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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보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겠다. 나는 지난 2013년 3월 1일자 <오마이뉴스>에 '최후의 친일파, 고문 귀신 하판락을 아십니까?'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 하판락은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를 체포하여 잔혹하게 고문한 자로 유명한 자였다. 그의 악행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그를 지칭했던 별명만 들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별명은 '고문하는 귀신'이라는 뜻의 '고문 귀(鬼)'였다.

그는 자신이 체포한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면서 늘 '조센징'이라고 불렀다. 같은 조선인 출신이면서 그 어떤 일본 경찰보다 가혹했고, 극렬한 고문 역시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에게 보여준 그 악랄한 충성심 덕분에 그는 경찰로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하판락에게 고문당했던 독립운동가 김준기씨는 훗날 이에 대해 "같은 동족의 몸에 그렇게도 심한 고문을 할 수 있었던 하판락에 대해 나는 심한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며 술회하기도 했다.

'친일파' 하판락의 고문 중 가장 지독한 고문은 '착혈 고문'이었다. 하판락은 자백을 거부하는 독립운동가의 혈관에 주사기를 삽입한 후 하나 가득 피를 뽑았고, 그렇게 뽑아낸 피를 벽과 피해자의 몸에 마구 뿌렸다고 한다. 공포와 절망을 주기 위한 2차 고문이었다. 이  같은 하판락의 고문으로 인해 여경수 등 독립운동가 3명은 목숨을 잃었고, 다행히 살아 남은 이 역시 신체 불구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런 악행을 저지른 하판락이 죽은 때가 2003년 9월이었다. 그는 당시 92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렸다. 또한 해방 후 이승만 친일 권력하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내가 2006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할 당시 그의 후손들은 그가 남겨 놓은 엄청난 유산 덕분에 넉넉한 삶을 살고 있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사실이었다.

 친일파재산을 되찾기 위한 범정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지난해 8월 충무로 극동빌딩에 있는 조사위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친일파재산을 되찾기 위한 범정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지난해 8월 충무로 극동빌딩에 있는 조사위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나는 이런 하판락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죄상을 낱낱이 담아 세상 사람들에게 '최후의 친일파'라며 그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 2002년 2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 당시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그때까지 유일하게 생존했기에 나는 그를 '최후까지 생존한 친일파'라고 여겼고 그런 제목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오보였다. '최후의 친일파'는 하판락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최후의 친일파'가 여전히 생존해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2009년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포함되어있는 그 이름, 바로 '백선엽'이었다.

6·25 전쟁영웅 백선엽, 친일파 백선엽

매년 6월 25일이면 백선엽, 그의 이름 석 자는 거의 모든 방송과 보수 신문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많은 공을 세웠다며 그를 '살아있는 전쟁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과 국방부가 그에게 예우하는 사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운영 중인 '백선엽 장군실'이다. 육군은 살아있는 백선엽의 이름을 따 사실상 그의 기념실을 만들었다. 지난 2005년 3월 개관한 것인데 이 당시 친일 논란이 있는 생존 인물의 이름을 따 이 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일자 이후 육본은 2011년 '안중근 장군실'을 개관하기도 했다. '백선엽 장군실' 유지를 위해 '안중근 장군실'을 만든 것 아니냐는 잡음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백선엽이 사단장으로 근무했던 육군 1사단은 그의 동상을 세웠다. 생존해 있는 인물의 동상을 세운 것도 특이한 일인데 경기도 파주 시장 역시 이러한 시도를 하다가 결국 여론의 역풍을 맞고 포기했다. 동상도 세웠으니 그의 이름으로 만든 상도 뒤따랐다. 2013년 9월,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그의 이름을 따 제정한 '백선엽 한미 동맹상'이 그것이다.

 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KBS가 지난 2011년 6월 24일~25일 이틀간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한 '전쟁과 군인'에 출연한 백선엽씨.
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KBS가 지난 2011년 6월 24일~25일 이틀간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한 '전쟁과 군인'에 출연한 백선엽씨. ⓒ KBS 화면 캡쳐

심지어 문화재청은 생존해 있는 그의 옷까지 대한민국 문화재로 등록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2013년 6월 문화재청이 백선엽이 한국전쟁 당시 입었던 군복을 '대한민국 근현대사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공고를 낸 것이다. 다행히 이 사실을 알게 된 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의 반대 운동과 여러 독립운동 단체의 격렬한 항의 끝에 문화재청은 공식적으로 포기를 선언한다. 하지만 백선엽의 위상이 이 나라에서 어떤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례다.

백선엽이 누리는 특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2013년 9월 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이 국방부 등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백선엽은 지난 2003년 11월부터 지난해까지 근 10년간 엄청난 특혜를 누려 왔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업무용 에쿠스 차량 1대와 운전병, 그리고 4급 상당의 개인 보좌관 등을 국방부로부터 지원받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비용은 국가 세금으로 국방부가 지급하고 있었던 것인데 업무용 차량을 개인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관련 법규 위반이었다. 이 같은 백선엽의 모든 특혜와 예우는 모두 한국전쟁 당시 그가 세운 공 덕분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만약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의 오늘은 어떠했을까. 그에게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그래서 그가 한국전쟁에서 공적을 세울 기회가 없었다면 그는 지금 일개 '친일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불행이었던 한국전쟁이 백선엽 개인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최고의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제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국전쟁의 공적과 달리 그의 일제 강점기 당시 행한 친일 행적은 무엇일까. 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그에게 '마지막 생존 친일파'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만들게 한 그의 행적은 이렇다.

