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건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해낼 수 있고..."안철수 새정치연합과의 신당 창당 상황을 의원들에게 보고하던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이 대목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의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3일 오전 의총에 참석했던 의원 대다수가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로 '통합'을 환영했다. 자발적 박수로 표현된 의원들의 지지 표명에 김 대표가 울컥한 감정을 잠시 고르며 침묵했다.
다시 말을 이은 김 대표는 "우리는 해낼 수 있고 반드시 해낼 것입니다, 우리는 국민과 대한민국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힘을 모아 해냅시다"라고 말을 마쳤다. 이날 의총에서 김 대표는 총 네 번의 박수 세례를 받았다.
딱 한 달 전인 지난달 3일, 상황은 정반대였다. 이날 김 대표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골자로 하는 당 혁신안을 발표했다. 당 대표로서 야심 차게 준비한 개혁안이었지만, 당 내 논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혁신을 내세우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등의 이유로 반발을 샀다.
이후 마련된 의총에서 김 대표는 "내가 당 대표로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충분히 소통하면서 하나로 뭉쳐 6·4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자, 고맙다"고 말했다. 박수가 나올 대목이었지만 잠잠했다. 그러다 한두 명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십여 명의 의원이 따라 박수를 쳤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 속에서는 '동조'의 뜻도 '지지'의 응원도 찾기 힘들었다.
그간 당 안팎에서 김 대표의 입지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대여 협상에서는 주도권을 쥐지 못했고 청와대의 일방적 외면에 속을 끓여야 했다. 당내 진보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더 좋은 미래'는 원내지도부 조기 교체를 요구하며 당의 혁신을 압박했다. 김 대표는 사면초가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임기 내내 '흔들리는, 영이 서지 않는 지도부'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가 6·4 지방선거까지 이어져 결국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김 대표의 정치 생명이 위태로울 거라는 전망까지 제기됐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김 대표는 '기초 선거 무공천·신당 창당'의 승부수를 던졌다. 이는 '김한길 리더십 위기 탈출'로 이어지고 있다.
"밤잠 안 자고서라도 숙제 풀어오는 저력 있어"
일단 공천폐지 약속 실천과 야권 대통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두 가지 성과는 '보완재'로서 작동하고 있다. 최대 3만 명에 달하는 민주당 소속 후보자들의 대거 탈당 사태가 예고됨에도 '야권 통합'이라는 대의명분으로 당원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불어 신당 창당을 계기로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과 제대로 한 판 승부를 벌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당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날 민주당 최고위와 의총에서는 '승리'에 들뜬 기대감이 곳곳에서 표출됐다.
김한길 대표 쪽 한 관계자는 "야당의 큰 물줄기를 낸 사건"이라며 "김 대표가 그동안 안철수라는 변수를 관리해 온 결과다, 이전부터 서로 상의해 왔고 김 대표와 안 의원 사이에 상당한 신뢰 관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표는 숙제가 생기면 밤잠을 안 자고라도 그 숙제를 풀고 오는 저력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 대표를 비토하던 분위기가 강했던 당내 기류에도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현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며 문재인 의원의 구원등판을 주장한 정청래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오만과 독선에 빠진 정권을 야권이 힘을 합쳐서 그 독주에 제동을 걸어달라는 범야권 지지자의 여망에 부응한 것"이라며 "작은 차이와 작은 이익을 뛰어넘는 대의적 관점의 통 큰 결단이었다"고 평했다.
친노계인 김현 의원 역시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김한길 대표가 박수받을 일을 했다, 의원들도 잘 된 일이라고 평하고 있다"며 "국민은 흩어지면 죽는다고 말하고 있지 않느냐, 야당이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김한길 비판론'에도 "일부에서 한 얘기고 난 동의하지 않았다"며 "(이번 건을 계기로) 잠잠해질 거다, 선거 앞두고 누가 적전분열하겠냐"고 내다봤다.
지도부의 혁신을 촉구해 온 '더 좋은 미래' 소속 홍익표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런 것이 당의 지도자나 대표가 해야 하는 일"이라며 "이거 하나 했다고 다른 모든 불만이 잠재워지진 않겠지만 큰 계기가 있으면 기존의 잘못은 덮이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표 리더십 평가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걷느냐에 달렸다"며 "통합이 블랙홀처럼 '대선 개입,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 등의 이슈를 삼켜서는 안 될 것이고, 우리만의 원칙을 드러내고 사회적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통합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내 진보그룹과 갈등할 가능성 있어실제 '신당 창당' 과정에서 김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양측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화학적 결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 김 대표의 몫이다. 이날 오전 박지원 의원은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5대 5 지분관계로 출발했지만, 안철수 신당은 그런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 못해 이것을 어떻게 조정하느냐, 경선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당원과 대의원 및 권리당원을 어떻게 조정할 거인가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될 것"이라며 "(갈등이) 크게 가진 않겠지만 화학적 결합에 상당히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 내의 화학적 결합도 과제다. 당내 세력 간 갈등 요소들이 내재해 있는 것. 중도를 표방해 온 새정치연합과 김 대표의 '우클릭' 움직임이 합쳐짐에 따라, 당내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측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홍익표 의원은 "노선 싸움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노선 논쟁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며 "그런 에너지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이끄느냐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 의원은 "결국 정책과 법안의 문제인데 이런저런 생각이 나올 수 있다"며 "당론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합리적 방식으로 풀면 된다,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이 정부와 맞서고 있는데 당 안에서의 차이가 얼마나 크겠냐"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