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우리 앞에 열린 정보사회는 지난 산업사회의 유물들과의 갈등과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갈등은 불가피하다. 새로운 시대의 첫 장을 위해서는 당연히 존재해야 된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의 본질, 논쟁의 사회적, 철학적 맥락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논쟁을 통해 정보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정보사회학을 전공한 필자가 매주 하나씩 주요 쟁점들을 분석·정리해서 올린다. 독자 여러분의 논쟁적 참여를 기대한다. – 기자 말
허진호 감독의 로맨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떠나간 사랑을 원망했다. 그 질문에 답한 사람은 탤런트 김민희였다. 한 통신사 광고에서 그녀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답하면서 사랑이 결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맞다. 사람은 구속할 수 있어도 사랑은 통제할 수 없다. 하드웨어가 고장이 나면 새로 살 수 있지만 한 번 유통된 정보는 다시 회수할 수 없다. 디지털화된 정보는 네트워크를 타고 다른 하드웨어 안에 들어가 있다. 그래, 거기까지도 양보하자. 그 다른 하드웨어를 없애면 정보 역시 사라질 테니. 그러나 이제 그 단계도 지났다. 정보는 이미 네트워크를 타고 구름 속을 날아다니고 있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원망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구름 속에서 찬연히 햇살이 비칠 때 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어느 하드웨어 화면 위에 정보가 나타날 때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정보가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질문을 던지자. 그 정보가 어느 미지의 장소에 있다 하더라도 정보 안에는 최초 만든 이의 흔적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강한 법적 동기는 분명 존재한다. 사적 재산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질서의 첫 번째 원칙이다. 그러면 왜 정보는 사적 재산임에도 다른 재화와 달리 사적 소유(정보의 보호)와 공적 활용(정보의 공유) 사이에서 사회적 논쟁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가.
이제 이 논쟁을 계속 유발시키고 있는 두 개의 주요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첫째는 정보 공유론과 정보 사유론을 둘러싼 오랜 역사적 논쟁이다. 둘째는 법과 기술의 사회적 관계다. 우선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저작권 보호와 정보 보호 즉, 저작권과 정보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하자.
저작권과 정보는 사실상 특별한 구분이 없이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이런 혼용이 오래 전부터 있어 온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다. 저작권(Copy right)은 오래 전부터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개념이었던 반면에 정보는 최근에 급부상된 개념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발달하고 인터넷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정보의 생성과 확산이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부각된 개념이다.
정보가 지금처럼 큰 의미가 없었던 시기에는 저작권만이 유일한 관심 대상이었다. 저작권은 구체적으로 도서, 음반, 그림 등 물질적 매개물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담보해왔다. 개인들이 이런 매개물들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뿐이다. 기술적인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도서, 음반, 그림 등을 개인이 제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작권은 자연스럽게 보호될 수 있었다. 물론 암시장 거래를 위한 불법복제 가능성은 늘 있어 왔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정도가 저작권 생성에 대한 의지를 꺾을 정도는 아니었다.
시장을 통해 유통되던 저작권의 매개물들이 시장의 매개 없이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바로 전달되면서 전통적 의미의 저작권 개념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것은 책이나 음반, 그림이 아니라 디지트화된 비트들이다. 비트가 LCD 디스플레이 위에 문자나 음원, 이미지로 전환되어 나타날 때 사람들은 저작권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어느 정보, 어느 콘텐츠가 더 가치 있는가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 이 콘텐츠는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의미가 없다. 콘텐츠가 온라인상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보공유론 vs. 정보사유론재산의 소유 형식에 대한 논의와 논쟁은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제외된 적이 없는 중요한 테마였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원의 희소성과 인간 욕구의 무한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한 표현이다.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는 없다는 전제하에 제한되어 있는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늘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사회 속에 있어 왔다.
특히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소유의 문제는 사유 재산권 인정에 따라 더 첨예하게 쟁점화되어 왔다. 재산의 사적 소유는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적으로 발전시켜 전체 사회 발전에 순작용하는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소유의 집중화로 인해 심각한 사회 분열을 야기할 수도 있다. 둘 사이의 균형은 늘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어젠다였고 사회적 관심사였다. 정보사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정보사회는 이전 사회와 몇 가지 다른 측면이 있고 이런 요소들이 '재산 소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확산시켰다.
재산과는 다르게 정보는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가 없다. 정보사회에서는 비물질적인 지식과 정보가 부와 권력의 원천이다. 정보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확산되어야 그 가치가 더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분명한 쟁점이 드러난다. 정보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의 공유와 확산은 다른 맥락이라는 것이다. 우선 정보의 사적 소유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살펴보자.
공공재였던 정보와 지식을 근대에 들어와 사유재로 전환한 이유는 전체 사회가 그 이익을 공유하려는 목적을 위해서였다. 개인에 의해 비밀스럽게 사유화되어온 지식과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기술의 발전, 진리의 발견, 문화의 발달을 촉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 공개를 위한 동기부여가 필요하고, 그 구체적 표현이 지적재산권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의식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정보의 확산이 사회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정보의 확산과 재산의 분배는 같은 맥락이지만, 물질적 재산은 소비되면서 소멸되지만 정보는 확산되면서도 소멸되지 않는다. 오히려 확산될수록 더 그 내용이 더 풍부해질 수도 있다. 정보의 확산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문제는 '정보의 확산을 위해서 지적재산권이 필요한가'라는 측면에 있다. 정보는 확산 이전에 생성되어야 하고 생성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사적인 노력과 투자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만약 적절한 보상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보의 생성은 빈약해지고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정보의 유통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논리가 정보사유론의 주요 맥락이다.
