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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 20일 오후 2시부터 출판사 후마니타스 사무실에서 박상훈 대표와 2시간 동안 진행한 인터뷰 전문 세번째다. [편집자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 권우성

"안철수, 전형적인 여론동원 정치 하고 있어"

- 안철수는 왜 기초공천 폐지에 집착했을까?
"제3정당 기존정당체계 밖에서 출발하는 사람에게는 유혹이 있다. 무엇보다 앞선 사람이 가지는 제도적 이익을 파괴하는 게 좋다. 자기가 열심히 해서 그 자리에 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가 가지는 제도적 이익을 파괴하는 거다. 기성의 이득을 더 보는 사람들을 내치기 위해서 제도 자체를 파기해버렸다. 지구당을 없앤 것도, 정치자금법을 개정한 것도 제도적 이점을 가진 사람들의 제도 자체를 날려버린 거다.

그동안 민주당이 웬만한 제도를 다 파괴했기 때문에 안철수가 파괴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남은 게 기초단체 정당공천제도 정도였다. 그것은 지방의 시민단체들도 요구했던 부분이 있다. 정당들 말고 풀뿌리 단체에게 지방자치의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이게 좀 인기가 있어 보였던 거다. 하지만 정치학적으로는 빵점이다. 정치학도 나름대로 사회성과 효용이 있다. 그렇다면 정치학자들의 우려와 경고에도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기초선거 공천폐지는 안철수를 대안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몇몇 사람들이 인기를 끌기 위해 낸 경박한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 기초선거 공천폐지는 정당체제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정당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거다. 그렇게 하려면 뭐 하러 선거를 치르나? 그냥 외국에서 수입해도 된다. 외국 사람들 중에 괜찮다는 사람이 있다면 데려오면 된다. 정당 안에 여러 가지 군상들을 어떻게 민주정치에 필요한 걸로 얼마나 더 잘 만들 것이냐가 정당정치의 핵심인데, 지금은 자기를 해부하고 있다. 자기 몸이 아프면 더 단단히 만들어야 하는데 자해하려고 한다. 얼마나 웃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우리가 야당에게 기대하는 것은 강한 정당이다. 그래서 여당과 견줘서 견제할 수 있고 권력을 선용해서 사회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데, 그 권력을 '특권 없다'고 하면서 잘난 척하고 있다. 민주정치의 손발을 자르는 거다. 이것은 전형적인 안철수식 정치다. 특권을 어떻게 유익하게 쓰겠다고 해야 한다. 특권은 시민들이 경제권력을 견제하고 관료를 견제하라고 준 것이기 때문에 이걸 강하게 제대로 쓰겠다고 하는 게 정상적인 태도다. 그것을 다 포기해 버리면 결국 사회는 돈 많고 목소리 센 사람들 마음대로 좌우된다.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강해야 한다고 하는 게 정상적이다. 정치를 강하게 해서 사회를 보호하는 게 민주주의의 요체다. 정치가 강해지면 정치가 가진 억압적인 부분들이 줄어든다.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이 얼마나 강한가. 경제도 일정하게 바꿀 수 있다. 그 강한 정당들이 권력적으로 보이나? 다 지하철로 출근한다. 행정권력과 경제권력과 다투는 게 중요한데, 지금은 누가 더 인기가 좋은가, 누가 더 여론조사에서 인기가 좋은 걸 하느냐로 다투고 있다."

- 안철수쪽에는 정당정치를 알 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이고, 본인도 잘 모르고 누군가 학습도 시켜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의 객관적인 행동을 보면 전형적인 여론동원 정치를 하고 있다. 사회의견을 조직해서 공공정책을 변화시키고 삶을 개선하는 쪽에서 실력을 보여야겠다는 게 아니다. 그러니 내부에서도 공적 회의가 없고, 윤여준 의장과 같은 일이 나타나는 거다. 회의를 못한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공적 회의구조에서 다양한 토론을 통해 결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게 없다. 거기서 완전한 무능력을 보여준 거다. 조직이 커지면 공적 회의체계에서 결정이 이뤄지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을 받고 언론을 통해 노출하는 것밖에 없다. 도대체 그 '보이지 않는 외부'는 누굴까?"

