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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첫 두 달, 1월과 2월은 어떻게 지냈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작년부터 엄마가 안 가면 저희들끼리 아빠가 사는 곳으로 가겠다는 두 딸의 엄포가 현실이 되고, 엄마는 아빠가 있는 곳으로부터 더 멀리 광주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작년 초 두 딸들과의 약속대로 승진을 하고, 북쪽으로 올라가기만을 고대하던 바람은 반쪽만 이루어졌습니다. 엄마는 승진은 했지만, 아빠와는 더 멀어진 남쪽으로 발령을 받아 반쪽만 이루어진 꿈과 반쪽의 현실을 살며 그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그 두 달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3월의 매일매일 통화만 할 수 있는 주중 짧은 대화시간에 아이들은 전화기 저 쪽에서 엄마를 긴장 시킵니다.

"엄마, 도대체 언제 회사 그만 두는 거예요?"
"어디까지 승진하면 그만둘 수 있어요?" 

이 말이 나오면 엄마는 은근스레 바쁜 일이 있는 척, 누가 찾는 척 얼버무리며 통화를 마무리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아이 정말 그만 둬, 말어?'를 스스로에게 수차례 물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육아휴직을 하나, 때려쳐야 하나, 아님 버티나를 고민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필이면 주말부부로 상경해야 하는 금요일 날 전남 여수의 작은 섬에 출장갈 일이 생겼습니다. 광주에서 여수, 여수에서 배 타고 섬, 그리고 다시 경기도까지 올라가야 하는 전국일주 일정에 반쯤은 골도 나고 심기도 불편해졌습니다. 그래서 정말 아무 생각없이 출장을 갔습니다. 맘속엔 '아이, 이느무 회사 정말 때려쳐 버려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말입니다.

여수에서 배 타고 40여 분, 개도라는 섬이었습니다. 그냥 외지인들의 눈에는 여느 섬과 다를 것이 없이 조용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곳. 주말부부로 상경하는 금요일만 손꼽아 기다리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리 예뻐 보이지도 않는 섬이었습니다.(사실은 무척이나 예쁜 섬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출장지였던 그곳은 올 봄 심각한 가뭄 속에 마실 물조차 부족해 주민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농업용으로 쓰이는 관개용수까지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배가 들어가자마자 물을 기다리시던 어르신들은 서둘러 물박스를 트럭에 옮기셨습니다. 

 물을 트럭에 옮기시는 어르신들
물을 트럭에 옮기시는 어르신들 ⓒ dong3247

그리고는 저희들에게는 말라버린 식수원, 저수지를 꼭 보고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물을 다 옮기고는, 섬도 한 번 둘러 볼겸 식수원을 찾았습니다. 작은 섬 산 중턱을 막아 만들어 놓은 작은 저수지, 식수원을 찾아 구비구비 길을 오르고 그 안에 거의 다 말라 버려 정말로 개미오줌만큼이나 적은 물을 담은 저수지를 보았습니다.

   심각한 봄가뭄에 거의 다 말라버린 식수원, 저수지입니다.
심각한 봄가뭄에 거의 다 말라버린 식수원, 저수지입니다. ⓒ dong3247

가뭄이 심각하구나를 느끼며 돌아내려오는 길에 저는 보지 말야아 할 것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집집마다 놓여져 있는 박스!

 개도 섬집앞 박스가 보입니다.
개도 섬집앞 박스가 보입니다. ⓒ dong3247

차에서 내려 보니, 엄마가 육지에서 싣고 온 물박스였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박스마다 서로 다른 이름 석 자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어머나... 혹여나 한 집에 더 가면 어르신들 노하신다고 하나씩 하나씩 이름 적어 집앞에 놓고가신 이장님들의 정성과 이 봄,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조금은 가시게 해 줄 작은 물박스를 보고 엄마는 그냥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박스위에 이름 석자가 보입니다.
박스위에 이름 석자가 보입니다. ⓒ dong3247

그 물박스 때문입니다.

젠장, 언제 그만둘 거냐는 아이들의 협박과 끝이 보이지 않는 주말부부 생활, 그리고 4시간 이상 장거리이동 등 회사를 때려칠 온갖 핑계꺼리들을 하나 둘씩 모으며 언제 터트리나 고민하던 엄마, 하필이면 그 때 그 섬에 들어갔다 본 그 박스 때문에 입사 10여 년이 넘어 다시금 회사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회사 때려칠 생각을 접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그 때 그 섬에 들어가서 말입니다.

엄마는 또 아이들에게 전화로 이런 얘기를 듣습니다.

"엄마, 도대체 언제 회사 그만 둘 거냐니까요~~??"  


#맞벌이#주말부부 #가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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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중한 이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쓰며 멋지게 늙어가기를 꿈꾸는 직장인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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