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웃고 울고 살까? 평생을 살아오면서 되돌아보면 사랑처럼 달콤한 시간이 없었고, 사랑 때문에 울고 밤을 지새운 악몽 같은 시간도 없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배겟잎에 눈물을 적셔보지 않은 사람과는 사랑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그토록 사랑하고 믿었던 그 사람이 홀연히 떠나가던 그해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에도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는데 손보다 마음이 더 시리고 아렸던 기억이 난다.
몇 달을 베겟잎에 눈물이 계속 흘러도 마르지 않더니 어느 날 햇빛 앞에 서는데 눈앞이 흐릿하고 시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몇 달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하루 종일 누워서 그냥 이대로 누운 채로 죽어가는 송장도 있구나 했을 때,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엄마 배고파요."
사랑,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끊임없이 사람을 따라다니며 웃고 울게 하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다시는 사랑 때문에 내 몸과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성의 사랑은 잠시는 달콤하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간다. 참 신기한 것은 여인이 죽을 힘을 다해 아기를 낳고 다시는 출산의 고통을 알기에 애를 안 낳겠다고 해도 얼마 안 가서 또 둘째를 가지는 것처럼 이성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린 자식 앞에서 무너져가던 내 육신과 영혼의 초라함 속에서 몇 달을 누워 고생하고 어느 날 훌훌 털고 일어나면서 이성 간의 사랑 따윈 내겐 사치스런 감정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내 나이 44살에 내 자식들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기 위해 여성성을 내 스스로 과감히 무너뜨리기로 했다. 여성의 40대면 한창 몸과 마음이 성숙하는 시기로 감성이 풍부한 시간이었지만, 선택은 오직 한 길밖에 없었기에 그 당시에 산부인과에 찾아가 멀쩡한 자궁을 들어 내달라고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결국 내 의지로 스스로 극복했다.
그 힘든 시간을 아이들을 위해 내 한 몸 희생하리라 마음먹고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마음으로 이 전쟁과도 같은 삶을 헤쳐나와야 만했다.
참 이상한 것은 3년 동안은 시험기간이라 무척 힘들었지만, 3년이 넘어서니까 몸과 마음이 갈아 앉고 조금씩 편안해지더라.
내 의지대로 44살에 멈춰버린 여성성은 큰 아이의 구구절절한 말에서 비롯되었다. 큰아이 11살 즈음에 밤 열 두시가 넘어도 눈을 말똥거리고 잠을 안 잤다. 어느 날 "아가 이제 자야지? 얼른 자라."라고 했더니...
"엄마, 저는 엄마가 우리를 놔
두고 떠나갈까 봐 잠을 못 자요. 그래서 잠을 잘 때는 한쪽 눈은 감고 다른 한쪽 눈은 뜨고 자요." 불안한 얼굴로 말하는 큰 아이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가슴이 아려왔다.
" 그래 아가야, 엄마가 약속할 께, 엄마 절대로 너희들 두고 혼자 도망 안 갈게. 가더라도 너희들 꼭 데리고 갈 거야." 꼭꼭 두 손 걸고 약속해. 엄지 도장 찍고... 이렇게 한 다음에야 큰 아이는 마음 놓고 스르르 눈을 감고 편안하게 잠이 들곤 했다.
세상은 나와의 전쟁이었다. 자식들을 위해 내 감정을 절제하고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이 세상의 삶 속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사치스런 감정의 노예가 되어 내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피붙이 조차도 거둘 수 없게 되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
어미가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저 어린 양들의 눈빛을 보고 나의 외로움과 낭만적인 감정에 충실할 수 있겠는가? 세월은 흘러 13년이 지나고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랐다.
그동안 자식들과 함께 이 전쟁과도 같은 삶의 생존 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살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고 큰아이 어른이 되어 조금 의지하고 살만하니까 독립하려고 한다. 어미와의 분리를 두려워하던 11살의 소녀가 어느덧 자라서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 편지 한 장을 써놓고 고시텔에서 공부하겠다며 홀연히 사라졌다.
" 엄마가 내게 집착하면 할수록 저는 더 멀리 달아 날 거예요." 라는 편지 내용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 이제 새가 자라서 둥지를 떠나 훨훨 날아갈 준비를 하는구나. 그런데 마음이 너무 쓰리고 아팠다. 이것 또한 어미가 감당해야 할 몫이런가? 자식에게 쏟았던 사랑의 방식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겠다.
머잖아 작은 아이 또한 어미새 둥지를 떠날 차례가 올 것이다. 그래, 사랑은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고... 어디 남녀 간의 사랑만 그런가. 부모자식 간 사랑도 아낌없이 주고 때가 되면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하나보다.
내 젊음도 훌쩍 사라지고 아이들과 함께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낡은 앨범 속에 숨어있는 아기들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랑이 뭐길래' 공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