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형틀 목수 일을 하고 있다. 한옥 목수일을 2년 넘게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직종을 비교하면서 형틀 목수의 노동 일기를 기록해보았다. -기자 말 서울로 가는 지하철 첫 차는 5시 6분이었다. 이 시간에 맞춰 일어나 씻고 준비하고 10분 거리의 지하철 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다.
새벽같은 시각, 텅빈 지하철 역의 고요한 출근길을 예상했는데 이미 지하철 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섯 정류장이 채 지나기 전에 앉을 자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지하철 첫 차만 그렇고, 그 다음부터는 한가한 편이다. 내가 탔던 1호선과 7호선이 항상 그랬다.
직접 묻지는 못했지만, 두런거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나처럼 건설현장을 향하거나 청소일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한옥 일을 할 때는 현장 근처에 숙소를 잡거나 아니면 현장 내에 컨테이너를 개조한 곳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가지 장점은 출퇴근 시간이 극히 짧다는 것이었다. 보통 오전 7시에서 시작해 늦은 6시에 일을 마치는 현장이 많은데, 아침에 여섯시 전후로 일어나 준비하고 밥을 먹어도 일을 시작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출퇴근이 가능한 아파트 건설현장은 출근 시간을 감안해 한시간 반 정도 더 일찍 일어나야 했고, 퇴근할 때는 퇴근 인파에 이리저리 치여야 했다.
한옥 목수일과 형틀 목수일의 노동 강도는 큰 차이는 없었지만, 이러한 출퇴근 시간의 유무는 몸의 피로한 정도에는 많은 영향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집에서 쉴 수 있다는 것은 객지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점이었다. 단체생활, 저녁 반주 문화, 흡연자들과 한방 쓰기. 때로는 일과시간보다 피로한 일과 후 시간도 있었다.
1월 2일 여섯시 반 정도에 도착한 서울의 한 아파트 재개발 현장, G목수에게 K반장을 소개 받았다. 그런데 K반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오늘 일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유가 기가 막혔다.
건설 현장의 노무비는 보통 한달을 '깔고' 준다. 예를 들어 내가 1월에 일한 것(정확하게는 12월 26일부터 1월 25일까지 일한 것)은 2월 25일에 받게 된다. 그런데 11월달 일에 대한 노임이 아직까지 지급이 안되고 있어 노동자들이 항의의 표시로 오늘 일을 못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처음 일을 하러 온 나에게는 '영혼까지 잠식해 버리게 만들' 불안한 말이었다(나중에 이 불안감은 일부 현실이 되어 일 시작한지 70일이 지나서야 내 노동의 대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성이나 현대 아파트 현장에서는 공종별로 도급받은 중소회사가 들어와 있다. 일용직 노동자가 근로계약을 맺는 것은 이들 회사다(물론 근로계약서는 작성되지 않고, 작성하더라도 형식적이다). 그렇지만 '내'가 속한 형틀 팀이 팀장을 중심으로 부분적인 공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나'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아닌 팀장과의 관계이다.
예전에는 작업량에 따라, 팀장이 돈을 받고 팀원에게 일당으로 계산해 주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회사의 지시대로 일하고 일당역시 회사가 직접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결국 일당에 대한 위임장을 쓰는 형식으로 임금의 일부를 팀장이 가져간다.
그렇게 하루는 공치고 1월 3일부터 형틀 목수일을 시작했다.
일 하면서 놀랐던 것은 건설직 노동자의 '대부분' 중국 교포들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속한 형틀팀은 60% 정도가 중국 교포 출신 노동자였는데 이는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였고, 같은 현장의 또다른 형틀팀은 90% 이상, 철근 팀역시 90%가까이 중국 교포였다. 중국 교포들은 평소에는 한국어를 썼지만, 급하면 중국어를 쓰기도 해서 건설 현장 제2의 공용어나 마찬가지였다.
첫 현장에서 안전 교육을 진행할 때 원청 직원이 이야기해 준 내용은 이랬다. 처음에는 중국 교포들이 한국인 팀장에게 일을 배운다. 그중 뛰어난 이들 몇몇은 팀장급으로 성장하고,자기 고향에서 일 잘하는 후배들을 끌어와 팀을 만든다.
반면에 이들에게 일을 가르친 한국인 팀장들은 일하려는 한국인들이 없기 때문에 인력충원을 교포 팀장에게 의지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일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팀에 남게 하고, 그 다음 순위의 사람을 연결시켜주게 되고 일의 품질에서도 역전이 발생한다.
아직까지는 교포가 팀장인 팀은 본 적이 없다. 대개 한 팀에는 팀장 말고 신호수라고 불리는 반장이 둘 있는데, 내가 속한 팀은 한국인 반장 한명, 중국 교포 반장 한명이었고, 교포가 많은 팀에선 당연히 교포 반장이 둘이었다.
한국인들이 참 좋아하는 주거 형태인 공동 주택 아파트. 한국의 아파트는 삼성, 현대같은 대기업이 짓는다. 하지만 또다른 의미로 한국의 아파트는 중국 교포가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굳이 노동의 '가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굳이 건설 노동자들 스스로 그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들었던 말 한마디. 한국사람들은 아파트를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숭배하면서 정작 아파트를 '진짜로' 짓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무시한다
그렇게 교포 출신들을 포함해 나는 한번에 스무명이 넘는 형틀 목수 '형님'들이 생겼다. 이들은 어떻게 목수가 됐고, 어떻게 사는지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gertie/30187316805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