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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복이 쓴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 겉표지
정수복이 쓴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 겉표지 ⓒ 로도스
책 내용을 일일이 살펴보지 않고 글쓴이만 보고 책을 골라도 후회하지 않을 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제게는 <책에 대한 7가지 질문>이라는 책이 꼭 그렇습니다. 이 책은 사회학자 정수복씨가 책에 대해 쓴 두 번째 책입니다. 저자가 책에 대한 일곱 가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이에 답합니다.

그런데 책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이 놀랍습니다. 그 질문이란 바로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입니다. 저자는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로 '책 중독'의 위험성을 꼽습니다. "책 중독에 걸린 사람은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책에 고스란히 헌납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여러 분도 '책을 읽는 시간이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해본 적 있나요? '어떤 측면에서 독서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는 기회를 날려버린다'는 놀라운 발상 때문에 첫 페이지부터 이 책에 확 끌렸습니다.

"책 중독자들은 글자로 만든 술을 마시고 문자로 제조한 담배를 피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문자의 숲을 하염없이 헤매느라 소중한 인생을 허비한다."(본문 중에서)

솔직히 말하면 저는 대한민국 국민 평균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책을 읽는 게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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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치열한 삶의 현장을 떠난 '백면서생'의 삶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덮을 때 삶이 열린다"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 구절도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독서의 위험'은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자기 인생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어설픈 지식인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책깨나 읽은 사람들 중에는 아는 척하기에 바쁜 사이비 지식인이 많다. 책을 어설프게 많이 읽은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자신보다 지적으로 열등한 사람으로 간주하여 자신이 지금껏 책을 읽어서 알게 된 정보나 지식, 가치나 관념을 가르치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본문 중에서)

마치 저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 섬뜩했습니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책에서 읽은 남의 생각을 마치 내 생각처럼 떠들면서 지적 허세를 부리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책만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백면서생'의 위험을 지적하면서 사르트르의 예를 듭니다. 그리곤 현실 세계보다 책 속에 빠져드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책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는 영성의 고갈과 자연으로부터 소외를 주의하라고 경고합니다.

"책 읽기는 가상의 현실이고 독서는 타인의 체험을 통한 간접체험이다. 그러나 나의 삶은 지금 여기서 진행되고 있고 나의 삶의 핵심은 나의 직접체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독서라는 간접체험에 빠져들어 삶이라는 직접 체험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본문 중에서)

책 읽기는 직접 체험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지는 간접 경험의 세계라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간접 경험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풍부한 직접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상과 자연을 만나고 국내외를 다니면서 세상과 맞딱뜨리는 직접 경험을 넓혀야 제대로 된 독서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책 서두에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를 들던 저자는 이어 '책 읽기의 확장'을 이야기합니다.

"꼭 문자로 된 종이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 독서가 아니다. 삼라만상이 다 문자요, 책이다. 삶이 곧 독서다."(본문 중에서)

직접 경험을 통한 세상 읽기와 책 읽기라고 하는 간접 경험의 세계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책 읽기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을 것인지 아니면 책 읽기를 그만둘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며 한 발 물러섭니다. 왜냐하면 책 읽기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그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삼라만상이 다 문자요, 책이다

책 중독의 위험성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읽습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지식욕'에서 비롯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이 누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하는 지식욕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정약용·장석주·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지식인들 모두 '세상을 알고 싶은 욕망' 때문에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저자는 책을 '지식의 원천' '즐거움의 원천'이라고 설파합니다. 책 읽기 자체에서 얻는 즐거움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독서를 즐긴다는 것이지요. 또 저자는 책이 삶의 깊이를 더해주고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책을 읽는 일은 세상의 이치와 의미를 깨닫고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인격의 완성을 추구하는 숭고한 행위이기도 하다." (본문 중에서)

독서를 통해 지식을 넘어 인생을 사는 지혜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저자는 책이 "인류가 경험하고 축적한 지식과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친구이자 스승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그뿐인가요. 책은 창의성의 원천이며, 인생의 길 찾기를 돕는 훌륭한 나침반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책 읽기를 통해 치유를 경험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책 읽기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기도 합니다.

"책을 쓰는 사람은 책을 읽을 미지의 사람의 마음과 만나기 위해서 책상 앞에 앉아 정성스레 편지를 쓰는 사람이고 책을 읽는 사람은 낯선 사람에게서 날아온 마음의 편지를 떨리는 마음으로 읽는 사람이다." (본문 중에서)

책은 영혼과 영혼이 만나 매개체이며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도구라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런 까닭으로 책 한 권이 어떤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지요.

책 읽는 습관은 아버지로부터 전해진다

저자의 세 번째 질문은 '책 읽는 습관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입니다. 그는 책을 통해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어머니의 책 읽어주기가 중요하지만 아이가 조금 크면 아버지의 책 읽는 습관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중략) 그 옛날 정약용의 아버지 정재원이 그러 아버지였다. 그는 남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어려서부터 아들을 자기 곁에 앉히고 열심을 글을 가르쳤다."(본문 중에서)

이 책에는 정약용을 비롯해 아버지로부터 책 읽는 습관을 물려받은 지식인들의 사례가 간략하게 소개돼 있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책 읽는 습관은 엄마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에는 초등학교 시절,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 시절, 성인이 됐을 때로 나누어 독서 습관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담겨있습니다. 자발성과 자율성 키우기, 호기심과 탐구심 기르기, 상상력과 창의력·분석력을 키우는 독서 습관이 소개돼 있습니다.

