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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사회학은 스마트폰에 잡힌 우리 사회의 보편화된 인식이나 현상을 다루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길거리에 내걸린, 성격이 전혀 다른 플래카드 석 장
길거리에 내걸린, 성격이 전혀 다른 플래카드 석 장 ⓒ 송준호

막걸리 자리에서 술김에 '박통' 비판하는 소리 몇 마디 도란거렸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겪은 이들이 흔했단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이 딱 벌어지는 시절이 있었다.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몇 장의 플래카드가 그 시절을 새삼 떠오르게 했다.

맨 위에 걸린 '이적망발 정치사제 북조선이 천국이다!!'부터 보자. 이건 우리 '자유 대한민국'의 안보와 안위가 심히 염려된 분들께서 목청을 높이시는 것이리라. 평시조의 기본 음수율 중 하나이자 표어에서 가장 즐겨 사용해 온 4.4조의 호흡을 절묘하리만큼 잘 맞추어 썼다.

거기에 적힌 '이적'은 어느 가수의 이름이 아니고 당연히 한자말 '이적(利敵)'이겠다. 그 '적'이 어느 집단을 가리키는지는 지나가는 강아지도 알 테니, 불문가지다. '망발(妄發)'은 '망령처럼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나 하는 말이나 행동'을 뜻한다.

'사제(司祭)'는 '천주교의 주교나 신부'의 통칭으로, 국정원 선거개입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을 지목한 말이겠다. 그런데 '북조선'은 북한 정권이나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 아닌가.

그 아래, '정부는 위헌적인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철회하라!'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게 된 배경은 또 이렇다.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이 반정부 조직을 구성해서 체제전복을 모의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국무회의는 즉각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 바람에 진보개혁 성향의 통합진보당은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위기에 놓였다. 그건 명백한 정당 탄압이고 권력남용이다. 그러니 당장 그만두라. 그런데….

위 아래로 나란히 걸린 이 두 장의 플래카드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라. 한쪽에서는 이 땅의 모든 '종북세력'은 씨를 말려야 한다며 핏대를 올리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해하지 말고 우리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중단하라고 항변하고 있다.

겉으로는 각기 자기주장을 펴고 있는 듯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한쪽에서는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고, 다른 한쪽에서는 거기에 '존말'로 항변하는 격이다. '항변'의 목소리가 하필 백기를 들고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그 아래 걸린 '교차로 꼬리물기! 끼어들기! 캠코더 단속'에 의해 '길거리 언론과 사상의 자유' 완결편이 제모습을 드러낸다. 

지향하는 가치가 서로 상반된 석 장의 플래카드를 도시의 대로변에 이처럼 자유롭게 걸 수 있는 우리나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참 좋은 나라일까? 우리는 지금, 적어도 플래카드 하나만 놓고 보면 헌법으로 정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도 좋은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아, 분명한 건 또 있다. SNS 활용도가 가장 높은 세계 일등 IT국가이므로, IT야말로 우리의 살길이고 나아갈 방향이므로, 그걸 노골적이고 조직적으로 악용해서 국가의 명운이 걸린 대통령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해도, 더구나 그게 아무리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 해도, 재판에 회부되는 일 또한 이 땅에서는…. (<개콘> 식으로) "있기, 없기?"


#정치 사제#이적단체#캠코더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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