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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8일 오후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에서 바라 본 월성 원전 전경. 왼쪽 원기둥 모양이 월성 1~4호기. 오른쪽 돔형이 신월성 1~2호기.
2월 28일 오후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에서 바라 본 월성 원전 전경. 왼쪽 원기둥 모양이 월성 1~4호기. 오른쪽 돔형이 신월성 1~2호기. ⓒ 김시연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월성'이란 지명이 사라진 지 오래인 이 작은 어촌 마을에 2년 전 제2의 '랜드마크'인 '월성스포츠센터'가 들어섰다.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이 지역 주민에게 보낸 '선물' 가운데 하나였다.

"(정년 퇴임이)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계속 운전(재가동 되는 것)'을 보고 나가게 해 주십시오."

월성 원전에서 30년 넘게 일하다 정년퇴임을 1년 앞둔 조왕기 월성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장의 마지막 당부였다. 하지만 이 어울리지 않는 '선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을 반대해온 지역 주민들에겐 '불안한 10년'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후쿠시마에 '발목' 잡힌 월성 1호기, '계속 운전'은 대세?

2012년 11월 20일로 설계 수명 30년을 다한 '노후 원전' 월성 1호기는 1년 넘게 가동을 멈췄지만, 지금도 수십 명의 원전 조종사들이 10명 6개 조로 나눠 지키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서 '계속 운전'을 허가하면 수명이 10년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수원이 지난달 28일 미래창조과학부와 원안위 출입기자들을 굳이 월성 원전으로 부른 이유였다.

공교롭게 이날 오전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 원전 2호기 가동이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진이 발생하면 원자로를 자동으로 멈추는 설비를 시험하는 도중 원자로가 갑자기 멈춰버린 것이다. 지난해 11월 부실 정비 의혹으로 가동을 멈췄다 재가동한 지 불과 101일 만이었다.

이날 동행한 한수원 직원들은 "원전은 민감하게 설계돼 조금만 이상 신호가 감지돼도 자동으로 정지한다"면서 "고장 때문에 멈춘 게 아니라 고장 방지 차원"이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서도 긴장한 표정까지 감출 순 없었다. 3년 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 원전의 일거수일투족에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에서 지난 2009년 12월 30일 월성 1호기 계속 운전 인허가를 신청할 때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지난 2007년 6월 설계 수명이 끝난 '최고령 원전' 고리 1호기도 6개월 만에 손쉽게(?) 계속 운전 허가를 받아 2008년부터 재가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이어 이듬해 고리 1호기 정전 은폐 사건, 원전 부품 납품 비리, 불량 부품 시험성적서 조작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결국 지난 2009년부터 2년 3개월간 7천억 원을 들인 설비 개선 작업으로도 모자라 지난해 5월부터 지진, 해일 등 중대 사고에 대비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쳐 현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과 민간 검증단 심사를 받고 있다.(관련기사: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시험대'... 전문가 검증 착수 )

이날 홍보관에서 기자들을 맞은 윤청로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장은 "30여 개국에서 135기 이상이 '계속 운전' 허가를 받았고, 현재 50기 이상이 계속 운전 중이고, 국내도 고리 1호기가 10년간 계속 운전을 하고 있다"면서 계속 운전을 '당연한 수순'인 양 강조했다.

월성은 후쿠시마보다 안전? 핵폐기물 처리 '배보다 배꼽'

 경북 경주 월성 원전 1호기 주제어실(MCR)
경북 경주 월성 원전 1호기 주제어실(MCR) ⓒ 한국수력원자력

아울러 윤 본부장은 "지역주민들이 후쿠시마 사태 잔상이 많이 남았지만 후쿠시마는 '비등수형'이고, 우리는 '가압수형'이어서 차이가 크다"며 불안감 해소에 주력했다.

실제 월성 1호기는 비등수형인 후쿠시마 원전과 달리 수증기를 발생시키는 원자로와 발전기를 돌리는 터빈이 분리된 가압수형이어서 방사선 외부 유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비록 원자로가 정지된 상태이긴 했지만 이날 취재진도 별다른 방사선 차폐복 없이 터빈실을 직접 둘러볼 수 있었다.   

월성 1호기는 냉각재와 감속재로 일반 물(경수)보다 무거운 '중수'를 사용하는 '가압 중수로형' 원전이다. 천연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해 원자로를 멈추지 않고도 연료를 교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사용후 핵연료다. 국내 원전 23기 가운데 중수로형은 월성 원전 4기뿐이지만 사용후 핵연료량은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수로형 원전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이날 월성 1호기 주제어실(MCR)에 전시된 천연우라늄 1다발 구입비는 약 480만 원이지만 사용후 핵연료 관리 부담금은 1320만 원으로 3배에 가까웠다. 1년 동안 5400다발을 쓰는 걸 감안하면 연간 관리 부담금만 713억 원에 이른다. 월성 원전에 자체보관할 수 있는 사용후 핵연료는 50만 다발이지만 2018년 말이면 포화될 전망이다. 그나마 월성 1호기라도 가동을 멈춘 덕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 안에 고준위 핵폐기물처리장을 마련해야 하지만 아직 부지 선정조차 마치지 못한 상태다. 당장 월성 원전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 떨어진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짓고 있는 중·저준위 방폐장만 해도 부지 선정을 놓고 오랜 진통을 겪었다. 바로 이날 한수원이 두 번째로 안내한 곳이었다. 

