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오찬호 교수는 한 대학의 '인권과 평화' 강의 시간 때 2008년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투쟁을 다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하고 연대의 소중함을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한 경영학과 학생의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는 말에 그는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
그는 그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꼴통'으로 비판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다른 학생들도 대부분 그 발언에 공감한 것이다. 강의실은 곧 "너도 저렇게 생각하지?"라는 수군거림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이 사건은 오찬호 교수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쓴 계기가 됐다.
오찬호 교수는 이 책에서 20대들이 왜 '차별'에 찬성하게 됐는지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이른바 '자기계발' 열풍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는 실패를 '네 탓'으로 돌린다. 네가 실패했다면 그건 네가 덜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이는 누군가의 실패를 그의 게으름 탓이라고 여기게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인 것은 정규직 전체 파이가 터무니없이 작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덜 노력했기 때문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암시하는 미래는 음울하다. 대학생들이 점점 더 노동이슈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복지나 인권 문제에 대해 무신경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사회체제는 더 견고해질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의문이 든다. 지난해 12월 대학생들은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을 일으켰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던 철도 노동자들, 송전탑 반대 투쟁에 나선 밀양 주민들에 대해 대학생들은 연대를 표했다. 20대 중에는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지난 13일 오찬호 교수를 서강대 곤자가 커피숍에서 만났다.
"학생들이 기업 CEO처럼 사고한다"
정말 대부분의 학생이 비정규직 차별에 찬성할까? 오찬호 교수는 "그런 학생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고 답했다.
"작년에 청소노동자 문제나 '안녕들 하십니까' 같은 문제들이 있었다. 예전에는 그런 사건이 터지면, 물론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강의실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나쁜 대답이 '관심 없어요'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사건이 터지면 '쟤는 뭐 무슨 당 애 아냐?'라든가, '저런 식으로 스펙을 쌓으려고 하는 거 아냐?' 이런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노동, 복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비상식적으로 바라본다."그는 또 대학생들의 사회관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대학 학과가 줄어들고 경영학과 파이가 늘어난다. 인문학 과목이 줄어들고 영어 강의 같은 실용 과목이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이 이걸 당연하게 여긴다. 취업률 기준으로 학과 구조조정 하고, 기업이 이윤을 목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해고 노동자의 어려움을 얘기하려고 하면 '기업 입장에선 어쩔 수 없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보다 기업 CEO처럼 사고한다."그는 학생들에게서 벽을 느낀다고 했다. 노동 이슈 같은 경우 기본적인 대화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낙담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안녕들 하십니까'와 차별오찬호 교수는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에 대해서는 "좋은 현상이지만 과잉 해석하는 건 반대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20대를 중도, 우파, 좌파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을 우파나 중도에 있던 20대가 좌파로 이동했다고, 좌파의 파이가 늘어났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여기에 반대한다. 좌파가 더 강하게 눌리니까, 그만큼 더 강하게 반발이 일어난 것이라고 본다. '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까 뭔가 한 마디는 해야 되겠다'하는 현상이라는 거다. 오히려 그 현상 자체가 20대가 어떤 사회에 들어가 있는가를 역으로 보여주는 거다."'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반대 근거로 제시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그 현상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 걔네들은 뭐냐?'는 식으로.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나는 책에서 특정한 현상이 아니라 일반적인 경향을 얘기하고 싶었다. '안녕들 하십니까'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좌파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말하는 학생들은 중도 내지 우파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파이는 후자가 훨씬 크다. 두 번째로, 그 열풍에 참가했던 학생들도 차별에 찬성하게 되는 속도, 차별에 대한 강도 정도만 다를 뿐이지 자기계발 열풍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결국에는 차별의 대열에 들어설 것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다"실현 가능한 방법은 지속적인 문제제기
그렇다면 자기계발 열풍은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오찬호 교수는 "대학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인문학이 장려되면, 인간성에 대한 교육이 확장되면 노동자를 인사관리의 개념에서가 아니라 인권 개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감정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같은 것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대학이 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에 이미 기업 논리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오찬호 교수가 준비하고 있는 다음 책도 대학의 기업화에 관한 것이다. 그도 "대학이 변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면서도 다만 지속적인 문제제기에서 대안을 구했다.
"문제제기를 하다보면,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럼 여론이 형성될 것이고, 담론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사회가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기업이 입사원서에서 재산, 가족의 학력 등을 적는 게 문제가 돼서 없어졌던 것처럼 말이다.""손해 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그는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이 자본이 쳐 놓은 효율성, 편리성에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루하루 내가 좀 손해 본다는 느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편리성 효율성이란 개념으로 강요하는 게 굉장히 많다. 100m 앞에 스타벅스가 있고 500m 앞에 공정무역 커피가 있다고 해보자. 그 사이에도 커피숍이 10개 더 있다고 하자. 학생들은 스타벅스가 가깝고 편해서 좋을 것이다. 편리성에 따라 스타벅스를 선택하게 되면 현재 사회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프랜차이즈가 정복을 하고, 저쪽에 공정무역은 멀다는 이유로 아무도 안 알아주고. 우리가 자본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거부하게 되면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거에 익숙해져야 한다. 자본이 야기한 사회의 편리성에 대해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파리바게트가 편하고 뚜레쥬르가 편하니까 결국은 동네 빵집은 사라진다. 이건 빵집을 차릴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지는 거다. 빵집을 차리려면 대기업에 고용돼야 한다. 이런 사회가 좋은 사회는 아니라고 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