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이 부드러워졌다. 한낮의 햇살은 따사롭기까지 하다. 할머니 앞에 놓인 쑥과 달래, 냉이, 봄동에서 봄내음이 묻어난다. 향긋하다. 불어오는 실바람도 상큼하다. 생선을 다듬던 할아버지가 움츠렸던 허리를 편다. 봄의 기운을 가슴 깊숙한 곳까지 호흡하는 것 같다.
지난달 25일 봄기운으로 꿈틀대는 장흥 대덕장의 모습이다. 대덕장은 전남 장흥군 대덕읍에 자리하고 있다. 대덕은 장흥군의 남부에 위치한 읍이다. 서쪽과 북쪽은 강진군과 접해 있다. 동으로는 바다 건너 고흥군 금산면에, 남쪽은 완도군 약산면과 고금면에 닿는다.
장터는 대덕읍사무소와 파출소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바닷가에 자리하는 시골장이 대부분 그렇듯이 대덕장도 어물전에서 시작된다. 어물전의 위세가 만만치 않다. 이 어물전을 휘어잡는 것은 키조개다. 장흥 특산으로 주산지인 수문마을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장터 입구를 막을 정도다. 주자돼 있는 트럭에도 가득 실려 있다.
'저렇게 많은 키조개를 다 팔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쇠고기랑 같이 구워먹으면 기똥 차다'는 상인의 말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아저씨가 지갑을 연다. 굴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남포마을 앞바다에서 한겨울 추위를 견디며 몸집을 부풀린 것이다. 장꾼의 표현대로 '징허게 맛있는 굴'이다. 말랑한 뽀얀 속살이 별미다.
장터는 건물 사이 좁은 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자유분방한 느낌 그대로다. 할머니들이 그 길을 따라 올망졸망 앉아 있다. 앞에는 어김없이 굴과 새조개, 꼬막이 놓여 있다. 깨끗한 바다와 갯벌, 다사로운 햇살이 함께 키워낸 것들이다.
"오메! 징헌 거. 괴기 좀 차지 말고 다녔으면 좋겄네." 밀려드는 사람들 탓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튀어 나온다. 장꾼들의 원성을 들으며 좁고 짧은 길을 비집고 나가자 제법 큰 장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큼지막한 장옥만 3동이다. 채소전과 싸전, 잡화전이 펼쳐져 있다.
장옥 아래에서 할머니 네댓 명이 화롯불을 둘러싸고 있다. 다른 장꾼들이 햇볕을 찾아 난장으로 나간 사이 화롯불 주변이 빈 덕분이다. 화로 위에는 가래떡과 고구마가 놓여 있다. 방금 가져 온 큼지막한 고추 포대는 뒷전이다.
"지금껏 두 근 팔았네. 쩌기 좋은 놈은 한 근에 6000원. 여그는 5000원 인디. 말만 잘하믄 4000원에도 줘. 잘 안 팔려. 그랑께 떡이나 구워 먹고 있제." 올해 7학년 6반이라는 이순애 할머니의 말이다.
대덕장의 명물이 또 있다. 오산마을 할머니들이 파는 갱엿이다. 600g 한 근에 5000원이다. 엿도 매끈하게 잘 빠져 있다. 할머니는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엿 한 조각씩 내민다.
"앙 껏도 안 치고, 쌀 허고 엿지름으로만 맹근 것이여. 사람한테 지장도 하나 없어. 나봐! 평생 묵었는디 아직 당뇨도 없어. 기침이 날 때 하늘수박에다 넣고 달여 마시면 좋아."오산마을 윤경애 할머니의 얘기다. 할머니는 시집 온 이후 엿 만들기를 시작했단다. 50년도 넘었단다. 이 엿판을 들고 대덕장과 관산장, 마량장, 회진장을 누비며 생활비를 벌고 자식들 학교도 다 보냈다고 했다.
"엿도 엄청 기술이 필요혀. 까딱 잘못하면 버린 당께. 생명은 엿지름하고 시간을 잘 맞추는 거여. 그람 이렇게 맛있고 말간 엿이 나와. 근디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단 것을 쳤다고 하더랑께. 얼매나 분하던지 100만 원을 걸자고 했네. 내가. 이기면 100만원 기부해 불라고."할머니의 엿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할머니는 손저울로 엿의 무게를 달았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자 어물전의 장꾼들이 하나 둘씩 짐을 싸기 시작한다. 키조개를 파는 아낙네들도 짐을 챙긴다. 채소전과 잡화전은 아직도 한창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