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마을 무지개 다리 건너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조선 농부가
막 볼일을 보시고 나올 것 같은...
- 이상옥의 디카시 <뒷간>
경남 고성 척번정리 조동마을 입구에는 무지개 다리가 있다. 이 다리가 주목을 받는 것은 마을 주민들이 통나무·황토 등으로 거푸집 만들어 직접 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다리는 70여 년 전 일제 말 상리면사무소 이갑인 재무계장이 주도하여 마을주민들과 함께 만들었다.
조동마을 주민이 스스로 축조한 아치형 무지개 다리
조동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천은 징검다리와 통나무 등을 이용하여 건넜으나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 무지개 다리는 백제 무령왕릉, 석굴암 지붕부, 성문(城門) 등에 기본적으로 응용되어 있는 아치형 건축양식을 모방한 것이다. 다리 축조는 전문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조동마을 주민 30여 명이 인근 하천과 산에서 가져온 돌로 직접 만들어 1년여 동안 2번의 실패하고서야 완공하여 오늘에 이르러 고성의 명물로 자리한다.
자세히 보면 전문가가 축조한 것이 아님에도 그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돌을 아치형으로 물려서 하중을 견디게 만든 공법이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고성이 고향이지만, 조동마을 무지개 다리가 유명하다는 말만 듣고 궁금해 하던 차에 지난주 방학 끝 무렵에 찾아갔다. 그 명성에 비해서는 평범해 보이는 무지개 다리 가는 길목에는 '멸공'이라고 쓰인 농가창고가 보여 이채를 띄었다.
6·25전쟁 직후 이데올로기 대립이 정점으로 치달았을 때 '멸공'이라는 구호가 동네 마을마다 캐치프레즈가 되는 시절의 분위기가 지금도 조동마을 어귀에 흔적처럼 남아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여전히 반공, 멸공 같은 구호는 너무나 친숙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구호를 찾아보기도 힘든 터에 조동마을 농가창고에 흐린 글씨로 남아 있는 것이, 아직도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되지 못하고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일깨우는 듯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북, 지역, 계층간의 갈등 상존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세 모녀가 '공과금이 밀려 죄송하다는 쪽지'를 남기고 동반 자살한 뉴스가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고 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정말 선한 사람들이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런 사태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이웃을 돌아보고 서로 나누며 봉사하며 살아야 함을 일깨운다.
고성 조동마을의 무지개 다리는 그 형상이 진귀한 것도 있지만, 그것을 조성한 정신이 돋보이는 것이기에 자랑스러운 것이다. 면사무소에 근무하던 이갑인 재무계장 같은 분이 청백리가 아닌가 한다. 비록 고관은 아니고 말단 면사무소 직원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손수 다리를 놓는 그 정신이 오늘 따라 새삼 고귀하게 느껴진다.
조동 무지개 다리를 건너니 곧바로 농가주택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재래식 뒷간과 헛간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지개 다리 이상으로 그 농가주택에 관심이 갔다. 너무나 잘 단장된 뒷간, 헛간을 보고 놀랐다.
시골 고향집에나 보았던 그 재래식 뒷간과 헛간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집 주인인 농부는 들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주인 농부는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처럼 사실 것만 같다. 재래식 뒷간에 볼일을 보고는 그것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고 그 자연에서 다시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친환경 순환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것만 같다.
조동마을 무지개 다리만큼 아름다운 재래식 뒷간
조동마을 무지개 다리를 찾아갔다가 조선 농부의 마음을 본 셈이다. 조동마을 무지개 다리만큼 아름다운 조선의 농부가 살고 있을 것 같아 더욱 친근감이 가는 조동마을을 다음에는 좀더 자세하게 답사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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