이제 정보공유론의 입장을 들어보자. 정보공유론자들은 지적재산권 제도가 특정 소수에게 독점적 이윤을 보장할 뿐, 일반 발명가나 사업가에게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정보 생성을 촉진시키기 위해 만든 지적재산권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사회 발전에 방해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정보와 지식은 기본적으로 인류의 집단적 경험과 기억, 학습이 담겨 있는 보편적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개인의 소유로 인정한다면, 개인의 욕망으로 인해 인류 보편적 재산이 상품화되고 결과적으로 다수가 소수에 종속되는 결과로 귀결된다. 이는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결과가 되고 인터넷의 기본 정신인 개방과 공유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적재산권은 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고 정보 공유를 주장하는 진영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정보의 확산
최근 지적재산권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이유는 정보 유통 방식의 변화, 구체적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신문, 잡지, TV 프로그램 등을 위한 배포 방식은 처음 그것들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다. 물류 시스템이 콘텐츠 생산자들에 의해 통제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예측 가능했고 관련 법률 역시 오랜 시간 개정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급속한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기존 정보 전달 패러다임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고 누구도 예측 못한 새로운 사태들을 만들어냈다. 정보의 급속한 확산, 지적재산권에 대한 재해석, 정보 공유에 대한 사회적 환기 등 주요 사회적 이슈를 만들고 이후 관련법 재개정의 결정적 계기가 된 두 사건을 통해 기술의 발달 과정에 있어서 저작권의 의미를 알아보자. 우선 소리바다 사건이다.
최종적으로 2005년 1월 12일 한국음반산업협회와 소리바다 사이에 일어난 형사소송 항소심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소리바다가 '복제권'과 '전송권'을 침해한 것을 인정하면서 이 재판은 끝났다. 하지만 이 사건은 'P2P를 통한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가 과연 위법인가'라는 주요한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다.
P2P(peer to peer)는 대형 서버를 이용해서 정보를 이용하는 일반 시스템과는 다르게, 이미 약속한 개인들이 각 개인의 PC를 검색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다운받고 남이 필요할 것 같은 것은 공유하는 방식이다. 약속에 의한 개인 대 개인의 자료 교환 방식이다. 이 방식이 과연 복제권과 전송권을 위반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됐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음반협회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이 사건은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정보 확산의 새로운 방식과 그런 방식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현행 법률 시스템의 괴리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클라우딩 컴퓨팅을 둘러싼 논쟁의 개연성 역시 법과 기술과 지체 현상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은 그 휴대성과 편의성으로 인해 최소 사이즈와 최소 용량을 필요로 한다. 데스크톱이나 노트북과는 다르게 그 안에 여러 응용 프로그램을 탑재하기 힘든 스마트폰은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아웃소싱한다. 예를 들어 '한글'이나 'MS Office' 같은 프로그램을 직접 설치하지 않고 필요할 때 일시적으로 가져다가 문서 작성 등에 활용하면 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여러가지로 편하고 경제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클라우딩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해외 기업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서버는 클라우딩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클라우딩 서버를 이용해서 만든 데이터, 정보, 콘텐츠 모든 것들이 이 서버 속에 있고, 기술적으로는 이 서버를 관리하는 회사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 회사들이 자사 서버에 보관되어 있는 콘텐츠를 '임의대로' 사용한다면 저작권 문제는 새로운 차원을 맞게 된다.
현재까지 저작권을 둘러싼 논쟁의 주요 당사자들은 저작권 소유자와 저작권 침해자 사이의 관계였다. 저작권을 침해당한 주체가 저작권을 침해한 개인이나 단체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판 또는 합의 결과에 따라 적절한 보상금을 받으면 종결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클라우딩 컴퓨팅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클라우딩 컴퓨팅의 사용은 일단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해외 서버에 저장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만든 정보나 콘텐츠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국내업체와 해외업체, 차별인가 합리적 대안인가 이런 두 가지 이유 외에도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저작권법의 적용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2010년 4월 15일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는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와 저작권 보호 협약을 맺었다. 이후 유튜브 사용자들은 음저협이 관리하는 음악 저작물을 활용해 이용자생산콘텐츠(UCC)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유튜브가 광고 매출의 일부를 저작권 사용료로 음저협에 지불하는 조건이다.
음저협의 이런 결정은 당연히 국내 포털업체의 반발을 야기했다. 이 계약 체결 이전에 음저협은 네이버와 다음을 상대로 2008년 7월 이후로 지루한 소송을 해왔기 때문이다. 음저협은 두 포털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방조와 그로 인한 피해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각각 수십억 원의 민형사 소송을 진행해왔다. 저작권 침해 방조는 유튜브에서도 존재했는데, 음저협이 유투브에게는 과거의 저작권 침해 문제는 일단 덮고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 미래를 놓칠 수는 없다"며 상대적으로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저협의 이런 태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유튜브에 국내 음악이 올라와서 유포된다고 해서 유튜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송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유튜브가 국내법 적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2010년 4월 방통위는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는 구글코리아가 유튜브 운영에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유튜브를 국내법에 적용받지 않는 해외 사이트로 인정한다고 결정했다.
사랑처럼 정보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다른 재화와 달리 정보의 보호와 공유가 동시에 이야기되는 것은 정보가 보이지 않게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움직이면서 다양하게 유통되기 때문에 옛날 방식으로 추적하기도 힘들다. 자전거 타고 쫓아가는데 이미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로 날아가고 있다. 아니, 다른 나라가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유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김홍열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독문학, 국문학을 공부했고 성공회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 과정 후 <정보네트워크 변화에 따른 가상공간의 확장과 권력관계의 재구성>으로 학위 취득했다. 저서로는 <축제의 사회사> (2010. 한울), <디지털 시대의 공간과 권력>(2013, 한울)이 있고 현재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성공회대와 명지대에서 '과학기술의 사회학'과 '정보사회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