잠시 쉬었다 가라고 손수 커피를 타서 준다. 커피만 대접하는 게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굽은 손을 마주잡고, "건강은 어떠시냐", "아들은 집에 한 번 왔다 갔냐"고 안부도 묻는다.
정씨도 고물이나 폐지를 들고 오는 어르신들께 늘 허리 굽혀가며 인사를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고물상에 찾아와 따뜻한 커피와 인사 한마디 얻고 가는 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늘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고물 값을 매길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정씨는 어르신들에게 고물 값을 드리면서 항상 말한다.
"이것밖에 못 쳐드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생해서 번 돈이 너무 적어 다들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들도 '고물상 청년'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제지회사에서 매긴 폐지 값이 터무니없이 싸졌고, 그나마 수거되던 고물도 용산역 일대 고층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확연히 줄었다는 것을.
"서울에서 300평 땅 가진 사람이 누가 고물상 하겠나?"
"이것 때문에 고물상 다 망해요. 고물을 폐기물로 보는 거죠. 폐기물은 정부에 하나하나 신고를 해야 되거든요. TV, 냉장고, 컴퓨터 같은 전자제품이 이제는 신고해야 되는 폐기물이 된 거예요. 그것도 고물상 부지가 300평 넘어야만 가능해요. 우리처럼 100평 이하는 엄두도 못 냅니다." 정윤성씨가 고물상 정문에 붙어 있는 '폐기물관리법'을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
정씨의 말은 이랬다. 2013년 개정된 폐기물관리법은 부지 규모 1000㎡(특별시·광역시 기준)가 넘는 고물상만 폐기물로 규정된 전자제품을 처리할 수 있게 했다. 300평 이하 부지 규모 업체는 전자제품을 처리할 수 없다. 문제는 전자제품이 영세 고물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라는 점이다. 갑자기 손발이 잘린 형국이 됐다.
차별적인 규정도 추가됐다. 토지분류상 '잡종지'에서만 고물상을 차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상가나 주거지역에선 고물상을 차릴 수 없다. 정부가 나서 고물상을 도시에서 내보내겠다는 의미다. 정씨는 "서울에서 300평 땅 가진 사람이 누가 고물상을 하겠냐"고 반문했다.
정씨는 아버지부터 34년을 이어온 고물상을 지키고 있다. 그곳에서 고정적으로 폐지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만 약 30명이다. 대부분 주상복합단지 뒤쪽에 위치한 구 용산과 삼각지 일대에 거주한다.
정씨는 "용산 일대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하지만 용산역 일대는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09년 용산참사가 있었던 남일당 건물은 주차장으로 바뀌었고, 집창촌과 군장점이 몰려있던 용산역 광장은 새로운 복합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용산역 담벼락을 끼고 자리 잡은 정씨의 고물상 주변도 예외가 아니다. 고물상 건너편엔 30층짜리 빌딩이 세워졌다.
지난해 영세 고물상 퇴출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폐기물관리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법 개정을 촉구한 민주당 서영교 의원실 홍대진 보좌관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고물상이 도시에서 사라지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도시개발과 미관을 이유로 고물상을 도시 밖으로 내모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며 "고물상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기본 대책을 수립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홍 보좌관은 이어 "소외계층과 빈민, 환경을 고려한 '자원순환사회 촉진기본법(약칭 자원재활용기본법)'이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종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19기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