만주국군 소위 백선엽, 그의 간도 특설대 기록

2009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업무를 종료하며 발간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백선엽은 1920년 11월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1942년 견습 군관을 거쳐 1943년 4월 만주 국군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보고서를 보면 백선엽은 '일제 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0호에 의해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됐으며, 이는 그가'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소위 이상 장교로서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42년 만주 국군 소위로 임관한 백선엽은 이후 1945년 일제 패망 전까지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고 한다. 특히 1943년 2월부터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근무하며 만주지역 항일무장 독립 세력을 탄압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편, 간도 특설대는 1938년 9월 일본이 만주국 치안부 산하에 만든 조선인 특설부대였다. 일본인 장교를 제외하고 모두 조선인으로 구성된 특수부대였는데 이들의 주요 임무는 '항일 무장세력의 섬멸'이었다. 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가 조사한 항일 열사 3125명 중 98%가 조선인인 것만 살펴봐도 당시 간도특설대가 어떤 업무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 독립운동 세력을 탄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백선엽은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지난 1993년 일본에서 출간된 백선엽 회고록 <간도특설대의 비밀>에서 그는 자신이 과거 항일 운동을 하던 조선인을 토벌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의 책 <간도특설대의 비밀>중 관련 내용이다.

"우리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 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이 같은 백선엽의 친일 행적을 입증하는 자료는 또 있다. 지난 2000년 일본에서 발간된 <젊은 장군의 조선전쟁>이라는 백선엽의 또 다른 책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간도선 일대는 게릴라(항일무장독립세력)의 활동이 왕성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계속하여 치안 작전을 수행하느라 바빴는데 간도특설대의 본래 임무는 잠입, 파괴 공작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특수부대, 스페셜 포스로서 폭파, 소부대 행동, 잠입 등의 훈련이 자주 행해졌다. 만주 국군 중에서 총검 대회, 검도, 사격 대회가 열리면 간도특설대는 항상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고 적고 있었다. '간도특설대가 항상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대목에서 그가 이 부대 소속원으로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반성하지 않는 백선엽의 친일 행적, 용서할 수없다

하지만 일제 패망과 조국 광복으로 사라질 줄 알았던 친일파들이 다시 이승만 친일 정권하에서 더 좋은 자리로 부활한 것처럼 백선엽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 일제 군 장교에 불과했던 그는 1952년 제7대 육군 참모총장으로, 이후 군 사령관을 거쳐 다시 1957년 두 번째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또한 군 전역 후에는 호남비료 등 국영 기업체 사장과 외교부 대사를 거쳐 1969년에는 박정희 쿠데타 정권 하에서 제19대 교통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모든 영광의 배경은 한국 전쟁에서 그가 세웠다는 '공'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백선엽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백선엽의 친일 행적에 대해 비판하면 보수세력 등이 벌떼처럼 일어나 "한국전쟁 영웅을 공격하는 것은 빨갱이 종북 세력"이라며 마구 공격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국방부가 국가 세금으로 친일파 백선엽을 미화하는 뮤지컬을 만든다는 계획에 대해 '민족 반역자를 미화하는 곳에 국가 예산을 쓸 수 없다"며 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이 반대했다가 극우 보수세력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이유였다.

물론 나는 백선엽이 과거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 끝까지 비난할 생각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고 잘못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과거 친일 행적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우리 국민이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백선엽의 '태도'다. 나는 그가 이 나라에서 받고 있는 모든 특혜와 명예에 걸맞게 '제대로 된' 반성이 뒤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가 알려진 것처럼 한국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면 그가 정말 과거 자신이 지은 잘못을 역사 앞에 죄 닦음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것 아닐까라며 좋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기대했던 믿음은 사실과 달랐다. 자신이 쓴 책 <간도특설대의 비밀>에서 백선엽이 과거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쓴 '충격적인' 도발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독립군을)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조선의)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독립군을 토벌한 것에 대한 반성도, 설령 자신이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 해도 조선의 독립이 빨라졌을 것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백선엽의 말은 차라리 '독립운동 세력에 대한 조롱'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친일 행적으로 설령 비판받는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사실상 사과를 거부한 것이다. 극우 보수세력으로부터 '전쟁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을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백선엽에게 분명하게 묻는다. 과거 자신의 친일 행각에 대해 지금이라도 민족과 역사 앞에 진정으로 사과할 용의가 있는가.

'민족을 배반하고 조국을 배반한 행위는' 시간이 지나간다고 저절로 용서받을 수 없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한, 우리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용서해선 안 된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의복·유물 문화재 등록반대 항일독립운동단체 긴급 기자회견이 2013년 8월 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앞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2009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되거나, 같은 달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백선엽, 민철훈, 윤웅렬, 윤치호, 민복기의 의복과 유물에 대한 문화재 등록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의복·유물 문화재 등록반대 항일독립운동단체 긴급 기자회견이 2013년 8월 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앞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2009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되거나, 같은 달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백선엽, 민철훈, 윤웅렬, 윤치호, 민복기의 의복과 유물에 대한 문화재 등록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 권우성

분명히 말하건대, 끝내 민족 앞에 사과하지 않은 채 그가 자신의 천수를 다한다면 그는 '반성하지 않은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영원히 우리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야 옳다. 또한 그가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백선엽의 친일 행적은 결코 과거형이 아니다. 조국의 독립 운동을 탄압하고 그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의 친일 행적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민족의 이름으로 2014년 3월 1일 제95주년 삼일절을 맞아 지금 이 순간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백선엽에게 요구한다.

반성하라. 사과하라.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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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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