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이의 병설유치원 입학
아내가 예전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까꿍이는 다둥이 혜택 덕분에 어렵지 않게 동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비록 인근 아파트의 재건축이 진행된다면 내년에 폐원할 수 있다고 공지된 곳이었지만, 어쨌든 최소 1년 동안은 안심하고 첫째를 기관에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내는 까꿍이를 공동육아에 보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지만, 가계의 경제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까꿍이의 병설유치원 입학은 안타깝기 보다는 다행스러운 일에 가까웠다. 어쨌든 병설유치원은 공동육아보다, 그리고 민간유치원보다 많은 보육비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보육비를 지원해주며 온갖 생색을 다 내지만 그것만으로 태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적지 않은 민간유치원은 정부가 보육비를 지원해주는 만큼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더 걷어 들이며, 공동육아는 보육비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 운영의 특성 상 초기 출자금이나 운영비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 있는 대안이라곤 국공립 보육시설을 더 짓는 것인데,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그와 관련된 공약을 지킬 마음이나 있는지.
까꿍이가 병설유치원에 들어갔다고 하자 혹자들은 경제적으로 잘 됐다고 하면서, 다만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걱정해 주기도 했다. 민간유치원에서는 영어다 수학이다 하면서 이것저것 가르치느라 바쁜데, 병설유치원과 같은 국공립 교육기관은 아이들을 그냥 놀라고 방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 아내와 나는 태연했다. 안 그래도 학교 들어가면 공부하기에 바쁜 아이들, 그 전에라도 조금 더 놀려야 한다는 것이 둘의 공통된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당장 나만 보더라도 학교 들어가기 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뒷동산에 올라가 열심히 팠던 개미굴 아니던가. 유치원 때라면 백 날 공부하느니 차라리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며 스스로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키우는 것이 백 배 천 배 낫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모든 면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까꿍이의 병설유치원 입학. 그러나 이와 같은 나의 확신은 까꿍이 입학식 당일 흔들리고 말았다. 입학식이 벌어지던 그곳에 전혀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던 것이다.
유치원 입학식에 꽃을?
3월 6일 까꿍이의 입학식이 다가오자 아내는 내게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유치원 입학식인데 사탕 꽃다발은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엥? 졸업식도 아니고 입학식인데 가족이 모두 가야하며, 게다가 꽃다발까지?
그러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것이 요즘 트렌드였다. 당장 3월 2일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탕 꽃다발을 들고 있는 이웃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의 이야기인즉슨 요즘은 유치원 입학식 참석은 물론이요, 사탕 꽃다발은 기본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친구들이 다 꽃다발을 받는데 어찌 우리 아이만 맨 손으로 돌아올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도 사탕 꽃다발을 준비할 수밖에. 다만 이렇게 대세에 따르다 보면 결국 우리 아이들도 남들과 똑같이 사교육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그보다는 유치원 입학식에서 혼자 주눅 들어 있을지도 모를 까꿍이가 더 큰 걱정이기에 사탕 꽃다발을 직접 만들겠다는 아내를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드디어 유치원 입학식 당일. 동료들에게 사정을 이야기 한 뒤 회사를 빠져나와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주변은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자녀들 혹은 손주들의 입학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과 사탕 꽃다발을 팔겠노라며 소리치는 상인들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 고작 유치원 입학식이라는 생각에 순간 당황했지만 나 역시 그 풍경 중 하나란 생각에 멋쩍은 웃음만 날릴 뿐이었다.
유치원 입학식에서 마주친 태극기
한 손에는 엄마가 만들어준 사탕 꽃다발을 들고 유치원에 간다며 들떠있는 까꿍이. 녀석의 손을 잡고 입학식이 열릴 초등학교 체육관에 들어서는데, 그 순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체육관 정면 한 가운데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는 태극기였다. 오랜만에 보는 태극기.
그뿐만이 아니었다. 입학식은 식순대로 진행되었는데 역시나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이었다. 부모들을 대상으로 했던 오리엔테이션 때는 국민의례 자체를 생략했기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더니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이곳은 국가주의의 첨병 학교 아니던가.
까꿍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그 의미도 모른 채 눈치 상 가슴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무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겠지.
그런 까꿍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공동육아나 민간유치원을 다녔더라면 저렇게 쉽게 국가주의에 노출되지 않았을 것을, 국공립 병설을 택했더니 녀석이 공교육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국가' 안으로 편입해 들어가는구나. 그것도 불친절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내가 그랬듯 까꿍이 역시 처음에는 어떤 설명도 없이 맹목적으로 애국, 애족을 강요받으며 또 하나의 '국민'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과연 까꿍이는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꽤 많은 노력을 해야 할 텐데 내가 도와줄 일은 무엇일까?
그러나말거나 까꿍이는 선생님들이 선물이라며 유치원 가방을 나눠주자 입이 귀에 걸렸다. 이제부터 시작해서 근 20년을 메게 될 가방이 뭐가 그리 좋은지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동생들에게 자랑을 해댔다. 이제 유치원생으로서 매일 친구들과 놀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동생들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있지.
아이들의 한계를 고려한 탓인지, 다행히 입학식은 길지 않았다. 원장 선생님의 말씀도 생각보다 짧았다. 부디 모든 공교육이 그와 같기를. 우리 때 교장 선생님들은 뙤약볕에 아이들 세워 놓고 무슨 권위를 살려보겠다며 그리 말씀을 길게 끌었는지.
입학식을 마치고 나와 초등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영락없이 아내와 내 초등학교 시절 때와 똑같았다. 무려 25년이 흘렀어도 다를 바 없는 사진의 풍경. 이걸 비극이라 해야 할지, 아님 희극이라 해야 할지. 정부는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부르면서 도대체 어디에다가 돈을 쓰고 있는 걸까?
그렇게 까꿍이의 유치원 입학식은 무사히 끝났다. 이제 내일부터 까꿍이는 아빠 자전거 뒤에 타고 통학할 예정이다. 녀석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아내와 나는 학부모로서 어떤 일을 겪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