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질 무렵이면 대학가는 학생회 선거로 시끌벅적하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후보들과 선거운동원들이 길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홍보물을 쥐어주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선거는 축제'라는 명제가 옳다고 느끼곤 한다. 그런데 간혹 불청객이 찾아들 때가 있다. 다름 아닌 '대학'이다.
대학생들의 자치조직인 학생회선거에 대학 당국이 개입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지난겨울에도 덕성여대와 숙명여대 등 여러 학교에서 이런 이유로 선거가 파행으로 치닫고 총학생회가 제 때 세워지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학생회 건설을 막고자 선거를 고의적으로 무산시키는 경우, 대학 당국과 커넥션이 있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여론을 호도하는 경우, 직접 선거에 개입하는 경우 등 개입의 방식은 다양하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대학이 학생회를 눈엣가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음대로 운영하고 싶은데 학생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갖고 집단적으로 의견을 낸다거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들이 귀찮은 것이다.
이런 와중에 대학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할 법한 정부 발표가 나왔다. 지난 20일 교육부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대학이 주관해 실시하도록 한 '대학생 집단연수 시 안전 확보를 위한 매뉴얼'을 각 대학에 배포한 것이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함께 학교를 다니게 될 이들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신입생 OT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생회 주관으로 치러진다. 때문에 OT는 신입생들이 학생회 조직의 구성원으로 환영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신입생들은 연간의 학생회 행사들과 학생회 업무에 대해 소개받는다.
학생들이 학생회라는 조직의 틀로 묶이는 것이 탐탁지 않을 대학 입장에서 이런 OT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실제로 몇몇 학교에서는 학생회가 주관하는 OT와 별개로 학교 주관의 OT를 따로 여는 곳들도 있다. 그런데 대놓고 OT의 주관단체를 대학 당국으로 못 박아 주었으니 대학 입장에서 이번 발표는 참 반가운 일일 것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왜 정부가 관여하나이 문제는 지난 2월 경주에서 있었던 부산외대 신입생 OT 참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OT를 진행하던 리조트 체육관 건물의 천장이 내려앉으면서 여러 사상자를 낸 이 끔찍한 사건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런 참극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책임자를 가려내 처벌하고 후속조치를 취하는 일은 백번 옳은 일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후속조치라고 내놓은 매뉴얼은 생뚱맞기 그지없다.
물론 학생들이 진행하는 행사다보니 안전 점검이 미흡했을 수도 있다. 학생회들 역시 이런 점들을 겸허히 돌아보고 앞으로 진행하게 될 행사들을 더 안전하게 꾸려나갈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사건의 원인이 '학생회가 OT를 주관했기 때문'이 되진 않는다. OT를 학생회가 아니라 대학 당국이 주관하면 무너질 건물이 안 무너진단 말인가? 정부가 만드는 매뉴얼에 들어있었어야 할 내용은 이런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앞으로 행사를 진행함에 있어 유의해야 할 안전 지침에 관한 것이다.
대학생들의 자치단체인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행사의 주관을 정부 마음대로 대학으로 바꿔버리는 일은 이상한 일이다. 이는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성격의 일도 아니다. 이번에 내려진 이 이상한 조치는 학생회라는 조직에 대한 정부의 인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학생회는 학생들이 스스로 모여 만든 자치기구로서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공간이다. 교육의 당사자이자 대학의 주체 중 하나인 학생들이 대학의 운영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창구로서 학생회는 일종의 이익집단이고 조합적 성격을 갖는다.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있어 회사를 상대로 권익을 보장받기 위해 교섭을 벌이듯이 학생회 역시 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해 학교와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의 조치는 이러한 학생회의 '자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대학들이 학생회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학생자치를 방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놓고 나서서 학생회의 자치권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학생자치가 안팎으로 위협받고 있다.
학생회도 공식기구로서 법적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학생회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다. 보통 '대학 총학생회장 쯤 하면 차 한대 뽑는다'는 풍문처럼 학생회는 비리의 온상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인터넷 뉴스 댓글에는 학생회 간부들이 참가비를 횡령해 시설이 좋지 않은 리조트로 OT를 가게 되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유언비어가 돌았었다. 실제로 일부 학생회장이 학생회비를 횡령하거나, 학생회비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해 물의를 빚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회가 모두 다 그렇게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본래의 목적에 맞게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며 자기 할 일을 잘 하는 학생회들도 많다. 고액 등록금 문제와 열악한 교육환경, 다양한 대학 내 비리 등 학생회가 풀어나가야 할 일들이 산적해있는데 이번 사건을 기회로 학생회 자체를 나쁜 집단으로 몰아가며 학생 자치를 저해하는 식으로 물 타기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학생회의 자치권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마냥 사고의 책임을 떠넘기는 이번 조치는 부당하다. 사고를 방지하는 일은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학생회와 관련해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사고들을 막기 위해서는 공식적으로 학생회에 분명한 권한을 부여하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생회도 하나의 공식기구로서 법적인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
학생회들 역시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당장 내년 초면 벌어지게 될 신입생 OT를 둘러싼 논란이 정부와 대학, 학생들 간의 소모적인 싸움이 아니라 학생자치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