-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재검토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약속을 지켜야 하나?
"안철수는 공천 폐지를 대선에서 공약했고 여야 대선후보가 모두 공약으로 하는 것에 일정 관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보니까 민주정치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좋은 공약을 한 거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이것이 정말 민주주의에 필요한 공약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게 잘못된 공약이라면 유보하거나 철회해야 한다. 잘못된 결정을 폐기하는 것도 실력이다.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자기주장에 확신이 있었다면 이게 정치를 위해 필요한 거라고 설득했어야 한다. 그게 없으니까 공허한 '약속론'만 남았다. 잘못된 결정을 수정하는 실력을 보여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누구도 모든 약속을 지킬 수는 없다. 본인도 바로 그 다음에 약속을 폐기하면서 약속만 이야기하니 이중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이중인격자가 된 것이다. 어떤 약속은 무조건 지키고, 어떤 건 말을 바꾼 거다."

"정치에서 윤리성이 최고라면 법정 스님이 정치해야"

- 최근 <경향신문>에 쓴 칼럼에서 "안 의원이 약속 지키는 정치와 약속 지키지 않는 정치라는 도덕주의적 이분법을 과격하게 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옳은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옳은 길이라는 확신은 없고 약속만 지켜야 한다고만 말하는 건 도덕주의다. 이게 옳으니까 폐지해야 한다, 여기에 유익함이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으면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신의를 지킨다는 윤리를 동원한 것은 정치에서 최악이다."

- 그래도 정치가에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윤리가 필요하지 않나?
"좋은 약속의 윤리여야 한다. 말을 뱉었다고 지켜야 한다면, 악한 말도 수두룩한데 그걸 다 지켜야 하나?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고 다 죽여야 하나? 자기의 인격을 고쳐서라도 하지 말아야지. 정치에서도 잘못된 말은 실력을 길러 개선해야 한다. 안철수는 잘못된 약속도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고 하면, 이건 앞뒤가 잘못된 거다. 본인도 지킬 수 없는 윤리성을 강요하고 있다."

- 하긴 민주당과 통합함으로써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약속도 결국 지킬 수 없게 됐다.
"윤리성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다. 인격이 좋으면 좋겠지만 그 사람에게 맡겨진 기능을 제대로 하느냐가 최고로 중요하다. 이게 전도되면 안된다. 그걸 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착한 사람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기를 숨길 때도 있어야 하고, 어떤 때는 과장해서 화도 내고, 의도적으로 호통도 쳐야 한다. 정치에서 윤리성이 최고라면 법정 스님이 정치해야 한다.

(삼성의) 성균관대나 (두산의) 중앙대가 문제가 되는 것은 기업가들이 가진 윤리와 다른 원리로 움직이는 대학을 그에 맞게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도, 정치도 기업가나 교수에게 요구되는 윤리성과 다르다. 도덕군자적인 원리로 전체를 들이박으면 착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건 감당이 안되는 윤리를 말하기 때문에 선동이다. 그러면 결과가 더 나빠진다.

우리나라처럼 윤리가 강조되는 정치가 어디 있나? 그렇다고 우리 정치나 사회가 윤리적이지 않다. 도덕을 앞세우면 사회는 도덕적이지 않다는 게 사회과학에서 첫번째로 가르치는 거다. 내 신념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도 맡겨진 과제를 해야 하는 게 정치가다. 그걸 고민해야 하는데 내가 얼마나 착한지를 과시하면 안된다."

- 안철수의 새정치가 정당정치와는 안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정 반대로 간다는 느낌인데, 처음에 제시한 의원정수 축소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건 정당정치에만 반하는 게 아니라 민주정치를 파괴하는 것이다. 미디어에 얼마나 호의적으로 많이 나오느냐가 행동원리의 거의 전부였다는 느낌이다. 설령 인기가 없는 거라도 필요하다면 때로는 그렇게 해야 하는데, 모든 행동의 기준이 여론이고 인기다. 실제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통해 판단할 수 있게 해야지,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판단하게 하는 건 투기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는 딱 여론동원 정치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넓게 보면 민주당에도 일어났던 일들이다. 민주당의 실패는 안철수식 정치에도 있다. 가장 중요한 개혁이 뭐라고 묻는다면 튼튼한 야당, 작지만 강한 정당이 생겨야 한다고 답하고 싶다. 그래서 사회약자를 대변하는 확성기가 될 수 있다. 촛불은 간헐적이다. 일상적으로 좋아지는 길을 찾아야 한다."

