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바닥까지 박박 긁어 먹고 난 라씨 그릇은 던져서 깨뜨리는 게 인도의 전통이다. 그들은 흙으로 만든 그릇은 오염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주로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용한다. (바라나시)
바닥까지 박박 긁어 먹고 난 라씨 그릇은 던져서 깨뜨리는 게 인도의 전통이다. 그들은 흙으로 만든 그릇은 오염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주로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용한다. (바라나시) ⓒ 박경

게임에 푹 빠진 아들

친구의 아들이 게임에 푹 빠졌다. 이제 중3짜리인 녀석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게임을 하면서 설탕을 끼고 퍼먹는 버릇. 자못 걱정스러운 일이다. 녀석에게, 찌르고 쳐부수고 무찌르는 일은 설탕처럼 달콤하게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라자스탄 주의 조드뿌르에 갔을 때, 라씨(인도의 천연 요구르트) 가게를 찾았다. 유명한 맛집들이 마땅히 그러하듯 허름하고 탁자들이 다닥다닥 붙은 그런 곳이었다. 여행자들 이전에 동네에 입소문이 먼저 난 듯 인도인들만 바글바글했다.

우리 가족이 앉은 바로 옆에 한 인도인 가족이 있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가 넷. 막둥이의 뺨은 눈물 자국이 꼬질꼬질했다. 그러고 보니, 라씨를 사람 수대로 시킨 게 아니라 여섯이서 세 컵을 돌아가며 나누어 먹고 있었다. 특별한 날인가?  모처럼 온 가족이 나들이 나와 큰맘 먹고 라씨 가게에 들른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자라서 나중에 그 라씨 맛을 어떻게 기억할까? 가난했던 시절, 아비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주문한 라씨를 다투어 가며 먹던 맛은 아마도 따뜻한 유년의 추억으로 남겠지.

인도를 떠난 후, 라씨는 무슨 맛으로 기억될까

바라나시에서 일주일 머무는 동안, 우리 가족은 하루 한번 라씨 집을 찾았다. 달큰하고 걸쭉한 조드뿌르의 라씨보다 훨씬 상큼하고 세련된 맛이었다.

갠지스 강으로 이어지는 골목의 막바지 부근에 라씨 가게가 있었는데, 가게라고 해봤자 문도 테이블도 없는 소박한 곳이었다. 달랑 두 개 뿐인 긴 의자의 빈자리를 비집고 앉아 주인장이 라씨를 제조(?)하는 동안 골목 풍경을 구경하곤 했다.

맛난 라씨를 바닥까지 긁어 먹고 난 사람들은, 라씨 종지를 경쾌하게 던져서 깨뜨리곤 했다. 인도의 전통이란다. 인도인들은 흙으로 만든 그릇은 오염되었다고 생각한다. 

스카프를 두르고 선글라스로 멋을 부렸지만 항상 맨발인 주인장은 두 손바닥 사이에서 나무 공이자루를 비벼 굴려가며 라씨를 만들었다. 순두부 같은 플레인 요구르트를 떠서 넣고, 얼음덩어리를 깨부수어 농도를 맞추고, 사과나 파파야 바나나로 과일 맛을 더했다.

입구가 꽃받침처럼 벌어진 스테인리스 항아리 속이 들여다보이진 않았지만, 찰박찰박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적당한 농도의 라씨가 다 만들어진 거다. 주인장은 토기 그릇에 우윳빛 라씨를 붓고 붉은 석류알과 푸른 피스타치오 조각을 흩뿌리는 데코레이션도 잊지 않는다.

라씨를 듬뿍 떠서 그 새콤달콤하고 상큼한 맛을 음미하는 순간 들려오는 소리.

"람람 싸드야헤 람람 싸드야헤~ (라마신은 알고 계신다)."

주검이 지나가는 소리다. 시체를 어깨에 멘 상여꾼들이 외치는 소리다. 라씨 집은 바로, 화장터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라씨 집에 앉아, 라씨가 만들어지는 동안, 라씨를 먹는 동안, 너댓 번은 족히 죽음과 마주치게 된다.

생의 끝을 목도하면서 맛보았던 라씨. 바라나시를 떠나고 인도를 떠난 후, 라씨는 무슨 맛으로 기억이 될까? 화장터의 연기처럼 죽음의 냄새가 피어오르는 맛? 아니, 죽음이 새콤달콤 라씨 맛으로 기억될지도.

생의 마지막은 더 이상 텁텁하거나 끈적일 것도 없어 비릿했던 그간의 삶을 위로할지도.

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 한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델리→조드뿌르→아그라→카주라호→바라나시→사르나트→바라나시
→아우랑가바드(아잔타 석굴)→뭄바이

우리 가족의 여정은 이러했지만, 제 여행기는 여행의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친구에게 엽서 한 장 띄우는 마음으로 가볍게 씁니다.



#라씨#인도#인도여행#인도 수제 요구르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