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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나는 녹색당 당원이 아니다. 하지만 녹색당의 유력한(?) 잠재적 당원이라고 공언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 여러 가지 과제들이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녹색당의 약진'을 제 1순위 바람으로 놓고 있다.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그게 한국 정치 발전의 보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수 양당으로 굳어진 정치 구도에 균열을 내고 무기력한 진보의 일신을 위해서는 '녹색당의 비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행복하려면, 녹색>은 녹색당의 가치와 이념, 비전에 대해 잘 해설해 놓은 책이다. 신입당원들을 위한 기본 교양 교재로도 좋고, 녹색당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녹색 정치의 내용을 알리는데 있어서도 손색이 없다. 이 책에서 하 위원장은 "반드시 녹색당이어야만 한다"고 했다. 오호~! 확신과 자신감, 좋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고민도 생겼다. 정말 녹색당이 '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녹색'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할 수 있나

행복하려면 녹색 좋은 삶, 다른 사회, 녹색 정치를 꿈꾸다
행복하려면 녹색좋은 삶, 다른 사회, 녹색 정치를 꿈꾸다 ⓒ 이매진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해 자살을 택한 실직자와 장애인,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아파트 옥상에 뛰어내린 엄마,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아버지를 죽이고 본인도 자살을 선택한 아들. 이 죽음들은 모두 부실한 사회안전망과 구멍뚤린 복지제도가 부른 '사회적 타살'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일차적인 책임은 '말로만 민생'을 떠들어내는 정치권에 있다.

그렇다고 정치를 떠나서는 해결할 수 없다.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정의와 도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가 바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녹색' 하면 환경보호, 대체 에너지 활용 혹은 친환경 먹거리 등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이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녹색을 '환경'이라는 프레임에만 가두는 편견이 녹색 정치가 경제, 노동 영역으로 뻗어나가는데 장애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녹색정치'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할 수 있나. 나는 이 물음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 녹색 정치가 대중화 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행복하려면, 녹색>에서는 충분히 그럴 단서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기본소득제'가 바로 그것이다.

기본소득제란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조건없이 지급되는 소득'이라는 이 개념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미드(James Meade)가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로 접어든 만큼, 기본 소득 없이는 완전 고용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제임스 미드에 따르면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전체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121쪽)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통념에 익숙한 우리에게 기본소득제는 생소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2013년 12만 6000명의 국민이 서명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법안이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는 스위스의 사례만 보더라도, 기본소득제를 허황된 망상이라고만 볼 수 없다.

물론 여러가지 쟁점은 있다. 국가가 노는 사람에게까지 돈을 줘야 하는가, 돈만 받고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라는 윤리적인 문제부터 실제로 기본소득제를 시행했을 경우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현실가능성 문제까지 토론하고 답을 찾아야 할 것들이 산적하다.

나아가 기본소득제가 도입된다면 '경제성장을 통한 분배'를 원리로 하는 기존 복지제도의 패러다임 변화도 불가피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행 복지 제도를 보편적 복지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조차 강한 저항에 부딪치기 일쑤인 한국적 현실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기본소득제가 시행되고 있었다면 세 모녀가 과연 자살을 선택했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말처럼 기본소득을 인간이 사회구성원으로써 마땅히 받아야 할 '배당금'으로 상상한다면 억울하고 불행한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민주노동당이 기득권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부유세'라는 정책 히트 상품을 내놓았듯이, 녹색당이 '기본소득제'를 쟁점화하는 노력을 더 적극적으로 펼친다면 어떨까.

'성장주의'와 단절하고 '녹색'으로 세상을 바꿔야

'기본소득제'를 헛된 유토피아적 상상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데는 화석연료 시대의 종언과 성장의 종말을 목전에 두고 문명사적 대전환이 불가피하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유한하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풍요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성장은 한계에 도달했다.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누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확립하지 않으면, 극단적인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인류는 공멸의 길로 빠질 공산이 크다.

경제 민주주의 없는 정치 민주주의란 공염불에 불과하다. '성장'에서 '지속가능성'으로의 전환의 키워드는 '녹색'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성장주의'와의 단절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한다. 생태위기와 경제위기는 모두 무분별한 성장이 가져 온 비극이다. 하 위원장은 "어떤 사람들은 기후변화니 뭐니 하는 얘기가 배부른 소리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배부른 사람들이다. 생태 위기의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약한 사람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환경은 인권의 문제이고, 정의의 문제"(68쪽)라고 지적한다.

생태 위기 문제는 무제한적인 경제 성장을 추구해 온 결과다. 이것이 지구를 희생시켜왔다면 그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기는 했나 하는 의문을 가져볼 만하다. 그러나 무분별한 경제 성장은 생태 위기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도 심화시켜 왔다...(중략)...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생태적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모두 극복해 나가자는 것이다. 그것이 지구도 구하고, 세상이 좀 더 정의로워지고,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렇게 바꿔가는 것을 나는 '녹색 전환'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95~98쪽)

경제민주화는 탈원전, 탈토건, 무분별한 경제 개방 중단, 농업 살리기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재정의돼야 한다 국가가 지향하는 경제의 모습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더는 '재벌 대기업', 수출중심의 경제로는 행복도 없고 미래도 없다. 진정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는 농업을 살리고 협동조합 같은 풀뿌리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토건 경제와 원전에서 벌서나야 한다. 이것이 진짜 경제 민주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143쪽)

자, 이제 마지막 물음. 그렇다면 '녹색'은 기존의 진보와 무엇이 다른가? 하 위원장은 "태양과 바람, 자연의 문명, 생명 평화와 공생 협동, 다양성 존중에 기반을 둔 문명을 전환하지 않으면 지금의 문제를 풀 수 없다"며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이 아니라 20, 30년 뒤를 바라보는 정치, 큰 전환을 해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진 대안적 정치세력이라고 말한다.

이는 기존의 진보가 '성장의 유혹'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을 전제로 한다. 진보진영이 성장의 문제에 대한 입장 정리를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음은 당연하거니와, 진영 안에서의 토론과 성찰이 대립과 분열이 아니라 대안 정치세력을 숙성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녹색당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행복하려면, 녹색 - 좋은 삶, 다른 사회, 녹색 정치를 꿈꾸다

하승수.서형원 지음, 이매진(2014)


#녹색정치#녹색전환#녹색당#성장주의#기본소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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