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자암 김구 전국 서예대전 수상작품 전시회가 예산문화원 주관으로 추사기념관(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8번지)에서 2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열립니다. 지난번에 충남 예산에서 열린 서예대전에 관심 있는 전국의 520명의 서예인이 출품한 작품 600여 점 중에 수상작품들을 전시했습니다.
자암 선생의 16대 손 김충희님(현재 예산군 신례원거주)께서 2010년에 자암기념 사업회를 창립하고 자암묘소 진입로 공사를 완공했습니다. 예산향교 뒤에 있던 덕잠서원에서 자암 김구 선생을 독배양 했으며 흥선대원군과 안동 김씨 세력 김좌근의 정적으로 철거한 옥잠서원을 복원하는 노력을 현재 기울이고 있습니다.
덕잠서원의 초대 원장은 순조 임금의 장인 김조순이었으며 아들이 나중에 이어받았습니다. 중국의 황휘지체의 대가 양평대군에 이어 자암 김구 선생이 서울 인수궁에서 화려한 인수체를 탄생시켰습니다. 나중에 한석봉님이 고급스런 인수체를 서민체로 변환시켜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한석봉체로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수상작품을 구경하기 위해 작은 아이와 함께 추사기념관 전시회를 찾았는데요. 한지 위에 그려진 글씨와 그림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옛 정서가 묵 향기속에서 명백히 살아있음을 실감하고 지금 이시대에 정적인 우리 민족혼을 이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문인들에게 무한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붓 한 자루와 먹과 몇 가지 색채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가 있는지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이번에 열린 제1회 자암김구 전국 서예대전은 제1회라는 뜻깊은 행사입니다. 예산 출신 자암 김구 선생님은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태어나기 298년 전에 중국의 서체를 벗어나 우리나라 본연의 독립서체인 인수체를 창안하셨습니다.
자암 김구는 조선 중종 때의 학문과 예술에 깊은 소양을 지녔던 명신으로 선생님의 발자취가 훗날 추사 김정희 선생의 추사체로 완성하는 데 디딤돌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자암 김구 선생은 조선 전반기 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양평대군, 봉래 양사언, 석봉 한호와 함께 4대 명필이라고 합니다. 자암 선생은 기묘사화로 남해로 유배되어 화전별곡을 남기셨습니다.
자암 선생이 유배 중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현재 예산군 종경리에 있는 부모님 묘 곁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눈물을 흘리셨고 시묘살이 끝에 병을 얻어 그 이듬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현재 공주역사 박물관에 소장해 있는 그자암의 유품 그리고 그의 두보시는 마치 백지 위에 춤추는 듯한 자유로운 영혼이 담겨 글씨가 살아있음을 느낌니다. 자암 선생은 충효의 예를 갖추고 실천한 분입니다. 정려문은 자암 김구 선생 손자가 받았다고 합니다.
그게 행한 학문이 날카롭고 냉정함에 그치지 않고 그림 같은 글씨체와 함께 마른풀이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건강을 해칠 정도로 시묘살이한 지극한 효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좌측의 그림은 이번에 장원을 한 경기도 과천의 문인화 여인숙 님의 그림입니다. 우측은 차상 부분 문인화 김태억 님 작품입니다.
추사기념관에서 바라본 추사 고택은 겨울을 지나 봄을 기다리는 듯 고즈넉합니다. 조선전기의 자암김구 선생이 황휘지체 중국서체를 개인적인 초서로 만들었고 조선후기에 김정희 선생께서 추사체를 활짝 꽃 피우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이루어 놓은 독창적인 글씨체가 오늘날 예산이 묵향의 고장으로 명맥을 이어가는 데 초석이 되셨습니다.
서양의 학문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우리 민족의 사대부 정신이 깃든 글씨는 곧 마음 수행이라 합니다. 추사고택 들어 가기전에 위치한 자암 선생의 묘소를 지역문화제로 개발하여 자암에서 추사까지 묵향이 물씬 풍기는 새로운 문화 테마거리로 조성하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