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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씨(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와 밥을 곁들인 술자리를 두 번 했다. 밥은 있으나마나고 술이 주식인 그와의 술자리는 유쾌하고 즐거웠다. 한번은 인터뷰 뒤였고, 다른 한번은 리뷰를 쓰려고 만난 겸사겸사의 자리였다.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그의 진면목을 술자리에서 알게 되었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2월 25일에 초판 1쇄본이 나왔다. 지난 3일 첫 술자리에서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5쇄 7천부를 찍었다고 했다. 엊그제 만났을 때는 달뜬 낯빛으로 2만5천권을 찍었다고 기염을 토했다. 불과 3주 만에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는 내게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도움을 받은 은인들을 여럿 열거했다. 그의 '글쓰기 40검법' 가운데 35번째 '거명(擧名) 검법'을 술자리에서도 잊지 않고 써먹은 것이다. 그는 책에서 이 허허실실 초식에 '이름을 불러줬을 때 꽃이 되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김대중-노무현의 '칭찬의 기술'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 권우성

그가 짝사랑했던 영원한 멘토인 김대중 대통령은 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거명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또 다른 영원한 멘토인 노무현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을 주로 썼지만 그것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강 작가는 '칭찬의 기술'에서 이렇게 썼다.

"어찌 보면 대통령이란 자리는 칭찬하는 자리다. 노고를 치하하고, 어려운 사람을 격려하고, 선행에 감사하는 일. 이 모든 게 칭찬이다."(286쪽)

대학 졸업후 대우증권에 입사한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를 '스피치 라이터'의 길로 이끈 이는 직속상관이었던 김정호 부장이다. 김 부장은 전경련 회장을 맡아 할 말이 많아진 김우중 회장의 연설문을 그에게 맡겼다. 2000년에는 자신에게 들어온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 자리 제안을 그에게 돌렸다. 김씨는 현재 학술 전문 출판사 '아카넷' 대표이다.

김우중의 스피치 라이터를 김대중의 스피치 라이터로 부른 이는 당시 고도원 연설담당 비서관이다. 덕분에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연설문 작성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대통령과 연설비서관 밑에서 대통령 연설문을 쓰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 자도 고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연설문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대단했다." 월간 <뿌리깊은나무>와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고씨는 현재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이다.

노무현 후보가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윤태영 인수위 공보팀장이 그를 불렀다. 당선자 연설문 작성을 지원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가 인수위 파견 발령 인사를 하러가자 박지원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에게 "국민의 정부 청와대의 명예를 걸고 지원 업무를 성공적으로 하고 오세요"라고 당부했다. 그는 참여정부 출범 후에도 윤태영 연설담당비서관과 함께 일했다. 나중에는 윤태영의 뒤를 이어 노무현의 연설비서관이 되었다.

참여정부 연설비서관실에는 김철휘 선임행정관이 있었다. 노태우부터 노무현까지 20년 넘게 대통령 연설을 써온 '대통령 연설의 산증인'이다. 어찌 보면 보수정부와 진보정부를 넘나든 '영혼없는 공무원'일 수도 있다. 강 비서관이 머리 싸매고 고민할 때도 김 선임은 태연히 바둑만 두곤 했다. 그러나 연설문이 막히는 결정적 순간에 '신의 한수'를 두는 연설문의 달인이었다. 직업 공무원인 그는 현재 국무총리 연설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노무현의 모든 것을 담은 윤태영의 '마지막 책'

8년 청와대 생활에 어찌 에피소드가 없을 소냐. 한 번은 김대중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에 호텔에서 프레스센터를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기자들이 없어 할 일이 없던 P 수석은 커피를 주문해 금연장소에서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때 대통령이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김 대통령은 담배를 무척 싫어했다. 화들짝 놀란 P 수석은 눈 깜짝할 새 담배를 먹던 커피잔에 집어넣었다. '나랏님'과 맞담배는 못 할망정 수석 씩이나 되는데 보기에 흉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청와대에서 겪은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있지만 글쓰기와 연설을 제외한 영역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에 자신을 콘텐츠로 해서 책을 써보라고 두 사람에게 권유했는데 강원국과 윤태영이었다. 그는 이번 책으로 '글쓰기에 관한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책을 쓰라'는 노무현의 명령을 이행했다.

그는 '노무현의 글쓰기와 연설'에 관한 책을 먼저 썼을 뿐, 윤태영이 쓴 노무현의 모든 것을 담은 '마지막 책'은 곧 나올 예정이라고 책광고를 했다. 윤태영 연설비서관은 노무현의 청와대에서 제1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 대변인을 지냈다. 한때 건강이 안좋았으나 건강을 회복해 노무현의 콘텐츠를 담은 '진짜 마지막 선물'을 펴낼 거라고 했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두 대통령과 함께 한 8년의 세월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고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내일을 하는 것 같아서 행복했고, 두 대통령과 만나는 시간 그 자체가 행복했다. 그래서 "이 책은 늦게나마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결과물"이며 "흠모하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짝사랑의 연서 같은 것"이라고 썼다. 그는 아내가 이 책을 읽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진 것도 망외의 소득이라고 했다.

술자리가 길어지자 베스트셀러 작가 강원국을 찾는 전화가 여러 번 왔다. 대체로 식사중이라며 상대방의 양해를 구했지만, 한 전화에는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돌아가신 두 분 대통령이 전화했을 리는 만무했다. 아내의 전화였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아내는 베스트셀러 작가 강원국을 있게 한 '숨은 멘토'였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메디치미디어(2014)


#강원국#윤태영#김대중#노무현#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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