- 안철수가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나 막스 베버에게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정치가라는 세계의 특성부터 알아야 한다. 본인의 선한 신념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치의 실제 세계에서 신념에 가까운 성과를 내는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빨리 얻어야 한다. 지금에 대입해 보면 연합정당에 들어가서 본인의 계보를 잘 관리하고 실력을 튼튼히 하고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간 보여준 실력으로는 이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얻게 된다. 대안의 리더십으로 볼 수 있는 게 없다. 

안철수는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목표를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특별한 초선의원으로서 정치를 경험했으면 좋겠다. 상임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예산도 공부하고 통치집단을 이끌 정당 안에서 성장한 다음, 정치지도자의 길을 선언하는 게 좋겠다. 지금까지는 정치지도자로 무능하다는 것만 보여왔다. 정치에서는 정말 실력이 필요하다. 실력이 있어야 신념도 지킬 수 있다. 시민운동가 출신들도 정치학은 공부하지 않고 도덕적 우월성만 대입하려고 한다. 오히려 많은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은 박지원이 낫다."

- 최장집 교수가 계속 '정책네트워크 내일'에 있었다면 안철수의 이 같은 행보를 찬성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나?
"물론 당연하다. 안철수에게 변화의 여지가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건 최장집의 정치학이 아니었다. 그 분의 명망이 필요했을 뿐이다. 하려는 의지는 없고, 그냥 얘기를 들어주기만 한 거다. 그게 정치학자의 운명이기도 하다. 정치학자도 정치 내부에 들어가봐야 안팎의 긴장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최장집 교수도 정치학자로서 나쁘지 않은 경험을 했다고 본다."

"정치가는 길을 열고 내는 사람이다"

- 최근에 우리가 민주당의 계보를 그려봤다. 지나치게 어지럽더라. 2000년부터 당명만 12번 바뀌었다. 
"민주화 이후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이 100개가 넘는다. 의석을 가진 정당이 40여 개다. 미국에서 200년 역사 동안 정당이 바뀐 게 없다. 어디나 그렇다. 정당이 바뀌고 많이 생기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정치학자들은 말한다. 이탈리아가 그렇다. 우리가 딱 그 모양이다. 외국사람이 보면 기가 막힌 일이다. 어떻게 한국처럼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이럴 수 있나, 그러지 않을까?"

- 정당이 이렇게 어지러울 정도로 이합집산을 하는 게 한국정치 20~30년의 모습이다. 지나치게 선거에만 매달리기 때문 아닌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사회에 닻을 내리고 있으면 이렇게 어지럽게 이합집산할 수 없다. 그리고 공천을 주고받는 관계만 있을 뿐이지 계보라고 부를 만한 세력도 없다. 정치학의 가장 큰 분야는 정당정치다. 하지만 이것을 하는 사람이 없다. 다 선거를 한다. 선거는 민주정치의 꽃이 아니다. 선거에서는 컨설턴트와 테크니션들만 움직인다. 정치학의 핵심은 정당이론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서는 데모가 일어난다. 외국에서는 국회의원 집 앞에서 데모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의원들이 자기 집을 감춘다. 결국 갈 수 있는 곳이 청와대나 국회 앞이다. 추상적인 거대조직 앞으로 가는 거다. 결국 지역 안에는 어떤 뿌리도 없다는 얘기다. 정당이 정책을 잘 관리하고 홍보해서 그동안 해온 것을 평가받는 게 선거인데, 거꾸로 정당이 해온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 이제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떻게 가야 하나? 정당정치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작용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도 잘 할 것 같지 않다. 야당은 공공재다. 야당 지지자들의 것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필요한 요소다. 여당을 견제할 수 있고, 약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 민주당의 문제점을 얘기하지만 깊은 곳에서는 야당으로서 역할을 잘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으로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책을 봐도 나오지 않는다. 정치학 교과서나 민주주의 이론에서는 너무나 벗어나 있다. 정말 무력하다.

길을 여는 사람이 정치가다. 길을 내는 사람이다. 이것이 정치의 특징이 그러니까 부디 김한길이든 안철수든 (한국 정당체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깊고 대범하게."


#박상훈#안철수#새정치민주연합#기초선거 무공천#안철수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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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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