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노동자 500만 시대.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알바생으로 살아가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일을 하면서 임금을 떼이거나 성적 불쾌감을 느껴도 제대로 호소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 번 당신의 급여 중 일부를 강제로 떼서 기부하는 사장. 이런 황당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최근 한 포털사이트에는 알바월급 강제 기부사건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조회 수 20만을 기록하며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강제기부사건의 당사자인 21살 아무개씨는 지난해 대학 진학을 위해 부산에서 상경했다. 지난 1월부터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역삼역 부근의 S부대찌개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알바중개사이트 구인광고에는 1~3개월 단기근무에 시급 6200원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으며 주휴수당과 기타 법정수당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그는 주6일 동안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대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2개월 간 근무하면서 화장실 청소, 매장청소, 반찬세팅, 물 세팅, 창문 닦기, 포스기 켜기 등의 오픈준비와 손님 서빙, 테이블정리, 숟가락 닦기, 계산까지 많은 일들을 담당했다. 일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계약서에 어떤 내용 담겼는지 확인도 못하고 사인
일을 시작한 첫 날, 사업주는 근로계약서라며 들고 온 서류를 본인이 직접 소리 내어 읽어준 후 서명을 요구했다. 내용은 '5개월 이상 일을 하지 않을 시에 알바생의 전체 임금 중 10만원을 기부한다'와 '수습기간으로 일한 5시간의 임금은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 채용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당장 일할 곳을 찾고 있는 마당에 사업주의 요구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근로계약서를 직접 검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용기간과 소정근로시간, 시급, 임금계산방법 등이 적혀있는지, 그 외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서명을 했고 서명을 한 후에도 근로계약서는 받지 못했다.
문제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한 날부터 시작됐다. 사업주는 5개월을 채우지 못했으니 약속대로 임금의 일부인 10만 원을 구호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급여지급일인 3월 18일, 약속된 급여에서 13만1000원이 빠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습기간이라 칭한 5시간 분의 임금인 3만1000원과 10만 원을 기부금 명목으로 떼고 급여를 준 것이다. 이씨가 부당함을 주장해도 사업주는 묵묵무답이었다.
계속해서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자,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구호단체를 알려주면 거기로 돈을 입금해주겠다'는 사업주의 답변에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씨는 어머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같은날 오후 5시께 이씨의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사업주는 "어머니한테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런가 보네요, 어머니 나이 어떻게 되세요, 저랑 나이차이도 얼마 안 나시는 것 같은데"라면서 체불임금을 지급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후 통화내용과는 무관하게 5시 15분께 이씨에게 메신저로 "어머님과 통화했다, 어머니가 OOO에 정확하게 기부하라 하신다"면서 "단, 입금내역과 전번을 달라하시니 그건 금일중 보내주도록하마"라며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전달했다.
삿대질로 업무지시하던 사업주 "너 뭐하는 XX야"
이씨는 한 달간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했지만, 임금에 대한 통제권은 일을 한 알바가 아닌 사업주에게 있었다. 당일 저녁, 이씨는 자신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빡침주의)역삼역부대찌개집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글은 순식간에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누리꾼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이를 확인한 사업주는 19일 오전 6시 25분께 메신저를 통해 "금일 오전 7시 아침까지 인터넷에 올린 글 삭제하지 않으면 거짓명예훼손죄로 고발조치 할 것임을 말해둔다"면서 " 니가 나를 화나게 하는구나"라고 경고한 후 구호단체에 이씨의 이름으로 10만 원을 입금한 내역을 전송했다.
이후 온라인상에서 해당 매장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자 20일 오후 4시께 13만1000원을 일방적으로 입금한 후 "돈 입금했다. 현 시각 이후 니 글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이제 니가 받아야할 것 같다"면서 "노동청 및 경찰청 모두 내가 선 접수 방문 및 처리했다, 피해보상은 니가 쓴 글로 인한 노출수로 계산한다하니 잘 챙기거라"라는 협박성 메시지를 보냈다.
사업주가 체불임금의 일부를 입금한 당일 저녁, 이씨와 같은 매장에서 일한 또 다른 알바노동자가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쓴 글을 포함해 두 개의 게시물이 모두 삭제됐고 알바중개사이트에 올라온 채용공고도 일제히 내려졌다. 해당 매장에서 계약기간 5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곧 일을 그만둘 예정인 동료 김아무개씨도 위약금 형식으로 10만 원을 납부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씨에 따르면 평소 반말로 직원들을 대하는 사업주는 업무지시를 할 때 삿대질을 하면서 "마지막 경고야"라는 표현을 자주했다. 지난 2월 7일, 이씨가 '몸이 아파 출근하기 어렵다'고 사전에 문자를 보낸 후 2시간 늦게 출근했을 때는 전화로 "너 뭐하는 XX야. 내가 너 같은 OO랑 일 해야 겠냐, 나보다 나이 많냐, 너 나한테 문자 한통으로 통보할 입장이야? 나 특공대 출신이야 니가 뭔데 나한테 통보해"라고 말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더 이상 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씨는 3월 14일자로 일을 그만뒀다. 이씨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이씨와 함께 일한 박씨 "매장 유리를 클리너로 닦다가 용액이 배꼽 부분의 앞치마에 묻었는데 사업주가 직접 닦아주려 해 매우 불쾌했다"면서 "사장이 외부에서 CCTV를 통해 특정 테이블 손님의 주문을 받도록 업무를 지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원들 사이에서 '화장실에도 CCTV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고 밝혔다.
부당한 내용으로 가득 찬 알바근로계약서
알바생 이씨와 알바노조는 지난 24일 오후 2시반께 사건이 벌어진 역삼역 부근의 S부대찌개 집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사업주는 알바노조가 요구한 사항에 따라 피해 알바노동자, 알바노동자의 어머니, 함께 일한 동료 등에게 구두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와 함께 공식적인 사과문 전달을 약속했다. 이씨가 직접 서명했다는 근로계약서를 확인하고자 했으나 사업주는 이를 노동청에 제출했다고 답했다.
이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근로계약서를 보자고 했고, 근로계약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10만원을 강제로 떼서 기부하겠다는 내용뿐만 아니라 근무시간 10분전 출근, 불친절 2회 이상 접수 시 손해배상 청구, 결근 시 대체인력 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알바가 부담, 후임자가 확보되지 않을 시 사직불가 등 추가 문제들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사업주는 요식업중앙회에서 내려온 내용을 참고했다고 밝혔으며, 알바노조는 향후 진위를 파악하고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피해자 및 알바노조와 만난 사업주는 도의적 책임차원에서 피해 알바노동자의 정신과 진료비, 어머님의 교통비를 지급했다. 하지만 사과를 받는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사업주의 진심을 느낄 수는 없어 참으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 알바노조는 현 근로계약서 전체의 문제와 이씨에게 미지급된 것으로 예상되는 주휴수당 문제를 추가 확인할 예정이다.
사업주는 이씨가 서명한 근로계약서상에 기본시급 5210원에 주휴수당이 990원이 더해져 최종시급이 6200원으로 책정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구인공고 상에서도 시급 6200원으로 되어 있었고 계약서 작성 시 그런 내용은 보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알바노조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악덕 사업주의 횡포를 고발하는 행동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알바노조 구교현 위원장은 "특히 대기업 프랜차이즈 내에서도 각종 부당사례들이 속속 접수되고 있어 이러한 사례들을 모아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보다 많은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찾기가 필요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권유리는 알바노조 활동가입니다. www.alba.or.kr 알바노조(02-3144-0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