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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방송심의 제재를 받은 선거방송 19건 중 13건이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종편이 특정 정치세력을 노골적으로 편들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종편은 여론다양성의 훼손을 넘어 5·18민주화운동, 5·16군사쿠데타 등의 역사를 왜곡하고 종북몰이, 막말방송 등 극도의 정치적·이념적 편향 속에서 극우파시즘과 냉전이데올로기, 말초적 저질문화를 우리 사회에 퍼뜨렸다. 또한 약탈적 광고영업 등으로 시장을 교란하고, 온갖 특혜로 불공정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

종편의 이러한 조폭적 행태는 종편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여타 다른 채널 등에도 영향을 미쳐 방송환경과 방송시장 전체를 얼룩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승인 심사에서 공적책임 및 공정성 등의 항목에서조차도 과락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가까스로 과락기준 50%를 넘기면서 총점 탈락기준 650점을 뛰어넘은 심사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은 결론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면밀하게 짜놓은 각본에 의해 평가심사가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납득하기 어려운 종편 재심사 평가결과

 종편국민감시단 소속 단체 회원들이 지난 17일 오전 동아일보 종편 <채널A> 광화문 사옥앞에서 '종편 재승인 면죄부·졸속 심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종편국민감시단 소속 단체 회원들이 지난 17일 오전 동아일보 종편 <채널A> 광화문 사옥앞에서 '종편 재승인 면죄부·졸속 심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이번 평가결과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뚜렷하게 드러난 현상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평가가 금과옥조의 절대적 평가기준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채널A>와 <TV조선>은 주요 심사항목인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배점 230점) 등에서 과락 기준인 50점을 겨우 넘겼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평가(배점 350점)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불합격을 면했다. 1000점 만점인 실제 재승인심사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평가 점수 350점을 뺀 상태에서 다시 환산하면 <채널A>와 <TV조선>은 합격 하한선인 650점을 넘기지 못할 상황이었다.

종편의 편성행태에 대한 평가도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일부 종편의 편성비율을 보면 드라마, 영화 등은 1%도 안 되면서 보도와 시사물은 절반에 육박해 종합편성인지 보도전문채널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밖에도 ▲방송시간의 절반에 가까운 재방송 비율 ▲승인조건에 미달하는 외주제작 비율 ▲공적책임 및 공정성·공익성과 같은 핵심사항들의 불이행 ▲절반에도 못 미치는 콘텐츠 투자액 등은 이번 평가에서 어떻게 점수로 반영되었는지 궁금하다.

실적과 계획 부분에서 동등한 배점을 준 것도 문제다. '재승인'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약속을 잘 이행했는가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하며 '실적'이 평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여구로 가득 찬 '계획 부분' 배점을 '실적'과 동일하게 함으로써 출범 당시의 거짓 약속에 대해 아무런 반성 없이 공약(空約)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만들었다.

엉터리 심사, 제도적·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런 엉터리 심사가 나오게 된 배경은 심사위원 구성, 심사기준, 심사방식, 배점 등 심사 전반에 걸쳐 내재하고 있는 제도적,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는 시민사회로부터 이미 수차례 지적되었던 사항이기도 하다. 특히 비계량평가가 주류를 이루는 현재의 주관적 평가방식은 개인의 정치적 취향에 따라 실질적 결과를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번 재승인 심사위원 15명 중 12명이 여당 편향 인사로 구성되어 심사의 공정성에 심각한 하자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은 그런 중에서도 65%가 넘는 위원들이 특히 공정성 분야에서 "승인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심사위 현장에서 종편의 공정성 문제는 공통된 표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분위기가 점수로 이어지지 않은 점은 우리 사회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심사는 위원들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며 그것은 인적 구성과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19일의 종편 재승인을 위한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 전체회의는 '비정상의 우리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방통위 사무국은 방통위원들에게 '심사채점표' 등 상세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고 "소항목별 채점표를 제출하라"는 상임위원의 요구도 거부했다. 그러면서 "재승인 의결 당일 공개되면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의결 후 자료가 필요하면 주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방통위 사무국이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를 고의적으로 무시한 월권행위이다. 모든 방통위원회의 의사결정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합의를 원칙으로 한다. 방통위원들에게 의결에 필요한 판단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채 의결만을 강요하는 것은 위원의 심의권과 의결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전문가들이 심사를 기피한다는 이유로 점수표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여당측 상임위원의 시각은 과연 이 사람들이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역할과 권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2만명 고용창출, 3조원의 생산유발 효과는 어디로...

 지난해 2월 2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2층 브리핑실에 종편방송인 '조선TV'(조선일보), '채널A'(동아일보), 'JTBC'(중앙일보)가 생중계를 위해 설치한 장비들이 놓여 있는 모습.
지난해 2월 2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2층 브리핑실에 종편방송인 '조선TV'(조선일보), '채널A'(동아일보), 'JTBC'(중앙일보)가 생중계를 위해 설치한 장비들이 놓여 있는 모습. ⓒ 권우성

방통위가 ▲시정명령에 따른 감점 ▲거짓 사업계획서에 대한 벌점 ▲변경된 사업계획서 ▲보도편성 확대 ▲종편에 대한 평가 등 종편 심사에서 방통위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을 숨긴 채 합의 없이 의결을 강행한 것은 2009년 당시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통과 시 저질렀던 날치기에 다름아니니, 원천무효다.

따라서 방통위는 이번 종편 재승인 과정에서 드러난 불합리한 부분과 의혹들을 낱낱이 공개하고 심사의 인적 구성, 기준, 방식 등 그동안 나타난 문제들을 명쾌하게 해결한 뒤에 다시 재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방송은 공공의 자산인 전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신문과 다르다. 따라서 공적책임과 공정성, 공익성 문제는 방송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공적책임의 의미를 확장하면, 공정한 보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용문제와 경제발전에 대한 종편의 기여도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2만여 명의 고용창출, 3조 원의 생산유발효과 등 종편 입법과정에서 나왔던 온갖 미사여구는 3년 동안의 방송운영 과정에서 모두 허구였음이 입증되었다. 이에 종편을 추진했던 정부여당뿐 아니라 엉터리 논리를 개발하고 주장했던 지식인과 학자들 또한 스스로 이름을 공개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완기 기자는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입니다.



#종편#종편재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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