중·저준위 방폐장 1단계 마무리 공사... 고준위는 '첩첩산중'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인근에 건설중인 중저준위 방폐장. 해수면 아래 80~130m 깊이에 동굴 방식으로 지어진 1단계 시설은 방사선 폐기물 10만 드럼을 처분할 수 있는 6개 사일로로 구성돼 있다.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인근에 건설중인 중저준위 방폐장. 해수면 아래 80~130m 깊이에 동굴 방식으로 지어진 1단계 시설은 방사선 폐기물 10만 드럼을 처분할 수 있는 6개 사일로로 구성돼 있다. ⓒ 김시연

해수면 아래 80~130m 지하에 동굴식으로 짓고 있는 1단계 처분시설은 6월 말 완공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40인승 대형버스에서 17인승 미니버스로 옮겨 타고 총연장 1415m에 이르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 높이 50m, 지름 25m에 이르는 거대한 콘크리트 사일로가 나타났다. 원전이나 병원에서 사용한 작업복이나 장갑, 부품 등 방사선량이 낮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방폐물)이 담긴 200리터짜리 드럼을 35m 아래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으면 1만6700드럼이 들어간다. 이 같은 사일로 6개라고 해봐야 10년 치 10만 드럼이 고작이다.

문제는 지하수다. 방폐장 공사를 책임진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는 "공사 초기엔 지하수가 매일 4000톤씩 나왔지만 방수 공사를 거치며 지금은 1300톤으로 줄었다"면서 "펌프 시설 등을 갖춰 지하수와 폐기물이 섞이지 않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을 씻기엔 역부족이다.

더구나 목표치인 80만 드럼을 채우기 위한 2단계 공사는 1단계와 달리 지상에 '천층'식 콘크리트 구조물로 지을 예정이어서 지역 주민, 환경단체 반대가 더 심하다. 이렇듯 방폐물 처리를 둘러싼 갈등 또한 월성 1호기 계속 운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한수원도 '폐로' 대비... 경주시민 71%는 "월성 1호기부터"

이런 흐름 탓인지 한수원도 늦게나마 '폐로(원자로 폐쇄)'를 준비하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해 발전본부에 사후관리전략팀과 해체기술팀으로 구성된 원전사후처리실을 신설했다. 한수원 한 관계자는 "한수원 내부에 폐로 전담 조직을 가동하고 있다는 건 폐로를 고려한다는 의미"라면서 "월성 1호기는 몰라도 2017년 1차 계속 운전이 끝나는 고리 1호기의 재연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당장 월성 1호기부터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도 만만치 않다. 월성1호기 설계수명 만료 직후인 지난 2012년 11월 경주시 월성원전·방폐장 민간환경감시기구에서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경주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계속 운전 반대가 71.6%로 압도적이었고, 찬성은 24.6%에 그쳤다(신뢰도 95% 표본오차 ±4.4%).

이에 한수원은 "100만kW급 원전을 건설하려면 2조5천억 원 이상의 투자 자금과 10여 년의 건설기간이 소요되지만 원전 1기를 계속 운전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신규 원전 건설 비용의 1/5 정도"라면서 경제적 효과를 앞세우고 있다.

반면 환경단체에선 월성 1호기 설비용량이 67만8700kW으로 전체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안전성과 경제성이 떨어지는 중수로형임을 들어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2012년 한 해만 3차례나 고장으로 멈추는 등 30년 동안 39번 고장이 난 '노후 원전'이란 점도 대형 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방사선 유출 걱정 없는 원전? "원전도 사람이 만들었는데..."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홍보관 앞에 설치된 국내 원전과 주변 도시 방사선 현황 표시기.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홍보관 앞에 설치된 국내 원전과 주변 도시 방사선 현황 표시기. ⓒ 김시연

"원전에서 일할 때보다 등산할 때 산에서 쬐는 방사선량이 더 많습니다."

이날 오후 2시 희뿌연 구름에 뒤덮인 월성 원전 주변 환경방사선량은 '0.11μSv/h(마이크로시버트)'로 같은 시간 부산시(0.13μSv/h)보다 오히려 낮은 수치였다. "원전에서 33년 동안 일하면서 엑스레이(30~50μSv) 3번 정도 피폭됐다"는 윤청로 본부장 말도 나름 '계산된 허풍'인 셈이다.

하지만 3년 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당시 주변 방사선량은 시간당 최대 400mSv(밀리시버트)에 달했다. 사람이 1년 동안 쬐는 방사선량(1mSv=1000μSv)의 400배로 발암 기준이 되는 100mSv도 초과한 것이었다. 지금 월성 1호기가 존폐 기로에 서게 된 건 이처럼 일상적 방사선 노출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아닌 후쿠시마 같은 대규모 유출이라는 구체적 위협 때문이다.

이날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재가동에 대비해 경수로 원전의 원자로에 해당하는 압력관을 전부 신품으로 교체하고 냉각수가 끊겨 노심이 녹을 것에 대비한 수소 제거 설비, 외부 전원과 비상발전기 등 모든 전원이 끊길 것에 대비한 이동형 발전 차량 등을 보여주며 안전을 자신했다. 하지만 정작 이날 어떤 안전장치보다 솔직하게 가슴에 와 닿았던 건 "원전도 사람이 만든 거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하겠다"던 윤청로 본부장의 마지막 인사였다.

한편 한수원은 2일 앞서 발생한 한빛 2호기 가동 정지 사고 원인이 지진 자동 정지 설비의 시험 회로 이상 때문이었다고 발표했다. 월성 1호기 역시 설비 개선 당시 0.18g 이상 지진을 감지하면 원자로가 자동으로 멈추는 '지진 자동 정지 설비'를 추가했다.


#월성원전#월성1호기#방폐장#후쿠시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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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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