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병원이나 약국이 하나도 없어요. 보건소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이들이 아프면 난처할 때가 많아요. 우리 아이도 아프면 병원에 바로 데리고 갈 형편이 안되기 때문에 학교 보건소에 맡기고 안심했는데 보건교사가 없어진다고 하니 염려스럽죠."경북 고령군 우곡초등학교에 다니는 민수(가명) 어머니는 며칠전 학교 졸업식에 갔다가 올해부터 보건교사가 근무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곡면에는 병원이 단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보건소마저도 멀리 떨어져있어 아이들이 다칠 경우 학교 보건교사만 믿고 맡겨왔기 때문이다.
우곡초등학교에는 전체 학생수가 3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경북교육청의 지시에 대라 고령교육지원청은 소규모 학교의 보건교사들에게 공문을 보내 정원조정 계획을 알리고 중등학교로의 전보를 희망하도록 유도했다.
50인 이하 소규모학교 보건교사 감원하려는 경북교육청경북교육청은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 1일부터 50인 이하의 소규모 학교에 배치되어 있는 보건교사를 100인 이상의 중등학교로 전보시키기로 하고 전보를 희망하는 보건교사로부터 내신서를 받아 7명을 중등학교에 배치했다.
이에 따라 고령군의 우곡초등학교를 비롯해 영천시 대창초등학교, 청도군 금천초등학교, 동곡초등학교, 봉화군 동양초등학교, 군위군 우보초등학교, 송원초등학교의 보건교사가 올해부터 근무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 교사들은 김천과 구미의 신설 초등학교, 100인 이상의 중학교 등에 배치됐다. 경북교육청은 소규모학교 보건교사를 재배치한 이유로 학교급간 배치 격차가 커서 보건교육의 형평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학생 수 100명 이상 중학교에 보건교사가 배치되지 않아 보건교육 및 업무지원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북교육청은 보건교사가 없어지는 학교는 일반 교사가 3~4시간의 보건교육을 받고 보건교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보건교사 대신 업무를 맡은 교사는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지 못해 곤란을 겪기도 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담당업무를 꺼려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보건교사가 없을때는 보건실 문을 잠궈 놓는다"며 "아이들이 다치거나 갑자기 아프다고 울면서 달려올 때 보건실 문이 잠겨 있으면 상당히 난처하다"고 말했다.
보건교사가 없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한 아이가 복통을 호소한 일이 있었는데 충수염과 감별해 치료를 하거나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보건교사가 없어 당황한 적이 있다"며 "보건교사는 응급상황에 따라 여러 신체검진을 통해 응급인지 판단할 수 있지만 일반교사는 아무리 연수를 하더라도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경북의 초등학교 수는 477개교이다. 이 중 공립학교는 473개이지만 이 중 보건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366개로 77.4%에 불과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더욱 열악한 형편이다. 전체 중학교 277개교 중 203개의 공립중학교에 69명의 보건교사만 배치돼 33.9%에 지나지 않는다. 고등학교도 193개교 중 101개의 공립고에 56개교에만 배치돼 보건교사 배치율은 55.4%이다. 보건교사가 배치되지 않은 사립학교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더욱 떨어진다.
학교보건법은 모든 학교에 보건교사 배치하도록 규정학교보건법은 모든 학교에 보건교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 학교보건법 제9조는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에 관한 교육을 포함한 보건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제15조는 '모든 학교에 보건교육과 학생들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보건교사를 둔다'고 되어 있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학교에는 순회 보건교사를 둘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즉 모든 학교에 보건교사를 두거나 최소한 순회 보건교사를 두어 학생들의 보건교육과 건강관리를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경북교육청은 50인 이하의 소규모 학교에 대해서는 순회 보건교사마저 두지 않고 일반 교사들에게 아이들의 건강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가 정원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소규모학교에 보건교사를 두어야 하지만 정원과 예산이 정해져있기 대문에 어쩔 수 없다"며 "많은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 배치를 중점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용기 전교조 경북지부장은 "경북은 면단위에 학교가 하나밖에 없는 곳이 많고 병원도 없어 아이들이 아프거나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보건교사가 더욱 필요하다"며 "소규모학교일수록 더욱 보건교사를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규모학교에 보건교사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가진 곳은 경북교육청만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의 대부분의 교육청이 인력과 예산문제를 들어 보건교사를 채용하지 못하고 있거나 비정규직으로 보건교사를 채용해 순회를 시키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교육부에 전국의 보건교사 비율 등에 대해 질의를 해놓은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