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를 재현한 지다이무라 상가마을에도(江戶)시대를 재현한 민속촌이 노보리베츠 다테 지다이무라(伊達 時代村)다. 일본 사람들은 에도시대를 다양한 문화가 번창한 황금기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의 시대정신과 생활상을 보여주고자 학습 문화 공간 또는 테마 파크 개념으로 시대촌(時代村)을 만든 것이다.
지다이무라 입구에는 정문인 오오테몬(大手門)이 있다. 문의 양쪽에는 에도시대 도호쿠(東北) 지방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와 그의 오른팔이었던 가타쿠라 고쥬로(片倉小十郞) 상이 서 있다.
그리고 문에는 에도시대 무사 복장을 한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 이들 무사는 실제 문을 지킨다기보다는, 관광객을 안내하고 기념 촬영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입장권과 안내 팜플렛을 받아 안으로 들어간다. 입장료가 단체의 경우 1인당 2,500¥이니 싼 편은 아니다.
우리는 시대촌 내부를 구경하고, 두 가지 공연을 볼 예정이다. 하나는 닌자 가스미 저택에서 벌어지는 닌자(忍者)쇼고, 다른 하나는 일본 전통문화극장에서 벌어지는 오이란(花魁, おいらん)쇼다.
닌자는 가마쿠라(鎌倉)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일본의 영주인 다이묘(大名)에게 봉사하던 무사를 말한다. 이들 닌자는 첩보, 파괴, 침투, 암살 활동에 종사했다. 또 용병 개념으로 필요할 때마다 고용되는 떠돌이 닌자도 존재했다.
오이란은 기생(妓生), 유녀(遊女)의 다른 표현으로 18세기 중반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오이란은 기생들 사이에서 맏언니로 불리는 최고위급 기생을 말한다. 여기서 최고라는 것은 리더십과 기예 양면에서 가장 뛰어남을 의미한다.
나는 안내 팜플렛에 나온 내부 지도를 보면서 상가 마을로 이동한다. 공연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상가를 자세히 살펴볼 여유는 없다. 그렇지만 에도시대 상가와 학교, 사료관 등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상가 마을은 길이고 지붕이고 온통 눈이 덮여 있다. 길 양쪽으로 학교가 있는데, 문이 닫혔다. 닌자 의상을 대여하는 우츠로이관도 문을 닫았다. 추운 겨울이라 그런 모양이다.
나는 센베이 과자를 파는 호라이야(寶來屋)에 잠깐 들른다. 그리고 닌자 자료관과 가타쿠라 사료관을 들여다본다. 닌자 자료관에는 닌자들이 사용하던 칼과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가타쿠라 사료관은 가타쿠라의 후손에 의해 이곳 노보리베츠가 개척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연표와 도표,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한 실물상 등이 인상적이다. 상가 끝에는 식당인 만푸쿠테이(滿腹亭)가 있어 일식의 기본인 소바와 우동 등을 먹을 수도 있다.
칼싸움이 난무하는 닌자 이야기
상가를 지난 우리는 시간에 맞춰 닌자 가스미 저택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닌자쇼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공연장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식으로 가장 낮은 곳에 무대가 있다. 그렇지만 무대의 일부가 객석까지 연결되어 배우와 관객이 교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천장이 높아 닌자가 줄을 타고 움직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다. 공연장에 100명 정도의 관광객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바로 공연이 시작된다.
어둠 속에서 무사 복장을 한 사회자가 나와 닌자쇼의 개요를 설명한다. 때는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바쿠후간 전투가 한창이던 1615년 여름이다. 다테 마사무네의 가신이던 가타쿠라 고쥬로 휘하의 닌자부대 소속인 신베에(新兵衛)는 오사카 마을에 잠복하여 적의 동태를 살피는 쿠사(草) 닌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때 사루토비 사스케(猿飛佐助)라는 젊은 닌자가 찾아본다. 그는 적장인 사나다 유키무라(眞田幸村)의 심복이었다.
사스케가 위험을 무릅쓰고 다테 가문의 닌자 저택을 찾아온 것은 주군의 서찰을 가타쿠라에게 전하기 위함이었다. 서찰에는 바쿠후군과의 싸움에서 진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딸 오우메를 부탁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도쿠가와 수하의 닌자 두 사람이 신베에 저택을 공격한다. 이에 신베에와 사스케는 힘을 합쳐 이들 닌자를 격퇴한다. 그리고는 각자의 주군에 충성하기 위해 각자의 길을 간다.
한마디로 의리와 인정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그렇지만 실제 공연은 그러한 의리와 인정을 보여주기보다 칼싸움에 치중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과 역동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위트와 유머를 섞어 관객을 즐겁게 한다. 공연시간도 20분 정도로 짧아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극이나 쇼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한계도 있다. 전체적으로 한 편의 활극을 보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이샤 오이란 이야기
닌자쇼 공연이 끝나자 우리는 바로 이웃하고 있는 일본 전통문화극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에서 공연되는 오이란쇼를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극장의 대문이 빨간색이다. 문에서는 정말 어린 기생이 우릴 맞는다. 안으로 들어가자 홍등가 답게 붉은색 막이 무대를 가리고 있다. 관광객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에도식 복장에 피에로 분장을 한 사회자가 나와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좌중을 한바탕 웃긴다.
그리고는 남자 주인공인 오다이진사마(大金持)를 뽑는다. 그녀는 먼저 희망자 추천을 받는다. 한국팀과 대만팀에서 하나씩 지원자가 나와 이들이 가위바위보로 사마를 결정한다. 다행이 한국 사람이 이겨 최사마가 되어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최사마는 분장을 위해 잠시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러자 사회자가 오이란쇼의 개요를 설명한다.