네 번째 질문은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입니다. 그중 인상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좋은 책을 고르는 법입니다.

"처음 만나는 책이 어떤 책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제목을 음미해보고 책의 앞날개에 적혀 있는 저자 소개를 보고, 책 표지 윗면에 실린 짧고 간명한 책 소개를 읽어본다. 그래서 그 책에 관심이 생기면 목차를 살펴보고 서문을 읽고 책 전체를 후루룩 훑어본 다음 결론을 읽고 색인이 있으면 색인을 보고 참고 문헌이 있으면 참고 문헌을 훑어보기도 한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목차는 책이라는 현실을 표현하는 지도와 같기 때문에" 목차를 통해 책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가장 잘 요약해놓은 글은 서문에 소개하고 있는 '독자 권리 장전'입니다. 저자는 권장도서 목록이나 베스트셀러 등에 치우치지 않고 항성 같은 책을 골라 읽으면서도 억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독서를 강조합니다.

정수복의 독자 권리 장전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책을 읽을 권리
3. 아무 책이나 읽을 수 있는 권리
4.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
5. 어디에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
6.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을 권리
7. 책을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을 수 있는 권리
8. 책의 아무 곳이나 펴서 읽을 수 있는 권리
9. 원하는 책을 다시 읽을 권리
10. 다른 사람들이 다 읽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
11. 권위 있는 기관의 권장도서 목록을 무시할 수 있는 권리
12. 책에 대한 정부, 학교, 부모의 검열에 저항할 권리
13. 책의 즐거움에 탐닉할 수 있는 권리
14. 반쪽 독서를 할 수 있는 권리
15.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6. 다른 일을 하면서 동시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
17. 밑줄 긋고 메모하며 읽은 책을 빌려주지 않을 권리
18. 읽은 책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을 권리
19. 당장 읽지 않을 책을 미리 사둘 수 있는 권리
20. 읽은 책과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책을 쓸 권리

이 권리장전의 내용과 함께 중요하게 새겨야 할 것은 고전에 대한 저자의 견해입니다.

"걸작과 명저 가운데서도 세월의 흐름을 견디어 살아남은 책, 여러 세대에 걸쳐서 끊임없이 읽히는 책, 최소한 몇십 년, 길게는 몇백 년의 시간 동안 계속 읽히는 장기간의 스테디셀러가 고전이다."(본문 중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은 새로 나온 책이 오래된 고전을 폐기하지 않는다. 오래된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전이란 새로운 해석을 통한 새로운 사상의 원천이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특히 고전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언급하고 인용하지만, 정작 고전을 제대로 읽지 않고 해설서나 2차 저작물을 읽은 뒤 그 책을 읽은 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최고 수준의 사고를 최고 수준의 독자를 위해 쓴 책... 고전

"고전이란 저자가 오른 최고 수준의 사고를 최고 수준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이기 때문에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지만, "시대의 전후를 꿰뚫는 역사의식과 인생의 명함을 통찰하는 지성의 힘"이 담긴 책입니다.

저자는 "고전은 산맥을 타고 넘으면서 저 아래쪽의 경치를 바라보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산봉우리에 올라 넓은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는 의미겠지요. 또 "고전은 오래된 새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발견으로 우리를 다시 깨우칠 수 있게 합니다.

저자는 책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을 통해 사람들이 제목은 기억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읽지 않은 동서양의 고전 수십 권을 추천합니다.

다섯 번째 주제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입니다. 책을 읽는 다양한 방법들과 목적에 따라서 다독·속독·정독을 해야 하는 각각의 경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에 남는 것은 '읽기만 하지 말고 새기고 생각하라' '낭독의 장점'이었습니다. 옛 선비들은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그치지 않고 몸고 마음을 정화시켰다"고 합니다.

또 저자는 "낭독은 시각과 청각,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활용"하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저자는 프랑스와 영국의 '낭독 공연'을 보고 느낀 감동을 소개하면서 여럿이 모여 소리 내어 읽는 경험을 통해 낭독의 재발견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아울러 저자는 반복 독서의 장점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허접한 책을 여러 권 읽는 것보다 중요한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감동적이면서 삶에 깊은 영향을 주는 책들은 여러 번 다시 읽는 것이 생각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남은 질문은 '평생 얼만 큼의 책을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책은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답이 궁금하신가요? 마지막 두 가지 질문의 답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책을 통해 직접 그 답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질문의 답이 아주 흥미롭다는 힌트를 드리는 것으로 정수복이 쓴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에 관한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

정수복 지음, 로도스(2013)


#책#독서#정수복#책 읽기#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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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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