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의혹에 대해 국가정보원의 공식 입장은 "매우 당혹스럽다"이다. 아직까지는 '위조일 줄은 몰랐다'는 얘기다. 과연 몰랐을까? 국정원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몰랐다'는 해명이 말이 안되는 이유는 이미 위조되지 않은 자료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유우성씨 변호인 측이 법정에 제출한 것과 같은 내용의 출입경 기록(출-입-입-입)을 이미 확보해놓고도, 굳이 위조가 의심되는 출입경 기록(출-입-출-입)을 구해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이미 정상적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6일 항소심 공판에서 변호인 측은 옌볜조선족자치주 공안국에서 발급받아온 유씨의 출입경 기록(4번 문서)을 제시했다. 검찰이 국정원으로부터 받아서 제출한 '출-입-출-입' 기록(1번 문서)과는 상반되는 '출-입-입-입' 내용이었다. 또 변호인 측은 출입경 기록이 '출-입-입-입'으로 기재된 것은 중국 당국의 출입경 기록 관리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때 발생한 오류 때문에 뒤의 '입-입'이 잘못 출력됐다는 내용의 싼허변방검사참 발급 '정황설명'(5번 문서)까지 제출했다.
이에 검사 측은 '변호인 측과 같은 내용의 출입경 기록을 우리도 입수했지만, 공식 외교경로를 통해 확보해 제출한 출-입-출-입 내용의 출입경 기록이 법적 효력이 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측이 제시한 출-입-입-입 기록을 이미 봤다고 인정한 것이다.
유씨의 변호인들도 이같은 정황을 밝혔다. 지난해 1월 국정원은 유씨를 수사하면서 출-입-출-입이 아니라 출-입-입-입 기록을 들이대며 밀입북 여부를 추궁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정원과 검찰이 이미 오래전부터, 최소한 지난해 1월 이전부터 출-입-입-입이라고 정상적으로 기록된 문서를 확보했었다는 사실은 여러경로로 확인된다. 그런데도 굳이 국정원과 검찰은 지난해 11월 출-입-출-입 문서를 구해와 법정에 제출했다.
곳곳에서 확인되는 강렬한 '조작의 의지'다른 증거들을 은닉하고 조작한 정황들도 국정원이 출입경 기록 등을 위조할 의지가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국정원은 유씨의 노트북에서 디지털 사진을 확보했고, 검찰은 이 사진이 2012년 1월 북한에 밀입북했다는 증거라며 종이에 인쇄해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이 국정원과 같은 방식으로 디지털 포렌식을 실시해 증거 사진들의 삽입정보(메타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이 사진들은 중국 옌볜에서 찍은 걸로 나타났다.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GPS 정보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또 같은 시기 검찰과 국정원이 유씨가 북한에 있었다고 한 시점에 유씨는 중국에서 전화통화를 한 기록이 있었다. 검찰과 국정원은 이를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가 변호인 측이 이를 지적하고 나서자 유씨 북한체류기간을 유씨의 통화기록이 없는 날로 바꾸어서 공소장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 모든 상황이 '몰랐다'는 해명에 부합하려면,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에 GPS 정보가 기록되는 줄 몰랐다'거나 '전화통화 기록을 구해놓고 보지 않았다'고 해명해야 한다. 또 내용이 상반되는 두 자료(출-입-입-입 vs 출-입-출-입)가 입수됐는데, 어느 문서가 진짜인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소리가 된다. 만약 그렇다면, 국가정보기관의 자질로서 더 큰 문제다.
상식적으로 '몰랐다'보다 '알고 그랬다'가 더 자연스럽다. 검찰 조사 직후 자살을 시도한 김아무개씨는 유서에 국정원을 '국조원', 즉 국가조작원이라 적었다. 조작의 주체가 국정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국정원도 어떻게 구한 문건인지 알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김씨는 가족에게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 원"을 받으라고도 했다. 국정원은 김씨가 조작해서 제출한 3번 문서(유가강의 출입경기록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의 대가로 지급한 돈은 700만원이고, 1000만원이라는 '가짜 서류'는 다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문서 하나에 700만 원도 매우 고가다. 이는 '범죄행위에 따른 위험 수당'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