이 쇼는 오다이진사마와 오이란 사이에 벌어지는 오자시키(お座敷) 놀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오자시키 유희란 오이란이 보여주는 화려하고 차원 높은 문화적인 오락이다. 이 쇼에서 오다이진사마는 오이란의 마을을 끌기 위해 3번이나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추파를 던진다. 이 3단계 과정을 거치면서 오이란은 마음을 열고, 오다이진사마의 수청을 들게 된다.
드디어 막이 열리고 카무라(禿)급의 소녀 기생이 오이란 요시노 타유우(吉野太夫)를 데리고 무대로 나온다. 소녀 기생이 춤을 추는데 오이란은 아직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잠시 후 오이란이 소녀 기생과 함께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가벼운 몸짓으로 관객에게 인사한다. 조금한 거만한 듯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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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란쇼 오이란이 오다이진사마를 위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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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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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사회를 봤던 피에로가 에도시대 거부로 분장한 최사마를 데리고 무대 오른쪽에 나타난다. 그리고는 최사마와 오이란 사이의 밀고 당기기가 시작된다. 처음 만남에서 최사마는 오이란을 그저 바라만 본다.
두 번째 만남에서 사마는 말로서 오이란에게 접근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에서는 몸으로 오이란에게 호소한다. 결국 오이란은 이런 사마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담뱃대에 불을 붙여주기도 하고, 술을 따라주기도 한다. 그를 진정한 오다이진사마로 인정한 것이다.
극의 진행 속도가 늦고 동작도 아주 정적이어서 그런지 쇼는 30분 정도 계속된다. 중간에 오이란이 보여주는 가벼운 춤 외에는 크게 볼거리가 없다. 그렇지만 쇼를 보고 나니 뭔가 여운이 남는다.
일본 문화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것은 게이샤라는 독특한 주제 때문이기도 하고, 화려한 의상 때문이기도 하다. 관광에 이러한 문화체험이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 나오며 만난 또 다른 즐길 거리
닌자쇼와 오이란쇼를 본 우리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타쿠라 고쥬로의 저택으로 향한다. 이 집은 가타쿠라 고쥬로의 후손이 노보리베츠 지역을 개척하면서 살았던 집을 재현한 것이다. 전형적인 일본식 저택이다. 현재 이 건물은 도검(刀劍)자료관으로 사용된다. 전통 일본의 도검(칼)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건물 한 가운데 방에는 무사들이 가장 중시하는 의(義)가 걸려 있다.
나는 도검자료관에서 칼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칼의 부분마다 이름이 있는데, 무려 33가지나 된다. 예를 들면 손잡이와 연결되는 부분이 동각(棟角: 무네가쿠)이다. 상대방을 베는 칼날부분을 인(刃: 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상대방을 찌르는 칼끝을 봉(鋒: 키사키) 또는 절선(切先)이라 부른다. 칼은 무사의 요구에 따라 모양과 형태가 조금씩 달라졌다. 우리는 이곳 자료관에서 도검의 역사와 그 변천사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칼은 헤이안(平安)시대부터 가마쿠라(鎌倉)시대, 남북조시대, 무로마치(室町)시대를 거쳐 전국시대, 모모야마(桃山)시대, 에도(江戶)시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에도시대는 경장(慶長), 관문(寬文), 원록(元祿), 신신(新新)시대로 나눠지고, 칼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는 그게 그거로 보인다. 이곳에는 또한 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설과 장비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학술성은 떨어지지만 교육적인 면에서는 한 번 볼만한 자료관이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봉황 소나무(鳳凰松)와 연못이 있다. 그렇지만 주변이 온통 눈이다. 가타쿠라 저택을 나온 우리는 요괴의 집과 고양이절로 간다. 이들은 모두 일종의 놀이시설이다. 요괴의 집은 일본 고대 요괴들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귀신 나오는 집이다. 고양이 절 역시 요괴 고양이가 살고 있는 절로, 일종의 유령의 집이다.
유령의 집을 나온 우리는 마츠가(松ケ) 연못을 지나 '닌자의 괴이한 미로' 건물로 간다. 이곳은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을 뿐 아니라, 길이 막 움직인다. 혼란스런 가운데 우리는 이 미로를 빠져나와야 한다. 생각보다 역동적이고 재미있다. 나오면서 우리는 이나리(稻荷) 신사 앞을 지난다. 신사로 들어가는 통로에 빨간 도리이가 나란히 서 있다. 신사 옆에는 화재 감시탑 겸 전망대가 있다. 이것을 지나면 다시 상가 마을이 시작된다.
상가 마을은 들어오면서 보았기 때문에 대충 보고 아오바고텐(靑葉御殿)으로 간다. 아오바고텐은 이름이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식당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점심으로 닭찜 우동을 먹는다. 네모난 나무통에 놓인 닭고기, 우동, 야채, 버섯 등이 찐 상태로 나오는데, 시각적으로는 아주 멋이 있다. 그런데 보는 만큼 맛이 있지는 않다. 그곳에서 파는 김치를 사서 음식에 곁들이니 훨씬 맛이 좋다. 김치는 역시 음식 맛을 상큼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도야로 출발한다. 도야로 가는 길은 바다를 끼고 있다. 그래서 경치가 좋은 편이다. 그리고 50㎞ 정도로 그렇게 멀지 않다. 도야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도야 호수다. 우리는 오늘 밤 도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 잠을 잘 예정이다. 호텔에 도착하기 전에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화산인 우수산(有珠山)과 쇼와신산(昭和新山)을 둘러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